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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어쩌다 통일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북한학 박사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북한학 박사

한반도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 북핵 문제가 갈수록 답답해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일 독일 쾨르버 재단 초청 연설에서 ‘베를린 구상’을 발표했는데 북한의 반응이 냉담하다. 노동신문은 15일 문 대통령의 ‘북한 비핵화와 함께 평화협정 체결’ 추진 언급에 대해 ‘이미 때는 늦었다’고 일축했다. 그 이유로 ‘핵을 가지지 못했을 때에는 북·미 평화협정 체결 제안에 소극적이더니 지금에서야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은 누가 보기에도 누추하다’고 설명했다.
 
국가가 핵무기를 만들려는 의지가 있으면 반드시 만든다는 것을 북한은 보여주려고 한다. 이스라엘·인도·파키스탄 등이 안보 이유를 들어 비공식 핵보유국이 됐듯이 북한도 미국의 핵 위협을 문제 삼아 비공식 핵보유국이 되려고 한다.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의사를 선언한 1993년부터 국제사회는 24년 동안 이를 저지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북한은 핵실험 다섯 차례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의 성공으로 완성 단계를 목전에 두었다. 따라서 북핵 문제는 역사적 우연이 생기지 않는 이상 장기전으로 들어갈 듯싶다.
 
독일 통일이 한국에 준 가장 큰 메시지는 긴 평화의 과정 속에서 통일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빌리 브란트(1913~92) 총리는 재임 기간(69~74년) 독일 통일의 꿈을 숨긴 채 “나는 더 이상 통일에 대해 말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냉전의 긴장을 완화시키는 것이 우선이었고 통일은 부차적 문제로 생각했다. 동독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동·서독은 72년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동·서독 기본조약에 서명했다. 이후 다른 총리들도 그의 뜻을 계승해 89년까지 34차례 협상을 통해 과학기술· 문화· 환경 등에 관한 협력체계를 구축해 통일 발판을 마련했다. 브란트 총리는 자리에서 물러난 지 10년이 되던 84년 독일 통일이 요원할 것으로 내다보고 “통일 여지가 살아있는가를 둘러싼 헛된 논란은 이제 중단하자”고 말했다.
 
그런데 소련 고르바초프의 등장과 오스트리아 국경을 개방한 헝가리 정부의 결정으로 역사적 우연이 찾아왔다. 개혁을 표방한 동독의 크렌츠 정부가 여행 자유화 조치를 서둘러 발표한 것이 ‘결정적 우연’이 되면서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문재인 정부가 독일 통일에서 배울 점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관념적·이념적인 아버지와 달리 실용적·실리적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고집하기보다 남북한이 함께 할 수 있는 걸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낡은 접근을 버리고 실용적·실리적인 방향을 공동 설정하고 서두르지 않으면 독일처럼 역사적 우연으로 ‘어쩌다 통일’이 당황스럽게 다가올지 모른다.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북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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