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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칼럼] 무채색의 거리

배병훈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4학년

배병훈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4학년

서울 창천동 삼거리를 건너다 보면 푸른 지붕의 서점이 하나 나온다. 이름은 공씨책방. 가게는 눈에 띌 정도로 특별하지는 않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듯 먼지가 조금 낀 헌책들이 쌓여 있을 뿐이다. 1년 전 그곳을 처음으로 방문했다. 나는 그날의 경험을 나름의 향기와 색깔로 떠올린다. 헌 종이 뭉치에서 배어 나오는 그을린 나무 향. 누런 갈색의 이미지.  
 
그런 공씨책방도 젠트리피케이션의 칼날을 벗어나지 못했다. 보증금 3000만원과 월세 300만원. 새 건물주가 책방 주인에게 요구한 금액이다. 당장 퇴거 위기를 맞은 영세한 가게 주인이 눈에 밟힌다. 하지만 개인적인 아쉬움은 따로 있다. 다시 그 길을 걷진 않겠구나. 푸른 지붕의 그 가게는 오랜 시간 숙성된 책들만큼이나 수많은 소시민의 추억이 여기에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옛 사법고시생, 그림책을 샀던 꼬마 아이, 육아 책을 집어드는 누구네 엄마…. 이제 공씨책방이 있던 거리는 똑같은 프랜차이즈 가게들이 늘어선 ‘무채색의 거리’로 변할 테다.
 
[일러스트=박용석]

[일러스트=박용석]

사라지는 추억의 보존실을 지켜낼 방법은 없을까. 영국에서는 2011년부터 ‘로컬리즘 액트(Localism Act)’ 법안을 실시하고 있다. 지역공동체의 가치가 녹아든 유산을 매각할 때 지방정부나 지역주민에게 우선 매입권을 부여하는 방안이다. 스코틀랜드 또한 ‘랜드 리폼(Land Reform)’이라는 이름으로 비슷한 정책을 운영하고, 뉴욕시는 임대료 상한제를 도입했다. 선진국들은 공동체의 기억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다.  
 
서울시도 2013년부터 ‘서울 미래유산’을 지정하고 있다. 공씨책방도 그중 하나다. 하지만 이들 가게엔 인증서와 동판만이 지급될 뿐이다. 유·무형적 가치가 있다고 인정받은 이 자산들에도 실질적인 보호책이 뒤따라야 하지 않을까. 거리를 특별하게 만들어준 ‘일등 공신’들을 이대로 버려서는 안 되지 않을까. 많은 예술가가 공씨책방의 위기를 안타까워하며 인문학 강의와 시 낭송회를 열고 있다. 나 또한 같은 마음이다. 훗날 자식의 손을 잡고 ‘갈색의 거리’를 걷고 싶기 때문이다. 사라짐에 대한 한탄만이 남는 무채색의 거리가 아니라.
 
배병훈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4학년
 
◆ 대학생 칼럼 보낼 곳=페이스북 페이지 ‘나도 칼럼니스트’(www.facebook.com/icolumnist) e메일 opinionpag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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