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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과 자존심 그리고 분노조절장애

기자
정성효 사진 정성효
강감찬(姜邯贊, 948-1031) 
강감찬장군은 고려시대 문신으로 고려의 오랜 숙적이었던 거란을 
패퇴시켜 나라의 안위를 지켜냈던 문무를 겸전한 인물입니다.

강감찬 장군

세 차례 고려를 침공했던 거란군은 마지막 침공에서 강감찬 상원수(上元首, 총사령관)가 지휘하는 고려군에게 완전히 궤멸되었습니다. 고려군은 평안북도 귀주에서 악천후를 이용한 전술로 거란군을 거의 전멸시켰는데 이 전투가 널리 알려진 귀주대첩입니다. 

귀주대첩


귀주대첩 이후 거란은 고려를 침공하지 못했고 쇠락의 길로 접어들어 결국 멸망하게 됩니다.
고려 현종은 거란을 물리치는데 큰 공훈을 세운 강감찬 상원수를 주빈으로 모든 대신들을 초대한 큰 연회를 열었습니다. 연회의 막바지에 밥공기를 열어 식사를 시작할 무렵 장군은 음식 시중을 들고 있던 한 궁녀를 조용히 불렀습니다.
상원수가 귓속말로 무언가를 이야기하자 갑자기 그 궁녀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가 가까스로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곧이어 장군은 약간 과장된 몸짓으로 시선을 끌며 부산하게 뒷간을 다녀왔습니다.
그 순간 아까의 그 궁녀가 장군의 밥그릇을 바꾸어 놓으며 공손하게 말했습니다.
“상원수께서 자리를 비우신 동안 진지가 식은 듯하여 따뜻한 새 진지로 올리겠습니다.”
장군이 새 밥공기를 열어 식사를 마치면서 그 날의 만찬은 성공리에 마무리되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궁중연회

사실은 그날 수라간에서 식사를 준비하면서 실수로 장군에게 빈 밥그릇을 올렸던 것입니다.
왕이 준비한 만찬의 주빈에게 빈그릇을 올린 실수가 왕과 여러 대신들에게 공개되었다면 그날 음식을 준비한 사람들은 모두 중벌을 면하기 어려웠던 상황이었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존중하는 자존감(自尊感, self-esteem)이 굳건했던  강감찬 장군은 자신에게 전해진 빈 밥그릇을 보고 오해하여 노여움에 빠져들지 않았습니다.
사소한 실수를 사실 그대로 받아들인 그는 조용히 궁녀를 불러 그 실수를 모면할 방법을 일러주었던 것입니다.
장군의 너그럽고 지혜로운 대처로 그날 많은 사람들이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그날 음식을 준비한 내관들과 수라간 궁녀들은 자신들의 실수를 감싸주고 그 일에 대해 끝까지 함구했던 강감찬 상원수를 마음 깊이 존경하면서 이 일화를 후세에 전했습니다
 
중국 대륙에 무수한 국가가 명멸하면서 끝없는 전쟁이 계속되던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B.C.475-B.C.222)의 숱한 일화를 기록한 것이 전국책(戰國策)입니다. 
전국책의 마지막 부분인 중산국 (中山國) 편에 양고기국에 얽힌 일화가 있습니다. 
중산국 왕 중산군(中山君)이 나라의 대신들을 초대한 연회에 양고기 탕이 나왔는데, 
실수로 사마자기(司馬子期)라는 이에게만 탕이 배식되지 않았습니다. 
사마자기는 타인의 태도로 자신의 가치를 판단하는 자존심(自尊心, self-respect)이 강한 인물이었습니다.
그 일은 단지 국을 담아내는 시종의 실수로 발생한 것이었지만, 자신만 무시당한 것으로 오해했습니다.
그 오해가 모욕감과 분노로 변하여 왕과 다른 신하들에 대한 원한으로 쌓였습니다. 

오해와 고립

자신과 남을 태우는 분노

또한 신하의 마음을 살피는 세심함이 부족했던 중산군은 사마자기의 원한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사마자기는 결국 적국이었던 초(楚) 나라로 망명하여 초왕(楚王)을 선동하여 중산국을 급습합니다.
중산국의 약점을 손바닥 보듯 잘 아는 사마자기의 안내를 받아 들이치는 숙적을 당할 수 없었던 중산군(中山君)은 패퇴하여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합니다.
이때 용맹한 청년 두 사람이 바람처럼 달려와 사력을 다해 싸워서 중산군을 구출했습니다.
구사일생으로 겨우 목숨을 건진 중산군이 두 손으로 그들의 손을 감싸 쥐고 물었습니다.
 

분투

"그대들은 도대체 누구길래 이렇듯 용맹스럽게 내 목숨을 구했는가?"

두 청년은 손을 풀고 물러나 중산군에게 지극히 공손한 태도로 큰 절을 올렸습니다.
“돌아가신 저희 부친이 전쟁에 나갔다가 부상을 입은 채 낙오되어 굶주리고 탈진하여 죽기 직전이었는데, 마침 그곳을 지나시던 폐하께서 보시고 폐하가 드실 주먹밥 한 덩이를 부친께 친히 건네주셔서 부친이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부친은 저희가 철이 날 무렵부터 항상 그 말씀을 하셨고, 언제든 폐하가 위태로움에 빠지게 되면 저희 목숨을 다해 구하라고 저희에게 무예 수련을 시키셨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폐하께서 초나라의 급습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부친의 유언을 받들어 한달음에 달려왔습니다. 저희는 이제야 폐하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어서 기쁠 따름입니다."

눈시울이 붉어진 중산군이 하늘을 쳐다보며 크게 탄식하여 중얼거렸습니다.
"아! 나는 오늘 국 한 그릇 때문에 나라를 잃었고, 찬 밥 한 덩이로 목숨을 구했구나...
보잘것없는 것이라도 곤궁할 때 돕는 것이 큰 은혜가 되고,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데서 큰 원한이 생겨나는 이치를 내 여태껏 몰랐구나..."
 
남의 평가에 의존하여 자신을 자랑하는 감정인 자존심은 부서지기 쉽지만, 자존감은 의(義)에 기반하여 스스로를 존중하는 감정이니 강건합니다.
 

자기 자신을 해치는 자존심

어질 '인(仁)’ 글자를 풀어보면 사람(人) 둘(二)이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태도로 나와 남이 다르지 않음을 깨우치는 것이니, 인(仁)을 통해 자존심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옳을 ‘의(義)’ 글자를 풀어보면 옳을‘양(羊)’과 나‘아(我)’의 합성인데, 여기서 ‘아(我)’는 다시 손’수(手)’와 창’과(戈)’를 합쳐놓은 글자입니다.
결국 ‘의(義)’는 옳은 것을 지키기 위해 손에 창을 드는 공공선(公共善)의 행위를 표현한 것이니,  ‘의(義)’를 통해서 자존감이 뿌리를 내릴 수 있습니다.

좌절의 두려움에서 만들어진 분노가 많고, 순간적 분노를 참지 못하는 분노조절장애가
만연하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 인의(仁義)의 실천을 통해 다른 사람의 마음을 해치지 않게 배려하고, 또한 사소한 일로 내 마음을 다치지 않도록 자존감의 뿌리를 내려야 할 시절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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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와 기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