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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가는 길 험난해도 놀면서 가자

전수진 월간중앙 기자

전수진 월간중앙 기자

편집국장은 힘든 직업이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위키리크스 사건 등 굵직한 특종을 여럿 터뜨린 이 신문사의 전 편집국장 앨런 러스브리저(64)는 저서 『다시, 피아노』에서 이렇게 썼다. “위대한 편집국장 가운데는 강박적 성향을 가진 사람이 많다. 본인이 하는 일과 다른 사람들에게 지시하는 일 사이의 균형을 맞추면서, 간신히 미치지 않고 제정신을 유지하는 사람도 있긴 하다.”
 
러스브리저 본인도 그런 위대한 편집국장 중 하나다. 1995년 기자 투표에서 만장일치로 선임된 뒤 2014년까지 약 20년을 편집국장 명함을 들고 세계를 누볐다. 성공 비결은 명석한 판단력도, 후배를 보듬는 포용력도 아니다. 답은, 피아노다.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인 그는 위키리크스 사건 기사로 세계를 뒤흔들 때도, 아랍 지역에서 반군에 억류된 후배 기자를 구하려 짐을 싸던 날도 피아노를 쳤다. 하루에 20분씩, 꾸준히. 해외 출장을 떠나면서도, 대서양을 건너는 비행기 안에서 (기자처럼) 아무도 내게 카카오톡으로 업무 지시를 할 수 없음을 만끽하며 영화를 보다 꾸벅꾸벅 조는 대신, 악보를 탐독했다. 한마디로 바빠 죽겠는데 피아노라는 딴짓을 한 셈. 왜? 재미있어서다. 피아노로 놀고 나면 숨통이 트였다고 그는 썼다. 위대한 이들도 인간이고, 그들 중 많은 이들이 ‘딴짓’을 했다.
 
최근 마이애미에서 만난 쿠바계 미국인 패트리샤 빌라도 철저히 일하고 화끈히 놀며 자기 관리를 하는 여걸이었다. 미국과 쿠바의 적대 관계가 한창이던 97년 CNN의 아바나 지국을 개설한 그는 카스트로를 비키니 차림으로 만났다. 카스트로가 만나자고 갑자기 연락을 해왔을 때 쿠바의 한 해변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었기 때문. “쿠바는 스파이 천지라 연애도 안 했다”는 이 무서운 언니도 휴가는 철저히 챙겼다. “끈기가 중요해. 그리고 끈기 있게 일하려면 인간은 잘 놀아야 한다는 점을 꼭 잊지마.” 그가 건넨 조언이다.
 
여름휴가 시즌이다. 오늘은 금요일이다. 휴가지로 향하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이 글을 읽고 계시길. 어느 순간 우리에겐 야근과 주말근무가 무슨 훈장처럼 돼버렸다. 그런 훈장 따위 필요 없다. 가는 길 험난해도 놀면서 가자. 그래야 오래간다. 잘 놀아야 일 잘한다.
 
전수진 월간중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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