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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제재와 대화 병행론의 함정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문재인 대통령의 4강 외교가 일단락되었다. 한·미 정상회담으로 한반도 문제의 운전석은 차지했지만 김정은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로 문 대통령의 운전은 시동조차 걸기 힘들게 됐다. 신베를린 선언으로 남북 대화 의지를 표명했지만 한·미·일 정상회담의 대북 최대 압박이라는 공동성명으로 북한의 호응은 기대 난망이 됐다. 한·중, 한·일, 한·러 정상회담은 현안 해결 없이 사진 찍기용 만남의 성격이 강했다. 오히려 북핵 문제에 관한 한·미·일과 북·중·러 간 갈등과 이견이 눈에 띄는 분위기였다.
 
이번 정상외교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일관된 북핵 입장은 대화와 제재의 병행 노선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최대의 압박과 함께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시진핑 주석과 푸틴 대통령에게 대화와 제재의 병행 입장을 강조하면서 공감대를 이끌어내고자 했다. 한·미·일 정상회담에서도 내용은 같았다.
 
문 대통령의 대화와 제재 병행론은 사실상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를 계승하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 말기 북핵 2차 위기가 발발했을 당시의 입장이 바로 대화와 제재 병행론이었다. 이를 계승한 노무현 정부 역시 병행론을 견지하면서 남북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 다른 상황이다. 당시는 대화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제재를 병행하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제재 국면에서 대화를 이끌어내겠다는 것이다.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우선 기존 병행론은 남북 대화와 북핵 협상이 유지되는 상황이었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장관급 회담이 개최되고 각종 교류·협력이 지속되는 가운데 우리가 남북 관계의 영향력과 지렛대를 확보했기에 2002년 2차 북핵위기 때 김대중 대통령은 병행론을 견지할 수 있었다. 노무현 정부의 병행론 역시 2차 북핵위기에도 불구하고 6자회담이라는 북핵협상기구가 작동하고 최소한의 남북 관계가 유지되고 있었기에 병행론이 가능했고 결국 정상회담도 성사됐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남북 관계는 단 하나의 채널도 없이 완전 중단돼 있다. 우리의 대북 주도권은 말뿐인 수사용 레토릭에 불과하다. 또한 6자회담을 비롯해 핵 문제 해결을 위한 그 어떤 협상 틀도 중단돼 사실상 폐기된 지 오래다. 남북 관계의 끈이 상실되고 핵 협상의 틀이 폐기된 상황에서 지금 이런 병행론은 비현실적이거나 공허할 수밖에 없다.
 
남북 대화와 북핵 대화가 존재하는 상황에서의 병행론은, 제재에도 불구하고 그 대화의 틀을 유지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남북 대화와 북핵 회담이 부존재한 상황에서의 병행론은 제재를 지속하면서 대화 의지만 강조할 뿐이다. 그것도 이미 핵 불포기를 선언한 김정은에게 핵 폐기를 위한 대화 제의에 머무르는 한 지금 병행론은 대화 성사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또한 기존 병행론은 그나마 북한이 핵 포기와 비핵화라는 최종 목적에 동의한 상황에서 가능했던 것이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까지 북한은 남북 대화와 6자회담에 참여하면서 적어도 한반도 비핵화라는 원칙에는 동의한 바 있다. 북핵 폐기를 목표로 협상이 가능했다. 그렇기에 대화와 제재의 병행론이 작동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북한은 완전히 다르다. 핵 포기를 ‘포기’한 지 오래된 북한이다. 헌법과 법률과 당 노선으로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한 북한은 당연하게도 핵 포기를 전제로 한 어떠한 대화와 협상에도 응할 생각이 없다. 문 대통령이 구상하는 핵 동결 입구론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병행론조차도, 그것이 비핵화를 전제로 하는 한 김정은은 결코 대화에 나설 생각이 없다. 변화된 현실에서 문 대통령의 병행론은 말로는 가능하지만 실제에서는 작동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기존의 병행론은 남북 대화와 북핵 회담이 작동하는 상황에서 북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제재를 가하면서도 대화는 유지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남북 관계도 북핵 협상도 망실된 상황에서, 그것도 핵 포기 의사가 전혀 없는 김정은에게, 병행론은 대화를 성사시킬 수 있는 조건 자체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비핵화를 전제한 대화 제의는 입구조차 들어가기 어렵고 결국 지금의 병행론은 제재 지속과 강화로만 귀결될 뿐이다. 현실이 다르면 다른 해법을 고민해야 한다. 기존의 병행론을 답습하는 것으로는 시작조차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의 북핵 해법은 과거의 레코드판에 머물러 있기에 불안하다. 지금은 과거와 다르다.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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