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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피땀으로 쌓은 한국 ‘제3의 불’ 기술…‘탈(脫) 원전’ 정책으로 물거품 되나

정부의 신고리 5·6호기 건설 일시 중단 결정 이후 엿새가 지난 3일 울산 울주군 서생면 공사 현장은 사실상 공사가 중단돼 적막한 분위기다. [울산=연합뉴스]<저작권자 ⓒ 1980-2017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정부의 신고리 5·6호기 건설 일시 중단 결정 이후 엿새가 지난 3일 울산 울주군 서생면 공사 현장은 사실상 공사가 중단돼 적막한 분위기다. [울산=연합뉴스]<저작권자 ⓒ 1980-2017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한국 원자력 발전의 역사는 1956년 정부가 문화교육부 기술교육국에 원자력과를 신설하며 시작했다. 같은 해 영국에선 세계 최초의 상업 원전이 운행을 개시했다. 비록 출발은 늦었지만 한국은 비교적 이른 시간에 원전 기술을 '내 것'으로 만들었다.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도움으로 최초의 상업 원전 고리 1호기 운행에 나선 지 27년 만인 2005년 한국표준형원전(OPR1000)을 완성했다. 안전성을 강화한 3세대 한국표준형원전(APR1400)은 2009년 해외진출에 성공한다. 한국전력이 4기의 원전을 아랍에미리트(UAE)에 총 186억 달러(약 21조원) 규모로 짓는 계약을 따낸 것이다. 이로써 한국은 국제 공개입찰 방식에서 프랑스·일본 등 원전 강국을 누르고 세계 5번째 원전 수출국이 됐다. 
 
2004년 1951만 달러에 그치던 한국의 원자력 산업 관련 수출 실적은 2015년 1억 5063만 달러로 뛰었다. APR1400 원전은 2015년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로부터 설계인증 사전심사를 통과하고 본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박병권 한국수력원자력 새울 제1발전소장은 “심사를 통과하면 미국에 APR1400 원전을 건설할 수 있다”며 “원전 본고장의 인정을 받으면 수출 경쟁력이 더 높아지게 된다”고 말했다.
 
자료 : 한국원자력문화재단

자료 : 한국원자력문화재단

 
#한국수력원자력은 APR1400의 뒤를 이를 차세대 한국표준형원전 APR+ 기술을 2014년 개발했다. 발전용량을 1500㎿까지 올렸고 모든 기술을 국산화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교훈 삼아 해일에 대비하는 안전기술도 강화했다. 하지만 APR+는 개발된 지 3년 만에 사장될 위기에 놓였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신규 원전을 건설하는 계획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APR+ 기술은 당초 경북 영덕에 지어질 천지 1, 2호기에 도입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천지 1, 2호기 공사 부지에 대한 매입 작업은 현재 중단돼 있다. APR1400 기술로 경북 울진에 지으려던 신한울 원전 3, 4호기의 시공 설계 용역 작업도 지난 5월 25일 중단됐다. 이렇게 되면서 APR+ 후속으로 지난해 한수원이 개발에 착수한 4세대 한국표준형원전 IPower의 연구도 불투명하다. IPower는 발전소 전원이 나간 상황에서도 중력 등 자연력만으로 스스로 정지하는 첨단 기술을 갖출 계획이었다. 
 
원자력은 ‘제3의 불’로 불린다. 원료인 우라늄이 나무와 화석연료(석탄·석유 등)의 뒤를 잇는 에너지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배’들과 비교할 수 없는 높은 효율을 자랑한다. 우라늄 1g은 석유 9드럼 또는 석탄 3t에 맞먹는 에너지를 생산한다고 알려져 있다. 에너지 자원이 부족한 한국이 오래 전부터 원자력 발전에 매달린 이유다.
 
하지만 60년 넘게 이어 온 한국 원전 기술이 최근 위기를 맞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탈(脫) 원전’을 선언하면서 개발 동력이 급격히 사그라들고 있어서다. 정부는 지난달 27일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에 APR1400 기술로 짓고 있는 신고리 5, 6호기의 건설을 일시중단했다. 그리고 향후 건설 여부를 시민이 참여하는 공론조사로 결정하기로 했다. 신규 원전의 건설 계획은 백지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혀왔다. 
 
문 대통령은 3일 ‘신재생에너지 전환, 탈 원전’을 주장해온 백운규 한양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원전 제로 국가'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세계 주요 국가의 움직임은 '탈 원전'으로 방향을 잡은 한국과는 달라보인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나타났던 세계적인 탈 원전 움직임은 현재 주춤한 상황이다. 멈춘 원전을 재가동하거나, 추가 원전 건설에 나서는 나라가 적지 않다. 원전을 대체할 에너지원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과 인도는 2030년까지 각각 16기와 30기의 신규 원전을 건설할 계획이다. 미국도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 5기의 신규 원전 건설을 허가했다. 릭 페리 에너지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원자력을 제외하고는 미국의 깨끗한 에너지 포트폴리오가 완성되지 않는다”며 원전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후쿠시마 사태 이후 원전 가동을 전면 중단했던 일본도 2015년부터 원전 재가동에 나섰다.
 
물론 탈 원전에 적극적인 국가도 있다. 독일은 2022년까지 17기의 원전을 모두 폐쇄하기로 했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독일은 예비전력율이 풍부한데다 부족한 전력을 프랑스 등 인접 국가에서 쉽게 수입할 수 있다”며 “원자력 발전 비중도 주변 국가에 비해 낮은 편”이라고 말했다. 
 
세계 2위의 원전 운영 국가인 프랑스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취임 후 탈 원전 방침을 천명했다. 하지만 그 목표는 75%이던 원자력 발전비중을 2026년 까지 50%로 낮추는 것이다. 한국은 전체의 약 30%를 원자력 발전으로 전기를 생산한다. 프랑스가 목표를 이뤄도 원자력 발전 비중은 여전히 한국보다 크다.
 
자료 : 한국원자력문화재단

자료 : 한국원자력문화재단

 
현재 세계 원전 시장에서 한국과 경쟁하던 주요 업체들은 위기에 빠져있다. 원전 기술을 선도하는 해외 업체는 세 곳 정도다. 일본 도시바가 인수한 웨스팅하우스, 미국의 GE, 프랑스의 아레바(AREVA)다. 하지만 웨스팅하우스는 2006년 개발한 원전 신기술 AP1000에서 안전상 결함이 발견되면서 미국에서 짓던 원전 공사가 지연돼 큰 손실을 입고 있다. 이에 도시바는 웨스팅하우스 매각을 추진 중이다. 
 
프랑스 아레바도 핀란드에 짓던 원전 건설 작업이 표류하면서 손실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GE 역시 원전 건설을 포기하고 핵 연료 공급에 치중하는 상황”이라며 “원전 수출의 큰 손이 위기를 겪는 지금이 한국엔 기회”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은 정부의 탈 원전 선언으로 그동안 진행해오던 수출 사업을 사실상 멈춘 상태다. 한국전력은 도시바의 원자력발전사업 자회사인 뉴젠의 지분 인수를 추진해왔다. 뉴젠이 짓던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 건설 과정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한전 측은 최근 도시바와 지분 인수에 대해 협상 중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정부 방침에 따라 인수 추진에 차질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는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 
 
원전 업계는 국내에서 원전을 짓지 않으면 수출 명분이 약해진다고 본다. 나아가 원전 운용마저 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기술 경쟁력도 약화될 것으로 본다. 학계에선 문재인 정부가 시민에게 신고리 5, 6호기의 운명을 맡긴 것이 세계 시장에 부정적인 신호를 줬다고 본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원전을 수주한 UAE에서 한국이 원전을 더 이상 짓지 않으면 원자로 부품 공급이 제대로 될 것일지 걱정하고 있다”며 “원자로에 들어가는 제품은 다품종 소량 생산을 하는데 신규 원전 건설이 취소되면 관련업계가 업종을 전환해 부품 공급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국내의 우수한 원전 기술 인력이 해외로 빠져나갈 가능서도 배제할 수 없다. 원전 개발로 석유 이후 에너지 대책 해결에 나서는 중동과 원전 수출에 나서는 중국 등이 한국의 우수한 인력을 노린다. 탈 원전 정책이 가시화 되면 현재 공부중인 원자력 관련 인재들의 미래도 불투명하다. 
 
지난해 원자력 관련 학과 졸업자(학·석·박사)는 약 600명이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원전은 고급 기술이라 수익도 높고 일자리 창출 효과도 크다”며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어 수출 가능성이 높은 원전 산업을 포기하고 경쟁력 없는 신재생에너지 수출을 추진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공지능·전기차 시대가 됨에 따라 앞으로 전기 수요가 폭증할텐데 섣불리 탈 원전에 나섰다간 인재난으로 기술 속국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범진 교수는 “원전 수출은 결국 국가 간 경쟁"이라며 "기술을 보유해도 정부가 의지를 갖고 자금조달 문제 등을 해결해 줘야 하는데 정책 의지가 없다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백원필 한국원자력연구원 부원장은 교수는 “원자력 기술은 한번 개발과 연구가 중단되면 경쟁력을 회복하기 어렵다”며 “신재생에너지 기술 개발에 힘쓰면서도 그동안 쌓은 원전 기술 성과를 국가 경쟁력으로 활용하는 지혜를 정부가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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