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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맞선 조선 여인 ‘오다 줄리아’

-시즈오카(靜岡)의 역사 탐방(3)

“놀라운 일이로다. 이에야스(家康) 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얼굴을 똑바로 들고 대답하다니...”

궁궐의 문무백관을 비롯해서 궁녀들까지 혀를 내둘렀다. 나르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는 일본 최고 권력자와 ‘오다 줄리아’가 맞대응을 하고 있어 서다.

“저 아이를 멀리 바다 한 가운데의 섬으로 보내버려라.”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화를 낸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측실이 되라’는 것과 ‘종교(크리스천)를 버리라’는 두 가지 제안을 모두 거절했기 때문이다.

이즈(伊豆)에서 바라본 태평양

마침내 ‘오다 줄리아’는 이에야스(家康)의 명(命)에 의해 이즈(伊豆)제도에 있는 오시마(大島)를 향해 슨푸성(駿府城)을 떠나게 됐다. 지금으로부터 405년 전인 1612년 3월 20일이다.

6-7세 때 ‘줄리아’라는 세례명이 붙여진 그녀는 임진왜란 때 평양성 근처에서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포로로 일본에 끌려가서 그의 양녀로 자랐다.

전설이 아닌 역사적 사실

또 하나의 놀라운 사실이 있다.

<돌아가라 나의 푸른 새 메마른 느릅나무의 가지 곁으로
네가 없는 오오 세상 속은 아침 해 조차 떠오르지 않아
(...)
불타라 여름의 십자가 남쪽하늘 높이
밤의 어둠을 비추는 별자리는 눈물의 상들리에
마치 무지개처럼 꿈으로 사라진 줄리아.
(...)
사랑의 끝을 알리듯이 찢겨진 나의 로자리오>

일본의 유명 밴드 ‘서던 올 스타스(Southern All Stars)’가 예로부터 내려온 전설을 토대로 작사·작곡한 노래 <꿈으로 사라진 줄리아>이다. 무심코 노래를 하던 그들도 아연실색(啞然失色)했다. 전설이 아닌 실제로 존재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크리스천 석등과 만나다

호다이인(寶台原) 정면

“줄리아는 슨푸성(駿府城) 한 구석에 있는 석등에 남몰래 기도하면서 살았다.”

오래 전부터 기록으로만 접하던 필자는 시즈오카(靜岡)에 있는 호다이인(寶台院)이라는 절(寺)을 찾았다. 한적한 경내에서 할머니 한 사람이 석등에 물을 뿌리면서 청소하고 있었다.

‘아니, 이럴 수가!’

필자는 깜작 놀랐다. ‘오다 줄리아’에 대한 안내문과 ‘크리스천 석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다줄리아가 기도했던 석등

필자는 청소하는 할머니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할머니! 이 석등이 언제부터 이곳에 있었나요?”
“글쎄요. 저는 잘 모릅니다.”

이때 호다이인(寶台院)의 주지스님이 나와서 말을 걸었다.

“오다 줄리아에 대해서 잘 아시나요?”
“네. 10여 년 동안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어디서 오셨나요?‘
“한국의 서울에서 왔습니다.”
“서울에서요?”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놀라던 스님은 큰 목소리로 ‘오다 줄리아’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주지스님이 석등에 내용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여기를 보세요. 맨 아래 ‘성모 마리아 상(像)’이 새겨져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 상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땅속에 묻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아무도 모르게 사각형 돌(石)에 약간의 돌출을 했습니다.

“그렇군요. 놀라운 일이군요. 그런데, 이 석등을 누가 만들었나요?”

“안내문에 쓰여 있는 바와 같이 전국시대의 무장이자 다인(茶人)인 ‘후루타 오리베(古田織部, 1544-1615)’ 선생이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후루타(古田)가 크리스천과 관계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석등에 십자가와 마리아 상(像)을 새겼다는 것은 의외였다.

고니시(小西)가 처형을 당한 후 슨푸성에서 기거하게 된 ‘오다 줄리아’는 외부의 신부님들과 자주 접촉하지 못해서 이 석등에 기도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던 것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측실(西鄕局)의 묘지

한편, 이 사찰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측실 ‘사이고노 쓰보네(西郷の局)’의 묘지가 있었다. 그녀는 27세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측실이 되어 1579년 4월 이에야스(家康)의 세 번째 아들 히데타다(德川秀忠, 1579-1632)를 낳았다. 그가 바로 이에야스의 뒤를 이은 2대장군이다. 그녀는 1589년 5월 38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필자는 이에야스의 측실 ‘사이고노 쓰보네’의 묘지와 측실을 거부한 ‘오다 줄리아’가 기도(祈禱)하던 석등이 나란히 있는데 대한 퍼즐(puzzle)을 맞추지 못한 채 호다이인(寶台院)과 작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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