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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일의 글로벌 인사이트] 운(運)과 외교력, 그리고 통일

사공일 중앙일보 고문·전 재무부 장관

사공일 중앙일보 고문·전 재무부 장관

총리 재직 시 가장 어려웠던 것이 무엇이었느냐고 영국의 유명 총리 해럴드 맥밀런에게 물었다. 한마디로 “사건들(events)이었다”고 했다. 그렇다. 전혀 예상 못한 큰 사건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나라의 장래와 역사가 갈린다. 얼마 전에 서거한 독일의 헬무트 콜 총리는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사건을 동·서독의 통일로 승화시켜 ‘통독의 아버지’가 됐다.
 
물론 독일 통일을 가능하게 한 베를린 장벽 붕괴 당시 서독 총리 자리에 있었던 헬무트 콜은 통독을 이룩한 운 좋은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82년 총리 취임 초기부터 동·서독 통일에 필수 불가결한 주변국들과의 튼튼한 외교 기반 마련을 위해 끈기 있게 노력해 온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운과 관련해 필자는 골프의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남아공의 게리 플레이어가 한 말을 자주 인용한다. 그는 그린 밖에서 친 골프공이 홀컵으로 빨려 들어가 우승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어떻게 항상 당신에게는 운이 따르냐고 물었다. 그는 예사롭지 않게 “연습을 많이 하니까, 운이 따라오더라”고 했다. 피땀 나는 연습으로 쌓은 실력 없이 결정적 순간에 우선 골프공을 홀컵 근처에 보낼 수 있었겠나.
 
베를린 장벽의 붕괴 당시 이를 예상한 정치 지도자는 콜 총리를 포함해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당시 서독의 최고 정보기관 총책임자가 베를린 장벽 붕괴 하루 전 워싱턴에서 “앞으로 10년 이내에 통독을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일러스트=박용석]

[일러스트=박용석]

헬무트 콜은 평소 대외 정책의 실수는 그 대가가 너무 클 수 있기 때문에 국내 정책보다 더 중요하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특히 그는 주변국 지도자들과의 개인적 신뢰 관계를 구축해 두는 것이 외교 실패를 막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통일된 강한 독일을 원치 않는 이웃 프랑스와 영국 등 주변국의 지지 없이 독일의 국가 통합은 불가능하며, 이들 주변국의 지지를 얻으려면 독일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인 미국의 적극적 지지가 있어야 함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콜은 통독 후 독일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계속 남는 것을 소련이 원치 않을 것임을 미리부터 예상했다. 그래서 조지 부시 대통령과 함께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당서기와의 상호신뢰 구축을 위해 성실히 노력했다. 특히 고르바초프와는 격의 없이 진행된 ‘스웨터 정상회담’ 등을 통해 온갖 정치·경제 외교 노력을 펼쳤다.
 
결국 콜을 신뢰한 부시 대통령은 통독을 공공연히 반대해 온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와 프랑스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을 설득하는 데 적극 나서게 됐고, 콜은 독일의 NATO 잔류 여부에 개의치 않겠다는 고르바초프의 약속을 얻어냈다.
 
오늘의 세계는 ‘근본적인 불확실성 시대(the era of radical uncertainty)’다. 미래 예측이 극히 어렵다. 더욱이 안보와 경제, 군사와 외교 등 모든 면에서 아직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예측 불가능한 리더십하에 있어 더욱 그러하다. 한반도를 둘러싼 온갖 지정학적 변화가 갑자기 닥칠 수도 있고 남북 통일로 연결될 수 있는 사건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독일 콜 총리의 ‘한약 요법’적인 끈기 있는 주변국과의 신뢰 구축 노력이 절실한 것이다.
 
이제 며칠 후 문재인 대통령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간의 첫 정상회의가 열린다. 물론 현안인 북한 핵·미사일 문제와 미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관련 이슈에 대해 양국 정상 간의 긍정적 인식 공유를 위한 의견 조율은 불가피할 것이다. 그러나 좀 더 긴 안목에서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양 정상이 함께 재확인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문 대통령이 금번 한·미 정상회의 일정을 장진호 전투 기념비 헌화로 시작하는 것은 정말 좋은 아이디어다. 이는 한·미 동맹에 대한 어떤 레토릭(수사)보다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국민에게 강한 메시지로 전달될 것이다.
 
또한 이번 첫 한·미 정상회의의 큰 의의는 앞으로 4~5년간 가장 중요한 동맹국으로서 함께 협력해야 할 두 정상 간 개인적 신뢰 관계의 기초를 다지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아베 총리와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이미 상당한 수준의 신뢰 관계를 마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가 간 외교도 비즈니스 딜처럼 생각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서로 주고받을 것이 우리보다 더 많은 중국, 일본과 함께 남북한 통일로 연결될 수 있는 지정학적 사건마저 우리를 제쳐두고 이들 주변 강대국과의 직접 딜을 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 이번 한·미 정상회의가 우리의 이런 우려를 불식하고 외교력을 크게 증진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본다.
 
사공일 본사 고문·전 재무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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