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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와 할머니 이야기

기자
장상인 사진 장상인
-시즈오카(靜岡)의 역사산책(2)

일본인들은 새해 첫 길몽을 후지산, 매(鷹), 가지(茄)라고 한다. 이유인즉,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1543-1616)가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슨푸성(駿府城) 공원에 서있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동상에도 매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그가 매 사냥을 좋아 해서다.

슨푸(駿府)는 옛날 스루가국(駿河國)의 주도(主都)였으나 1869년 시즈오카(靜岡)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탄생했다. 시즈오카현(縣)의 현청 소재지인 시즈오카(靜岡) 시는 인구 약 50만의 도시이다. 2003년 인구 24만의 시미즈(淸水) 시와 합병해서 몸집을 키웠다. 행정구는 아오이구(葵區), 스루가구(駿河區), 시미즈구(淸水區)이다. 시(市)의 꽃은 접시꽃이다. 그래서 인지 슨푸성(駿府城) 공원에는 접시꽃들이 활짝 웃고 있었고,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슨푸공원의 접시꽃과 관광객

<전국시대(戰國時代) 이마가와(今川) 씨의 통치기에 지방문화가 꽃을 피고, 이에야스(家康) 공의 오오고쇼(大御所) 시대에 일본의 정치·경제·문화의 중핵을 담당했던 슨푸의 마을. 400년의 세월이 경과한 지금 성하(城下)의 마을 이곳저곳에 스며있는 이에야스(家康) 공의 발자취를 찾아서 역사 산책을.>

호텔에서 필자에게 건네 준 <역사 산책> 지도에 쓰여 있는 내용이다. 지도는 첫 번째 오구시 신사(小梳神社)에서 시작해서 여덟 번째 호우타이지(寶泰寺)에 이르기까지 의미 있는 역사 탐방 루트였다. 모두가 도보로 다닐 수 있는 거리였으나, 시간 관계상 다 돌아 볼 수 없어서 나름 의미 있는 곳부터 찾았다.

정토정의 게요인(華陽院)을 찾아서

게요인 사찰 정면

시즈오카시 아오이(葵区)구에 있는 게요인(華陽院)은 정토종(浄土宗)에 속하는 사찰이다. 8세 때부터 인질이 된 ‘이에야스’가 ‘이마가와’씨의 군사(軍師)인 ‘셋사이(雪齊)’ 화상으로부터 교육을 받던 곳과 관련이 깊다. 본명이 ‘다이겐 셋사이(太原雪齊, 1496-1555)’인 ‘셋사이’는 전국시대의 무장이자 정치가였다. 린자이지(臨濟寺)의  승려이면서 ‘이마가와’씨의 가신이었다.

‘얼마나 귀여운 손자이런가.’

이에야스가 인질로 잡혀 있던 시절, 그의 할머니가 손자를 위해서 슨푸성으로 갔다. 할머니의 이름이 게요인(華陽院)이다. 그녀는 손자에게 스승 셋사이(雪齊)를 소개하고자 머리를 깎고 스님의 길을 걸었다. 승명은 겐오우니(源応尼).

이 사찰은 그녀의 50주기를 맞이해서 사찰의 이름을 치겐인(知源原)에서 게요인(華陽院)으로 바꿨다. 필자는 그 사찰에 들어가서 이곳저곳을 살피던 주지 스님 ‘봇타 타쿠분(堀田卓文)’씨와 인사를 나눴다.

“이른 아침에 오셨네요?”
“네. 일찍 잠이 깨어서 산책을 나왔습니다.”
“그런데, 어디에서 오셨나요?”
“한국의 서울에서 왔습니다.”
“서울에서요? 요즈음 한국 사람들이 별로 오지 않던데...무슨 일로 오셨나요?‘
“도쿠가와 이에야스 관련 취재차 왔습니다. ”

그는 이른 아침 첫 손님을 반갑게 맞이했다.

게요인(華陽院) 묘지까지 안내해

법당 내부

주지 스님은 법당 문을 열고 ‘마음껏 사진을 찍어도 좋다’고 했다. 필자가 사진을 찍으면서 이런저런 질문을 하자 ‘사찰 뒤에 있는 묘지로 가자’고 했다. 묘지라면 별로 좋아하지 않는 필자이나 어쩔 수 없이 따라갔다. 그는 어느 묘지 앞에 서서 아주 바른 자세로 설명했다.

“이 묘지가 바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할머니 게요인(華陽院)님의 것입니다. 손자 사랑이 각별하셨던 분입니다.”
“아! 그렇군요. 참으로 훌륭한 할머니시군요.”

이에야스의 조모 게요인의 묘지

그러하다. 이에야스 할아버지와 재혼했던 게요인(華陽院)은 손자를 위해서 훌륭한 스승을 소개할 목적으로 나고야에서 이곳으로 왔던 것이다. 할머니가 소개한 스승과 손자의 첫 만남을 야마오카 소하치(山岡莊八, 1907-1978)의 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통해서 알아본다.

“다케치요(후일 德川家康)! 공자(孔子)라는 옛 성인을 알고 있느냐?”
“네. 논어의 공자님이시지요.”
“그의 제자 자공이 스승인 공자에게 물었다. ‘정치란 무엇입니까?’라고... 스승의 답은 이러했다. ‘무릇 국가에는 먹을 것(食)과 병기(兵)와 믿음(信)있어야 한다’고. ‘너는 무엇을 가지고, 무엇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머뭇거리던 이에야스의 대답은 스승의 예측을 벗어났다.

“병(兵)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먹지 않으면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허어!”

스승은 허탈 웃음을 짓고 말았다. 스승은 다케치요의 재능과 타고난 운(運)까지 완벽하다는 것을 읽고서 무릎을 쳤다.

“그래. 이 정도는 돼야지. 큰 재목이로다.”

스승과 할머니의 만남

다케치요를 숙소로 보낸  셋사이(太原雪齊)는 그의 할머니 게요인(華陽院)과 만났다.

“스님! 저의 손자 어떠합니까?”
“정말 훌륭합니다. 제가 책임지고 저 아이를 키워보겠습니다. 천하를 호령할 인물이 될 것 입니다.”
“그래요? 스님! 잘 부탁드립니다.”

게요인 사찰 앞에 있는 소철

그렇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인질로 끌려간 위기가 오히려 기회가 됐다. 그래서 사람은 좋은 선생을 만나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 스승이 드믄 오늘의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필자는 ‘침묵과 논쟁이 있었고...불확실함과 혼란이 팽패했다’는 미국의 소설가 제임스 설터(James Salter)의 산문 <그때 그곳에서>(마음산책)의 한 구절을 떠올리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또 다른 역사 산책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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