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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는 것처럼

기자
전새벽 사진 전새벽

잠에서 덜 깬 몸을 이끌고 계단을 오르고 있자니 무척 괴롭다. 일요일이라 아침부터 산에 오르는 중이었다. 오르막이 시작되자 허벅지의 근육이 팽팽하게 당긴다. 몸에 열이 오르면서 땀구멍이 열리기 시작한다. 매번 경험하는 거지만 이 순간은 늘 괴롭다. 그리고 괴로움은 곧 후회로 번진다. 내가 대체 등산을 왜 시작했더라. 푸념을 하면서도 멈추지는 않는다. 곧 상쾌해질 것을 알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등산로에 접어들자 나무마다 이름표가 붙어 있다. 부지런한 구청 공원과 덕분에 산을 오르다 보면 배우는 것들이 생긴다. 그렇지, 공원을 달리거나 아령을 드는 것에 비해 등산이 좋은 점은 자연을 알아가는 기쁨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생강나무는 어떻게 생겼는지, 이 작은 산속에 얼마나 다양한 새가 얼마나 다양한 소리로 울고 있는지, 젖은 흙에서는 어떤 냄새가 나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산이란, 바깥에서 볼 때와 안에 들어와서 느낄 때가 얼마나 다른지! 오늘 같이 비가 온 뒤의 산은 특히 더 아낌없이 그 매력을 드러낸다. 그 매력에 빠져 힘든 것도 잊고 거듭해서 발을 뻗는다.
 
지난 주에, 어디를 다녀온다고 열차를 탔다. 책을 읽다가 잠이 오면 조금 잘 셈이었다. 그러나 둘다 쉽지가 않았으니, 귀가 아플 만큼 소리를 질러대는 한 꼬마 때문이었다. 살펴보니 꼬마는 기분이 나쁜 게 아니라 그냥 목소리가 큰 거였다. 마치 열차 안의 모든 사람들한테서 주목이라도 받고 싶은 양, 아이는 필요 이상으로 크게 고함을 치며 소란을 피웠다. 대체 부모는 뭘 하고 있는 거야, 라는 불평이 곳곳에서 들렸다. 과연 부모는 뭘 하는 중인가 봤더니 그들은 아이에게 관심이 없는 듯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어를 만큼 어르다 지친 것인지도 모르고, 그저 무책임한 부모인지도 몰랐다. 저 아이는 어떻게 크게 될까,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이어폰의 볼륨을 올렸다.
 
열차 여행 이후 며칠 동안, 그런 것들을 계속 마주쳤다. 한 인터넷 방송을 통해 듣게 된 경계성 성격장애 이야기, 중학생인 동생이 학교는 안 가고 말썽만 피워 죽겠다는 후배의 이야기, 몸은 어른인데 사고는 초등학생에 멈춰있는 것 같은 사람과의 만남. 나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려 애썼다. 오래 전부터 말이다.
 
나는 사실 정서가 단단하지 못한 아이였다. 남들은 순조롭게 지나가는 관문들이 내게는 높은 벽이었다. 벽을 만든 것은 세상이 아니라 나의 지나친 감수성이었다. 그걸 몰랐던 나는 벽을 향해 온몸을 내던지며 간신히 성장해왔다. 모두가 이렇게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공부를 시작했다. 심리에 관한 것이었다.
 
열차 안에서 소리를 지르는 아이를 보면서 든 감정은 짜증보다는 애처로움이었다. 그 아이에게는 누군가의 관심이 꼭 필요해 보였다. 본인들도 힘들겠지만, 부모에게 따가운 눈초리를 보내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다가 붙잡혀 경찰서에 갔다는 후배의 동생도 안쓰러웠다. 대체 너희를 이렇게 만든 것은 누구니, 그런 물음이 끊임없이 입가를 맴돌았다.
 
엄마가 유아를 안고 실험실에 들어온다. 실험실에는 실험 도우미와 장난감이 있다. 엄마는 아이가 실험실의 환경에 적응할 때까지 같이 있다가 어느 순간 아이를 두고 실험실을 나간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엄마가 실험실로 돌아왔을 때 아이의 반응을 관찰한다.
 
이것은 발달심리학에서 많이 거론되는 ‘낯선 상황 실험’이라는 것의 개요다. 마음의 병을 앓던 시절 내가 했던 공부 중에 가장 인상 깊은 내용이었다. 물론 연구자들이 이 실험을 통해 ‘아이를 어떻게 키우세요’라고 구체적인 조언을 해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실험의 결과는 ‘아이는 모두 다릅니다’라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었고, 그것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무척 위안과 안심이 되어주었던 것이다. 실제 연구 결과는 물론 이것보다 복잡하고 전문적이지만, 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1)     엄마가 돌아오면 웃으며 반기는 아이
2)     돌아온 엄마를 외면하는 아이
3)     돌아온 엄마를 향해 발길질을 하고 화를 내는 아이
4)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쭈뼛대는 아이
 
여러분은 우선 자기 자신, 혹은 자신의 아이가 어떤 번호에 해당하는지 궁금할 것이다. 지나간 일들을 떠올려보자. 나는 어떤 유형이었을까? 유아 시절을 기억해내긴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연애하던 때를 떠올려보면 어떨까? 상대가 나에게 상처(떠나감)를 주었다가 돌아왔을 때, 나는 어떻게 반응했던가? 나는 아무렇지 않았나? 아니면 그를 외면했나? 화를 냈나? 혹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가?
 
대충 유형을 짐작했다면, 다음으로 유형별 해석이 궁금할 것이다. 안정적인 애착 유형인 1번은 별달리 언급할 것이 없지만, 나머지 중에서도 내가 특히 주목한 것은 3번 유형이었다. 연구에 따르면 3번, 즉 ‘양가형 불안’의 기질을 보이는 아동은 타인에게 집착하는 어른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나이를 먹어서도 애정결핍에 시달리고, 애정결핍으로 인해 폭식, 폭음을 하게 될 가능성도 높다. 연애에서 심한 스트레스를 느낄 것이고 나아가 자기 환멸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심리학자도 아닌 내가 어찌 그렇게 자신 있게 단언할 수 있느냐고? 내가 3번 아동이었다. 나는 상처를 입으면 곧바로 상대방에게 화를 내는 아이였다. 남들에겐 별 것 아닐 상처도 유달리 아픈 아이였다.
 
사람은 왜 화를 낼까? 화火에너지는 원래 방어의 에너지다. 타인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사람은 화를 낸다. 그렇다면 적이 아닌 가까운 이들에게도 화를 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내가 아프다고 전달하기 위함이다. 인내심과 요령이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차분하게 알릴 수 있지만, 몸만 커버린 ‘어른아이’들은 곧바로 상대방을 할퀴어 버린다. 자신이 아팠던 만큼 상대방에게도 생채기를 냄으로써,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라는 경고를 날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바꾸어 말하면, 돌아온 엄마에게 화를 내는 아이들의 심리는 간단하다. 어찌 나를 두고 갔느냐는 어리광인 것이다. 그들은 엄마가 자신을 두고 나갔다는 것이 남들보다 배로 서럽게 다가오는 연약한 존재들이다. 그런 그들이 감수성 예민하고 애정 많은 사람이란 사실은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그 감수성을 무기로 곧잘 예술적인 능력을 발휘하곤 한다. 그러고 보니 말썽꾸러기가 된 후배의 동생도 미용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했다. 탁월한 선택이라고 박수를 보내고 싶다. 손을 쓰는 일은 좋은 일이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도 병행하면 좋겠다.
 
이야기를 되돌려 실험 결과에 대한 원인을 살펴보자면, 2번 유형은 부모의 방치에서 기인한다고 알려져 있다. 부모가 아이에게 무관심한 경우, 아이도 애착의 대상으로부터 눈을 돌리는 사람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3번은 ‘왔다갔다하는’ 부모가 만들어낸다. 기분이 좋고 나쁨에 따라 아이를 예뻐하기도 했다가 홀대하기도 했다가 하면, 아이는 정서적 기지(base)를 잃어버린다. 기지를 잃은 아이가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를 화로 무장시키는 것뿐이다. (연구에 대해 더 궁금한 사람들은 관련 서적을 참고하라. 발달 심리를 주제로 한 많은 책들이 서점에 놓여 있다. 덧붙여 자신이 2~4번이라고 해서 부모를 탓하거나 자식이 2~4번이라고 해서 자신을 탓할 필요는 없다. 애착의 발달에는 분명 부모의 영향이 있지만, 그 전에 기질이라는 것 자체가 거의 타고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어떤 기질인지를 알았다고 해서 육아에 대한 해답이 저절로 내려지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위 4가지 분류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애착의 유형이라고 단언할 수도 없다. 다만 이해해야 할 것은 ‘모두가 불안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탯줄을 끊고 엄마로부터 분리되었던 존재다. 분리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나약한 존재들이다. 옆에 있는 이가 나약한 존재라고 해서 무작정 끌어안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 자식은 최선을 다해 품어야 하지 않겠는가. 잘 키우고 싶다, 라는 선한 의지로만은 불충분하다. 올바른 양육과 훈육을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한다. 심리학 이론을 읽으라는 것이 아니라, 내 아이가 어떤 아인지를 관찰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남들은 이렇다던데, 다른 집은 이렇게 컸다던데, 라는 생각은 버리자. 이 아이는 다른 모든 사람과는 다른 세상에 하나뿐인 개성이다. 그것을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꾸준히 탐험하라. 아이를 거대한 존재로 여기고 한발 한발 인내심을 갖고 살펴라. 산을 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비가 온 다음날이라 그런지 여느 때보다 더 산에 활기가 돈다. 숲이 습기를 머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풀내음이나 신록이 유난히 진하게 번진다. 대기 중의 물방울이 뭔가 좋은 일들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부모의 역할도 그런 것이 아닐까. 등산객과 산을 더 친밀하게 이어주는 물의 정령처럼, 아이가 세상과 친해지도록 해주는 존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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