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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의 보스와 참모의 관계학 (22) 세조와 권람] 밤 하늘이 어두워야 별이 빛나는 법

권람, 세조 돋보이게 하는 역할에 충실 … 보스와 다른 참모 빛나게 하는 참모 필요
 
촉한의 황제 유비는 자신의 수석참모인 제갈량을 두고 “나에게 공명(孔明)이 있음은 물고기에게 물이 있는 것과 같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수어지교(水魚之交)라는 고사성어를 유래한 이 말은 보스와 참모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물고기는 물이 없으면 살지 못하고, 물은 물고기 없이는 의미를 실현할 수 없듯이, 보스와 참모는 진정한 한 팀이 될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이 연재에선 한 팀을 이루는 바로 그 과정에 주목한다. 어떻게 보스를 선택하고 참모를 선택하는지,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으며 서로에게 도움이 되었는지 역사 속의 사례로 살펴본다.
 
충북 음성에 있는 양촌 권근과 그의 아들 권제와 그의 손자 권람의 3대묘소.

충북 음성에 있는 양촌 권근과 그의 아들 권제와 그의 손자 권람의 3대묘소.

창공에 오직 별들만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 별이 얼마나 아름답게 빛나는지를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캄캄한 밤하늘이 배경이 되어주기에 별은 비로소 빛날 수 있게 된다. 참모 중에도 바로 이 밤하늘 같은 참모가 있다. 보스를 빛나게 해주는 것이야 참모의 공통된 의무라지만 보스뿐만 아니라 다른 참모들까지 빛나게 해주는 사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보스와 다른 참모들이 마음껏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사람, 성공한 보스 뒤에는 반드시 그와 같은 참모가 있었다.
 
이런 참모는 보통 보스의 첫 번째 참모, 보스와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한 사람인 경우가 많은데, 보스의 꿈을 처음으로 이해해주고 보스와 의기투합해 첫걸음을 함께 내디딘 이래 궂은일들을 도맡는다. 재정을 담당하고 인력을 관리하는 것 등이 이 사람의 몫이다. 조직이 커지면서 새로 영입하는 참모들에 비해 특정 전문능력이 못할 수는 있으나 누구보다 보스를 가장 잘 알고, 보스의 깊은 신뢰를 받고 있는 그는 그 힘으로 조직의 안살림을 챙긴다. 보스와 참모, 참모와 참모 간의 갈등을 조율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한고조 유방의 참모 소하(蕭何)가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는데, 유방이 일개 건달이었을 때부터 그를 눈여겨보았던 소하는 내정을 책임지며 유방을 황제로 만들었다. 책략을 담당했던 장량, 군사를 담당했던 한신이 걱정 없이 활동할 수 있었던 것도 소하 덕분이었다.
 
한신의 소화, 유비의 간옹 같았던 권람
 
소하는 장량, 한신과 함께 ‘서한삼걸(西漢三傑)’이라 불렸고 중국 역사를 통틀어 손꼽히는 명재상이니 밤하늘 같은 유형의 참모와는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유비의 참모 간옹(簡雍)을 떠올려도 좋다. 유비와 같은 고향 사람으로 유비가 보잘 것 없는 위치였을 때부터 고락을 같이한 간옹은 참모들의 맏형이 되어 구성원들을 다독이는 역할을 했다. 개성이 강한 신하들이 유비를 중심으로 한팀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바로 간옹의 역할이 컸다.
 
그렇다면 조선의 세조에게 그런 참모는 누구였을까. 보통 임금의 참모는 공식적인 조직을 통한 참모다. 정승과 판서, 승지들처럼 임금을 보좌하고 조언하며 국정을 담당하는 관직에 있는 사람들이 곧 참모가 된다. 측근보다 신임하는 신하가 있을지언정 임금이 사적인 참모를 따로 두지는 않는다. 그런데 조선을 건국한 태조, 대군의 신분으로 정변을 일으켜 왕위를 계승한 태종과 세조는 다르다. 이들은 왕세자가 아니면서 왕좌를 쟁취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과정을 함께 한 개인 참모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태조에게 정도전과 조준, 태종에게 하륜과 이숙번, 세조에게 한명회와 신숙주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 중에서 세조는 책략을 담당하는 한명회, 국정을 맡을 유능한 문신 신숙주를 비롯하여 홍달손·홍윤성·양정 등의 무신(武臣)을 참모로 끌어들였는데, 이들의 선임참모 역할을 한 사람은 권람(權擥, 1416~1465)이었다. 여말선초의 대학자 권근의 손자이자 대제학을 역임하며 뛰어난 문장실력으로 이름이 높았던 권제의 아들인 그는 세조의 첫째 참모다. 실록에 따르면 권람은 자신을 옛날 훌륭한 업적을 남긴 선비들과 같다고 여겼고 소하 같은 신하가 되길 꿈꾸었다고 한다. “남자는 창을 높이 들고 말을 달려 국경에 나아가 공을 세우고, 마땅히 만권의 책을 읽어 불후의 이름을 남겨야 한다”라는 말도 남겼다(세조11.2.6). 입신양명을 하고 싶은 의지가 강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으며 (권제는 첩을 총애하고 본처를 홀대했는데 권람이 이를 간하자 아들을 매질하려 했다고 한다), 또한 여러 불운이 겹치다 보니 서른이 넘도록 작은 관직 하나 얻지 못했다. 이처럼 뜻을 펼치지 못하고 세상에 대한 불만이 쌓이던 와중에 세조를 만난 것이고, 세조의 야망을 알아챈 권람은 그에게 운명을 걸어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이후 권람은 세조를 보좌하며 세조에게 필요한 인재들을 끌어오기 위해 힘썼다. “만일 공께서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고자 하신다면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될 것입니다”라며 당시 미관말직에 불과했던 한명회를 적극 추천한 것도 그였다(단종즉위년.7.28). 한명회를 통해 무장들을 영입하는 일도 그가 맡았다. 은밀하지만 신속하게 권람은 세조의 주변을 채워갔고, 그가 포섭한 인물 중에는 도덕성이나 품행에 문제가 있을지언정 세조에게 도움이 되지 않은 인물은 없었다. 세조에 대한 충성도 변함이 없었다. 이러한 권람의 안목을 높이 평가한 세조는 그에게 이조판서를 맡겨 즉위 초반기 인사 업무를 총괄하게 했다.
 
세조의 조직과 인력 토대 만들어
 
아울러 권람은 세조를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맡는다. [단종실록]을 보면 세조의 담대함을 강조하면서 상대적으로 권람의 소심함을 대비시키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권람이 의견을 내면 세조가 그것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깨우쳐주기도 한다. 본래 [단종실록]의 명칭은 [노산군일기]로, 편찬한 목적 자체가 세조 집권의 정당성을 강조하는데 있었다. 실록에서 세조를 가리킬 때 그가 즉위하기 전이었음에도 ‘수양대군’이 아닌 ‘세조’로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책은 자연히 세조에 대한 예찬으로 가득할 수밖에 없었는데, 주로 권람이 그 조연이 되고 있는 것은 그가 세조의 가장 오랜 참모이자, 실제로도 자신의 보스가 돋보일 수 있도록 스스로를 낮추며 뒷받침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권람의 태도와 자세는 보스와 다른 참모들로부터 깊은 신뢰를 얻게 된다. 세조는 “자네는 틀림없이 나의 마음을 안다”며 믿음을 표시했고(단종즉위년.7.23), 한명회를 비롯한 다른 참모들도 중요한 일들을 권람에게 상의하곤 했다. 참모들이 세조에게 진언하기 껄끄러워하는 말이 있으면 권람이 나서서 대신해주었다. 그는 재테크 능력도 탁월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러한 그의 역량이 세조가 즉위하기 전 수양대군의 조직과 인력을 빈틈없이 운영할 수 있도록 한 든든한 토대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권람은 자신의 보스가 이룩한 성공의 혜택을 그다지 누리지는 못했던 것 같다. 이조판서로 재임하다 병이 들어 명예직인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로 물러난 권람은 이후에도 계속 병치레를 하게 된다. 중간에 우의정과 좌의정에 차례로 제수되기는 했지만 세조 4년 이래 세상을 하직하는 1465년(세조 11)까지 정계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권람이 없었다면 세조의 성공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세조가 “경은 진실로 이 공업(功業)의 주인(主人)이다”라고 한 것은 결코 빈말이 아니었을 것이다(세조11.2.6). 권람이 한명회를 비롯해 사람들을 끌어오지 않았다면, 보급·지원을 책임지며 세조와 다른 참모들을 뒷받침해주지 않았다면, 그리고 세조와 참모들 사이를 원활하게 연결해주지 않았다면, 세조는 아마도 자신의 야망을 실현할 힘을 얻기 힘들었을 것이다. 달빛이 세상에 드리워지고 별들이 빛날 수 있도록 밤하늘이 되어주는 참모, 그런 참모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김준태 -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 성균관대와 동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성균관대 유교문화연구소와 동양철학문화연구소를 거치며 한국의 정치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리더십과 사상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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