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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 AI가 바꿀 노동시장, 고용유연성·사회안전망 함께 갖추자

4차 산업혁명 시대 대비하려면
정부가 대통령 직속으로 ‘4차 산업혁명 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했다. ‘4차 산업혁명’이란 키워드가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언급되기 시작한 건 지난해 초다. 2016년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 주제로 다룬 직후다. 불과 1년반 만에 핵심 국정과제로 떠오른 셈이다.
 
이를 두고 여러 논쟁이 진행 중이다. 일단 표현의 적정성이다. 독일의 인더스트리4.0, 미국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등 유사 개념이 있지만 학계에선 정의조차 제대로 내리지 못한 용어를 너무 쉽게 쓴다는 지적이 있다. 정부가 나서 위원회를 만들겠다는 것을 두고 관(官)이 주도했던 ‘창조경제’의 실패를 되풀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4차 산업혁명이 디지털화의 연장선이든, 굳이 구분해 ‘혁명’이라 부르든 인간의 삶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리란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일자리 감소다. 아마존은 지난해 말 오프라인 식료품점 ‘아마존 고(Amazon Go)’를 열었다. 계산대가 없는 스마트 마트다. 고객이 선반 위에서 상품을 고를 때마다 센서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자동으로 가격이 계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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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건비 부담 때문에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에서 제품을 생산했던 아디다스는 지난해 23년 만에 자국(독일)에 공장을 열었다. 100% 자동화 공정을 갖춘 스마트팩토리다. 상주하는 인력은 단 10명뿐. 그래도 연간 50만 켤레의 신발을 생산한다. 다른 공장이었다면 600명이 매달려야 하는 양이다. 초밥으로 유명한 일본 구라(Kura) 매장에서는 이미 로봇이 인간보다 5배 빠른 속도로 초밥을 만들고 있다. 맥도날드와 버거킹도 역시 무인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인공지능(AI)과 로봇이 중심에 선 4차 산업혁명이 기존 근로 형태와 직업의 개념을 크게 흔들어 놓을 게 확실하다는 의미다.
 
중앙일보·JTBC의 국가 개혁 프로젝트 ‘리셋 코리아’의 고용노동분과 위원은 ‘현재의 노동시장 상황을 그대로 두고선 4차 산업혁명 시대로 나아갈 수 없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4차 산업혁명의 파괴적 영향이 경제·사회 전 영역에서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고 있지만 한국 노동시장을 둘러싼 정책적 담론은 이해관계와 진영에 따라 파편적 논의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4차 산업혁명이 전방위적 변화임을 인정하고 정부는 개혁 리스트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실행과제1. 유연안전성, 4차 산업혁명 열쇠
 
기술의 진보 속도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빨라지면 기업 입장에선 기존 직원의 교육을 통해 대응하는 것보다 외부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낫다. 예컨대 맥도날드가 햄버거 자동 제조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직접 개발 대신 로봇을 만드는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식이다. 프로젝트 단위의 신규 사업을 구상할 때 일시적으로 사람을 모았다가 끝나면 팀을 해체하는 방식도 흔해지는 추세다. 임시직·파견·파트타임 등 비전통적 고용계약이 늘어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근로시간과 여가시간, 근로 공간의 구분도 모호해지고 일생 동안 수차례 직업을 바꾸는 시대가 머지않았다는 의미다.
 
위원들은 이런 고용 패러다임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핵심 키워드로 ‘유연안전성(flexicurity)’을 꼽았다. 박지순 교수는 “미래세대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유연성과 안전성 간 균형점을 갖춘 새로운 노동 규칙을 확립하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유연안전성은 고용의 유연성(flexibility)을 높여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되, 잦은 이직과 대량 실업 등의 문제는 사회안전망(security) 강화를 통해 대응하는 개념이다. 2000년대 초고실업과 저성장, 중국의 부상에 대응해 유럽연합(EU)이 고안한 고용노동정책으로 지금도 큰 방향은 유지되고 있다.
 
전 세계가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전쟁을 치르는 상황인데 국내에선 무르익지 않은 정규직화 논의가 진행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황용석 롯데그룹 경영혁신실 기업문화파트장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산업에 대한 고정관념, 제도적 틀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행과제2. 사회안전망 확대해 실업난 대비
 
유연성의 확대는 실업 증가를 동반한다. 박지순 교수는 “숙련된 고용에 필요한 요건을 갖추지 못한 국민을 지원하고, 직업훈련 등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부여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적 역할”이라고 말했다. 주완 김앤장 변호사(분과장)는 “집단적 실업과 고용형태 변화에 대응할 장·단기적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회안전망 확대엔 재정의 문제가 개입한다. 201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사회복지 지출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21%다. 그러나 한국은 10.4%로 절반 수준이다. 권순원 교수는 “유연한 인사 시스템이 통용되려면 그 부담을 국가와 기업, 근로자가 나눠 지는 게 맞다”고 말했다. 고용보험 확대 등 사회복지 지출을 OECD 평균 수준으로 높이고, 이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증세도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부합하는 인재를 키우고, 개인이 실업과 이직 등에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박가열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은 “한국은 특정 직무에 필요한 지식만 쌓는 단선적 교육으로 인재를 키워 왔다”며 “문제를 인지하고 그것을 정의하는 능력, 종합적인 해결 능력을 키우는 교육으로 선회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행과제3. 규제 풀고 기업 혁신역량 키워야
 
유연성의 부재는 혁신을 위한 창의적 경영을 방해한다. WEF 보고서에 따르면 4차 산업혁명을 위한 한국의 기술적 준비 상태는 경쟁국에 비해 취약하다. 혁신 역량이나 연구기관의 수준, 기업의 연구개발(R&D) 등 부문별 지표에서 미국·독일·일본에 크게 뒤진다. 이는 낮은 노동시장 효율성과 맞물려 한국 기업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김영기 대한산업안전협회장은 “유연한 법과 제도 없인 기업이 사회안전망 확대와 일자리 창출의 주역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노동시장 규제나 노동법 제도가 훨씬 유연하게 작동돼 시장 주체들이 활력 있게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박지순 교수는 “우리보다 훨씬 진보적이고 강력한 노동조합이 있는 선진국도 이미 노동법 체계를 유연하게 바꾸고, 자영업자와 스타트업을 배려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고 말했다.
 
실행과제4. 노사는 공동체의식 갖춰야
 
고용노동분과 위원들은 정책의 불안정성을 해소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라고 입을 모았다. 정부 정책의 일관성이 없다는 것인데 실제로 한국은 정권 교체나 총선 결과에 따라 노동 관련 정책이 전면적으로 바뀌거나, 국회와 행정부 갈등 탓에 주요 정책의 추진이 지체되는 일이 빈번하다. 권순원 교수는 “노사 모두 갈등이 생기면 법원으로 달려가는 ‘갈등의 사법화’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며 “다원주의의 주요 기둥이라 할 핵심 이해관계자들이 서로 대화와 조정을 포기하다 보니 불확실성이 커지고, 기업도 투자를 꺼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책적 일관성이 없는 건 정치 권력의 문제기도 하지만 권 교수의 지적대로 조정 메커니즘이 사라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박가열 연구위원은 “이제 노조도 근로조건과 임금을 넘어 어떻게 일자리를 만들고 발전시킬 수 있는지 기업과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완 분과장은 “한국이 시급히 다뤄야 할 개혁 과제는 크게 정치·경제구조·노동 이 세 가지인데 지난 정부에서 앞의 두 가지는 두고 노동개혁만 강조하다 보니 설득력이 떨어졌다”며 “더 늦기 전에 노동계까지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 시스템부터 정상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원석 기자, 이영민 인턴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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