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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 (탄자니아 둘.)

기자
김종빈 사진 김종빈
 "6개월이요?", "4천만 원이요?" 나는 처음 보는 이들에게 실례를 저질렀다. 묻는 도중에 실례라는 것은 알았지만 내뱉은 단어들을 주워 담기에는 너무 늦었고, 하여 남은 실례마저 저질러버릴 셈으로 계속 물었다. 어느 작가가 그랬었지. 여행은 언제나 용기의 문제라고. 내 앞에 있는 신혼부부는 이 선뜩한 말을 수긍한 것이었을까. 지난 6개월 세계를 돌아다니다가 탄자니아까지 온 것이라고 했다.
 
 솔직한 심정으로 그들의 이야기가 거짓말이었으면 했다. 저런 일이 가능하리라 생각 못했으니까. 나의 용기 없음이라던가, 인연 없음이라던가, 그러니까 없음에 대한 것들이 너무나 분명해지는 탓으로 인정하기 어려웠으므로. 한 쌍의 남녀가 하던 일을 내려놓고 결혼 4일 만에 전세자금을 쪼개가며 세계를 돌다니 이 얼마나 용감하고 사랑스러운 부부인가. 눈앞에 두고 보면서도 믿기 어려웠다.
 
 이렇다보니 궁금했다. 도대체 무엇이 그들의 등을 떠밀고 손잡아 끌어주었는지 말이다. "그게 결혼하는 조건이었어요. 실은 세계여행 하기 위해서 결혼한 거예요." 어떻게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냐는 물음에 신부가 대답했다. 그러자 신랑이 질세라 말을 보탠다. "아마 세계여행을 함께 해준다면 저 아니어도 괜찮았을걸요." 이건 농이다. 지나치다 싶지만 실은 이들의 인연에 가장 적절한 농이다.
 
 집은 있어야 하고, 직업은 어때야 하고, 집안은 이래야 하고, 조건을 따져가며 짝을 찾는 일은 중요하다. 때문에 좀 유별나게 굴어도 어느 정도 그럴만하다고 여긴다. 그런데 세계여행이 조건이란다. 그리고 그 조건을 맞춰준단다. 나는 유별나고 거대하고 무모한 조건 앞에서 헤어지는 연인들을 꽤나 보았다. 그런데 이 둘에게는 그 조건이라는 것이 별문제 없었는가보다.
 
 이야기를 해보니 세상물정 모르는 바보들도 아니었건만(특히나 신랑은 똑 부러지기만 하던데, 어쩌다가 그런 거니. 신부가 그리도 좋았나.) 이렇게까지 하다니, 새삼 사랑을 알았다. 중요한 순간이면 어김없이 주저하던 기억이 떠오르는 탓에 한동안 그 부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손을 꼭 붙잡은 채로 킬리만자로까지 올랐을 것을 생각하니 뭉클하기까지 하다.(참으로도 주책이다.)
 
 아마도 둘은 오래도록 같이 살 테다. 온종일 서로 마주보고 사는 것도 사랑이겠으나, 상대의 표정만 살피는 것으로는 언젠가 질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서로를 살피다가, 때로는 한곳을 보기도 하고, 각자 다른 곳을 보기도 하는 이 둘은 질릴 일은 없으리라. 더욱이 세계를 돌면서 놓지 않았던 두 손을 쉽게 내치는 모습은 상상조차 못하겠다.
 
 부러웠다. 지난 6개월간 곳곳에서 치이고 부대끼면서도 마주잡았을 두 손이, 그 마음이 부러워서 샘이 났다.(정말로 샘이 나서 둘을 얼마나 놀려대었는지 모른다. 영락없이 주책맞은 아저씨다.) 광대한 초원에서 두 손 꼭 잡은 부부라니, 좋은 영화를 한편 본 기분이었다.
 
 한번은 주변 여행자들에게 혹여 라도 눈살을 찌푸릴까싶어 애정표현이 조심스럽던 신랑이 슬쩍 흘렸던 말이 있다. "모자를 가는 나라마다 잃어버리고 다녔어요. 그중에는 마음에 들었던 모자도 많았는데…….그래도 뭐, 제일 중요한 건 안 일어버렸으니 되었네요."(신랑이 이렇게 로맨틱한 대사를 치는데 신부는 세렝게티 얼룩말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맞다. 제일 중요한 걸 지켰으니 모자가 대수인가. 6개월이면 수십 번은 다퉜을 텐데 신부를 잃어버리지 않고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인 이곳까지 왔으니 장하다. 신랑.
 
 부디 바라건대, 행복하기를. 나 같은 녀석들도 끝내 희망을 잃지 않도록, 교훈이 되도록 행복하기를. 결혼의 조건이란 어쩌면 그다지 속물적인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계속 함께할 수 있을지 물어보는 질문지 같은 것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헤어지고 후회하기에만 열심인 내가 주제넘게 말이 많았다. 어지간히도 부러웠는가 보다. 함께하는 내내 정말로 기분 좋은 세렝게티였고, 유쾌했던 탄자니아였는지라 들뜬 기분에 수다가 많았네.
 
 추신, 경율씨, 한국에 와서도 지숙씨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더 꼭 잡아야 할 겁니다.(샘이 나서 그런가, 이런 말만 하게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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