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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공부 끝 ‘고시 책 도둑’ 신세…공무원을 꿈꾸던 학생들은 어디로 가나

 
8년간 행정고시를 준비한 고시 장수생은 결국 ‘고시 책 도둑’이 됐다. 서울 관악경찰서는 지난 1월부터 5월까지 관악구 대학동 고시촌 일대의 독서실에서 17회에 걸쳐 고시 책 54권을 훔치고 독서실 앞에서 잠든 취객의 카드지갑과 휴대폰(총 422만원 상당)을 훔친 A씨(33)를 지난달 21일 붙잡았다.
 
A씨가 2007년 ”행정고시에 도전하겠다“며 지방대를 중퇴하고 서울로 올라왔을 때만 해도 생각지 못한 미래였다. A씨는 2015년까지 시험을 쳤지만 전부 낙방했다. 지난해부터는 홀아버지와도 연락을 끊었다. 8년 동안 생활비를 부쳐준 아버지를 볼 면목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취방을 나온 A씨는 PC방과 찜질방을 전전하며 생활했다. 
 
돈이 떨어지자 자신이 다니던 독서실 등에서 다른 고시생이 두고 간 고시 서적을 훔쳐 중고 서점에 권당 1만~2만원을 받고 팔았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나도 오랫동안 공부한 입장에서 다른 고시생들의 휴대폰과 노트북을 훔치기 미안해 상대적으로 값이 싼 전문서적만 훔쳤다”고 진술했다.
 
A씨가 대학동 고시촌 일대의 독서실에서 훔친 고시서적. 그는 경찰 조사에서 "다른 고시생들의 입장을 생각해 상대적으로 값이 싼 책만 훔쳤다"고 진술했다.[관악경찰서 제공]

A씨가 대학동 고시촌 일대의 독서실에서 훔친 고시서적. 그는 경찰 조사에서 "다른 고시생들의 입장을 생각해 상대적으로 값이 싼 책만 훔쳤다"고 진술했다.[관악경찰서 제공]

 
극심한 취업난 속에 행정고시나 7ㆍ9급 공무원 시험(공시) 합격은 '신화'가 됐다. 극소수만 합격의 기쁨을 누리지만 경쟁률은 치솟았다. 지난 17일 1만315명을 뽑는 9급 지방공무원 채용시험에는 22만501명(경쟁률 21.4대 1)이 몰려 역대 최다 지원자 수를 기록했다. 
 
문재인 정부가 하반기에 소방ㆍ경찰ㆍ사회복지 분야에서 공무원 1만2000명을 추가 채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히자 지원자가 더 몰렸다. 24일 치러질 서울시 9급 공무원 공채 시험의 경쟁률은 82.5대 1이다. 2017년도 국가공무원 7급 공채의 경쟁률은 66.2대 1, 5급 공채 경쟁률은 41.1대 1이었다.
 
‘바늘구멍’을 뚫지 못한 수험생들이 낙오하는 사례도 빈발하고 있다. A씨 같은 생계형 범죄를 넘어 목숨 끊는 사례도 속출한다. 지난해 1월 천안에서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며 부모를 속이고 1년 동안 거짓 출근하던 30대 남성이 자살했다. 올해 4월 청주에서는 20대 남성이 4년째 준비하던 공무원 시험에 낙방한 뒤 어머니와 고향으로 가던 길의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시간과 돈을 투자한 수험생들은 낙방하더라도 쉽게 발을 빼지 못한다. 대학내일 20대 연구소가 지난 3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7ㆍ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데 1년에 평균 1003만원이 들었다. 공무원 시험 준비생 응답자 627명 가운데 ‘불합격 이후 대안이 있다’고 답한 사람은 19.3%에 그쳤다. 장수 공시생이 목숨을 끊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9급 공무원 만화’가 지난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소름 끼치도록 현실을 반영한다”며 화제 모은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7·9급 시험 준비생 627명 중 '불합격할 경우 구체적 대안이 있다'고 답한 사람은 19.3%에 그쳤다. 지난해 7·9급 국가공무원 시험 응시자는 28만9000명, 평균 경쟁률은 87.6대 1이었다. [자료 대학내일20대연구소]

7·9급 시험 준비생 627명 중 '불합격할 경우 구체적 대안이 있다'고 답한 사람은 19.3%에 그쳤다. 지난해 7·9급 국가공무원 시험 응시자는 28만9000명, 평균 경쟁률은 87.6대 1이었다. [자료 대학내일20대연구소]

 
노량진의 공시생 40여 명을 심층 인터뷰해 지난해 『대통령을 꿈꾸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를 펴낸 사회학자 오찬호 작가는 “20대가 어느 정도의 사회적 안정감을 누리는지 나타내는 ‘20대의 사회적 지위’라는 수치가 있다. 한국의 20대 사회적 지위 수치는 OECD 국가 중 꼴찌 수준”이라고 말한다. 그는 “불평등이 심화하는 사회에서 젊은이들은 ‘안정’을 위해 더 경쟁하고 그럴수록 더 불안해진다. 불평등을 개선하고 20대의 사회적 안정감을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윤재영 기자 yun.jae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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