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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같아 보이지만 같지 않은 것들

김세정 런던 GRM Law 변호사

김세정 런던 GRM Law 변호사

살인의 고의를 가지고, 즉 사람을 죽이겠다는 마음을 먹고 사람을 죽이면 ‘살인’이다. 살인의 고의가 없이 결과적으로 사람을 죽인 경우 이는 ‘치사’가 된다. 과실치사나 폭행치사 등 사람을 죽이겠다는 의도가 없거나 사람이 죽는다는 결과를 예견할 수 없었으나 그 행위로 인해 사람을 죽게 한 경우다. 영국 법으로 치자면 모살(murder)과 고살(manslaughter)에 대응시킬 수 있겠다. 두 경우 모두 사람이 죽는 같은 결과가 발생하지만 한국이나 영국의 형법은 둘을 구분해 살인을 더 중한 범죄로 본다.
 
최근 논란이 된 ‘헤어지자고 하는 동거녀를 때려죽이고 사체를 유기한’ 사건과 ‘딸을 성추행한 강사를 불러내 살해한’ 사건에 관해 한국 법원은 전자를 폭행치사로, 후자를 살인으로 보았다. 두 사건 모두 사람을 죽인 점은 같았고 오히려 후자의 동기가 사람들의 감정에 더 호소하는 바가 있었지만 전자보다 더 높은 형을 선고받았다.
 
법원의 판단은 재판 과정에서 나타난 증거 등에 기반해 내리는 것이므로 각 사건의 구체적 사실관계를 알지 못하는 입장에서는 선뜻 위 판단에 관해 언급하기 어렵다. 또한 두 판단이 옳은지 그른지가 여기서 논하고자 하는 바도 아니다. 단지 전자의 사건이 더 흉악한 것으로 보였음에도 더 가벼운 형이 선고된 것은 두 사건에 적용된 죄명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일견 동종의 범죄처럼 보인다고 해도 적용된 죄명이 다르면 처벌이 달라진다. 현대 형법은 단순히 결과가 같다고 해 같다고 판단하고 같이 처벌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동기나 과정이 다르므로 이를 고려해 형벌 역시 달라진다.
 
고대의 법은 이런 고려를 하지 않았다. 함무라비법전의 ‘렉스 탈리오니스(lex talionis)’, 흔히 말하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원칙은 피해에 따라 형벌이 결정됐다. 피해를 준 자는 같은 정도의 피해를 받았다. 여전히 이런 논리로 판결과 처벌을 하는 국가도 존재한다. 지난 2월 이란 대법원은 염산을 뿌려 젊은 여성의 눈을 멀게 한 여성 피고인에게 7년형에 더해 한쪽 눈을 멀게 하도록 한 원심을 확정했다. 또 2015년 IS는 공개적으로 도둑의 손을 잘랐다. 이런 식의 형벌은 얼핏 간결하고 공정하게 보일 수 있다. 염산을 부어 눈을 멀게 한 자나 도둑질을 한 자는 ‘나쁜 놈’이다. ‘나쁜 놈’을 처벌하는 것 아닌가. 그리 복잡하고 머리 아프게 따질 것 없다 싶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사람의 목숨을 빼앗은 자의 경우는 어떠한가. 역시 목숨을 빼앗는 것이 옳을 것인가.
 
그러나 교통사고의 경우를 생각해 보라. 운전대를 잡고 길을 나서는 운전자들이 사람을 치어 죽이겠노라 결심하고 운전하는 경우란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순간의 부주의로 또는 운전 미숙 등의 과실로 피해자가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 현실이다. 어쨌건 사람을 죽인 것은 다 매한가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인명 사고를 낸 운전자의 목숨을 빼앗자고 선뜻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 나아가 음주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낸 경우와 전날 종일 화물 배달을 하고 온 후 단칸방에서 밤새 우는 아기 때문에 제대로 자지 못하고 새벽부터 다시 생계를 위해 졸음운전을 하다 사고를 낸 경우를 똑같이 평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후자는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이기도 하다.
 
언뜻 똑같아 보이고 같은 결과가 발생한 사건들이라지만 따지고 보면 사실은 복잡하고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각 사건의 원인과 배경의 ‘다름’을 파악하고 달리 평가하려 노력하는 것은 복잡하고 머리 아픈 일이다.
 
비단 형법의 적용을 받는 범죄의 영역에서만 이런 것은 아니다. 한국의 고위 공직자 인선과 관련해서도 여러 잘못이 낱낱이 밝혀지는 것을 본다. 하지만 어떤 잘못은 큰 것이며 어떤 것은 작은 것이다. 잘못이니 다 같다고 할 수는 없다. 경중이나 과정을 고려함이 없이 ‘다 똑같이 나쁜 놈’이라고 쉽게 배척해 버리는 것이 훨씬 쉬울 수 있다. 그러나 같고 다름을 따져 구분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도둑질을 했다는 이유로 잘라버리는 손이 장발장의 손이 될 수도 있다.
 
김세정 런던 GRM Law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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