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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기획] "사교육 끊고 학교서 공부했더니 성적이 쑥"...경복고 실험 눈에 띄네

서울 경복고 '자기주도학습탐험대'에 참가한 1,2학년 학생들이 14일 오후 자기주도학습실에서 김성회 수학교사(오른쪽)의 설명을 듣고 있다. 임현동 기자

서울 경복고 '자기주도학습탐험대'에 참가한 1,2학년 학생들이 14일 오후 자기주도학습실에서 김성회 수학교사(오른쪽)의 설명을 듣고 있다. 임현동 기자

지난 14일 오후 5시 서울 종로구의 경복고등학교. 수업이 모두 끝난 뒤라 학교는 한산했다. 운동장에는 두 세명 정도만이 조깅을 하고 있었다. 건물 안도 정적이 흘렀다. 복도와 교실 대부분은 불이 꺼져 있었고, 지나가는 학생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런데 불 켜진 교실이 한 곳 눈에 띄었다. 안에서 학생들 말소리도 들렸다. 자세히 살펴보니 교실 앞문에는 ‘자기주도학습실’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교실 안에는 10여명의 학생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자, 이 문제 한 번 풀어보자.”
 김성회 경복고 수학교사가 스크린에 모의고사 수학 문제를 띄웠다. 둥그렇게 모여 앉은 학생들이 일제히 펜을 들고 연습장에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혼자 힘으로 해결이 안 되는 어려운 문제는 친구나 교사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2학년 임지우 군이 “‘근의 공식’으로는 답이 안 나온다”고 하자 옆자리에 앉은 강준묵 군이 “그렇게 풀면 함정에 빠진다”며 풀이방법을 설명해 줬다. 구본준 군은 “이해 안 가는 부분이 있다”며 손을 들고 교사에게 질문했다.
"선생님,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경복고 2학년 구본준군이 손을 들고 교사에게 질문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선생님,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경복고 2학년 구본준군이 손을 들고 교사에게 질문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이들은 경복고가 운영하는 ‘자기주도학습탐험대’ 참가자들이다. 주5일 중 4회 이상 자율학습을 신청한 학생 가운데 ‘사교육을 받지 않고 공부하겠다’는 서약서를 쓴 학생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프로그램이다.
 
 대부분 학생이 수업 끝나기 무섭게 학원으로 달려가는 것과 달리 이들은 매일 오후 6~9시 학교에 남는다. 매주 화·목에는 국어·영어·수학·사회·과학교사가 번갈아 가며 수업과 질의응답 시간을 갖고, 월·수·금에는 자율학습실에서 혼자 공부한다.
 
 사실 국내에서는 사교육을 받지 않고 혼자 힘으로 공부하는 학생이 흔치 않다. 만 15세 한국 학생들이 받는 사교육 시간은 일주일당 평균 3.6시간(2012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길다. 회원국 평균(0.6시간)의 6배에 이른다. 지난 3월 교육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초·중·고생 중 67.8%가 사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경복고의 자기주도학습탐험대에 참여한 학생들은 “혼자 공부한 덕분에 학습에 흥미가 생기고 성적이 올랐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참가자의 71.4%가 국·영·수 성적이 상승했다. 이들의 1학기 중간고사 평균은 72.9점이었지만 기말고사에선 77.4점으로 4.5점 올랐다. 평균이 20점이나 상승한 학생도 있다. 전체 학생의 과목별 성적 향상도도 뚜렷하다. 국어는 83점에서 88점, 수학은 65점에서 68점, 영어는 75점에서 76점으로 높아졌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2학년 강준묵군은 학원을 그만둔 후 오히려 성적이 오른 학생 중 하나다. 강군은 중학교 3년 내내 수학·영어학원을 다녔다. 하루 평균 4시간 이상을 학원에서 보냈다. 그리고 혼자 공부한 시간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고교에 올라와 자기주도학습탐험대에 참여하면서 학원을 그만뒀고, 혼자 계획을 세워 공부하고 지식을 알아가는 즐거움을 알게 됐다. 중학교 때까지 3등급 대에 머물렀던 성적도 1~2등급으로 올랐다. 강군은 “혼자 힘으로 공부하면서 탐구력이나 문제해결력이 향상됐다”고 말했다.
경복고 '자기주도학습탐험대' 참가자들이 제출한 서약서. '사교육을 받지 않고 혼자 힘으로 공부하겠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임현동 기자

경복고 '자기주도학습탐험대' 참가자들이 제출한 서약서. '사교육을 받지 않고 혼자 힘으로 공부하겠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임현동 기자

 일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방과 후 자율학습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일반고는 많다. 하지만 상당수 고교는 내신 1·2등급의 상위권 학생이 주로 대상이다. 반면 경복고는 성적 우수 학생 뿐 아니라  중하위권 학생들도 참여가 가능하다는 게 특징이다. 
 
2학년 박세호군은 중학교 때까지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였다. 3년 동안 그의 성적은 수학 20점대를 벗어난 적이 없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수학 방정식의 기본인 ‘근의 공식’도 이해하지 못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대포자(대학 진학을 포기한 사람)가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하지만 자기주도학습탐험대에 참여하면서 완전히 달라졌다. 수학의 기초부터 차근차근 익혀 나갔고, 난생 처음 수학 문제집을 끝까지 풀어냈다. 1학기 중간고사에서 30점대였던 그의 수학성적은 최근 치른 시험에선 60점대로 전교 39등을 기록했다. 박군은 “처음으로 계획을 세워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경험을 했다.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게 가장 좋다”며 웃었다.
"화이팅." 경복고 1,2학년 학생들이 '사교육을 받지 않고 공부하겠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들고 의지를 되새기고 있다. 임현동 기자

"화이팅." 경복고 1,2학년 학생들이 '사교육을 받지 않고 공부하겠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들고 의지를 되새기고 있다. 임현동 기자

김성회 수석교사는 학생들이 공부하는 방법을 모른 채 학원에만 의존하는 게 안타까워 해당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일반고의 위기 논란이 끊이질 않던 시기라 의욕이 저하된 학생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다. 김 교사는 “학교가 노력하면 일반고 학생들도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성적에 상관없이 모든 학생이 자신의 꿈을 향해 노력할 수 있게 돕는 게 학교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문재인 정부에서 일반고를 살리기 위해 자사고·외고를 폐지한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해도 바로 일반고의 상황이 개선될 것 같지는 않다. 경복고처럼 일반고 스스로 학생이 원하는 수업·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노력이 있어야 진정한 의미의 일반고 살리기가 가능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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