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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비례대표제를 다시 생각한다

박원호서울대 교수·정치학

박원호서울대 교수·정치학

재미있는 질문 하나. 우리 현행법 중 가장 개혁하기 힘든 것은? 교과서적인 정답은 아마 국민투표를 통과해야 하고 국회 재적 의원의 3분의 2가 찬성해야 고칠 수 있는 헌법일 것이다. 그러나 이 질문의 함정은 국회의원들이 스스로의 정치적 명운을 좌우할 ‘정치관계법’-공직선거법, 정당법, 정치자금법 등-을 국회의원 본인들이 직접 제안·심의·표결하는 과정에 있으며, 따라서 개헌만큼이나 혹은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이 이상의 정치관계법 개혁이라는 게 보다 현실적인 정답일 것이다.
 
새 행정부가 출범하고, 지난해 선출된 20대 국회의원 임기가 만 1년을 갓 넘긴 지금 우리의 정치관계법, 특히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논의를 꺼내는 것이 느닷없거나 성급하다고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국회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무기력이 누증된 것이 오래된 만큼이나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요구와 열망이 한 번도 제대로 충족된 적이 없으며, 그 원인은 전적으로 예외 없이 국회가 스스로의 머리를 깎는 데 실패했다는 데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15일 여야 원내대표가 정치개혁특위 구성에 합의했다는 소식을 환영하며, 선거제도와 관련해서는 항상 여야를 넘어서 현상유지에 매몰됐던 국회의 지체성(immobilisme)을 극복하고 학계와 시민사회의 소리에 귀 기울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선거제도 개혁과 관련해 가장 핵심적인 질문은 우리가 1987년 체제로부터 상속한 현행 선거제도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하는 문제다. 우리 선거제도는 전형적인 소선거구제와 전국을 선거구로 하는 정당 비례대표제로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혼합형 제도다. 아마 선거제도 개혁과 관련해 핵심적인 의제들은 결국 소선거구제가 자아낸 많은 문제를 얼마나 어떻게 비례대표제로 보완할 것인가 하는 질문일 것이다.
 
물론 소선거구제가 만악(萬惡)의 근원은 아니지만, 한국적 토양에서 지역주의 정당의 존립 근거였던 것은 지난 30년 동안의 선거사가 증거한다. 향토를 사랑하는 지역주의 자체 또한 만악의 근원은 아니지만, 우리의 소선거구제는 지역적 패권을 지닌 정당들이 민주적 대의의 길목을 가로막고 새로운 정치적 의제나 새로운 리더십의 발생을 저지하는 요새이기도 했다. ‘새로운 진보’든 ‘새로운 보수’든 이들의 출현을 막는 데는 기존 정당들이 이해관계를 같이했다는 점에서 우리는 매우 강고한 양당제적 카르텔이 지배하는 시간을 살아왔으며, 그 핵심에는 소선거구제가 존재한다.
 
비례대표제도 모든 문제의 해결방안이라고 찬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국구’가 처음 도입됐던 5·16 직후, 제6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이것은 정치적 경험이 전무한 군인들에게 손쉬운 의회로의 교두보로 생각됐을 것이며, 그 의석 배분방식도 제1정당에 오히려 프리미엄을 안기는 ‘불비례대표’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가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선거에서 ‘1인 2표제’를 행사하기 전까지 비례대표제는 소선거구제의 편향을 오히려 강화하는 기제였다.
 
비례대표제에 대한 여전한 의구심은 아마 우리의 정당에 대한 불신과 맞닿아 있을 것이다. 마치 민주공화당이 군인들을 공천했던 것처럼, 정당들이 자신들 나름의 자의적 기준으로 진행하는 비례대표 공천이 선거와는 무관하게 사실상 당락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누가 정당에 그러한 권한을 주었던가? 나는 그 문제가 정당들이 스스로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때로는 유권자들이 꿈을 꿀 권리도 존재한다. 우리의 국회는 50~60대 남성 법률가들이 우점종을 이루는 집단이 아니라 절반의 여성과 다수의 청장년층이, 노동자와 농민들과 장애인과 성소수자들이 스스로를 위한 입법을 고민하는 곳이 될 수는 없는가. 국회가 이들의 ‘소우주(microcosm)’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그 소우주를 닮으려는 노력을 조금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소선거구제가 이를 달성하지 못한다면, 비례대표제야말로 정당에 이러한 고민의 숙제를 떠넘긴 제도가 아니겠는가. 확실한 것은 현행 비례대표 47석에 이런 소우주가 깃들기는 힘들 것이라는 점이다.
 
지난 대통령선거를 포함해 최근 각급 선거에서 드러난 유권자 선호의 분절적이고 다당제적인 경향 또한 지적하고 싶다. 지난 선거들에서 끊임없이 유권자들이 던졌던 메시지는 새로운 진보와 새로운 보수가 필요하다는 것, 혹은 부패·분배·환경·성소수자·육아 등 각종 생활 의제들이 정치의 중심에 있으며 이를 더 이상 종북과 경제성장의 기존 구호들로 포괄할 수는 없게 됐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정치는 여전히 30년 전의 정치이며 우리의 정당들이 논의하는 의제가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한 것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아마, 생존을 위해서라도 우리의 정당과 의회는 이런 유권자들의 요구를 어떤 형태로든 수렴해야 할 것이며, 선거제도 개혁은 그 출발점에 불과할 것이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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