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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의 자유를 위해 틀을 깨며 달려온 반세기

지난 16일 대학로에서 열린 극단 자유 창단 50주년에 참석한 연극인들. [사진 극단 자유]

지난 16일 대학로에서 열린 극단 자유 창단 50주년에 참석한 연극인들. [사진 극단 자유]

자유를 원하고, 새로움을 추구하며, 기성 틀을 깨고자 달려온 50년이었다. 1966년 6월 16일 창단한 극단 자유는 이름 그대로 무대의 자유로 새 삶을 창조하고자 뜻을 모았던 한국 연극 1세대 집단이다. 이들이 지난 16일 서울 대학로 예술극장 씨어터 카페에 다시 모였다.
 
창단 대표인 이병복(90)과 예술감독 김정옥(85), 극단 동인인 배우 박정자(75)와 김금지(75) 씨 등 100여 명이 50년을 증언하는 얼굴로 건재했다. 1960년대 주연급으로 이름을 날렸던 원로 배우 나옥주, 천선녀씨가 모습을 드러내 세월의 무게를 더했다. 극단 자유의 첫 공연 ‘따라지의 향연’으로 데뷔했던 윤소정씨 부음이 기념식 중간에 전해져 참석자들 사이에 흐느낌이 일기도 했다.
 
최치림 대표는 “극단 자유는 지난 50년 동안 163회 공연에 거쳐 간 배우와 스태프가 2000여 명을 헤아릴 만큼 한국 현대연극사의 주축이 되었다”고 인사했다. 창단 당시에는 외국 고전 희극을 소개하며 속도감 있고 웃음 터지는 재기발랄한 작품을 선보이던 극단 자유는 69년 서울 명동에 살롱극장 ‘카페 떼아뜨르’를 세운 뒤 서구 부조리극 소개에 주력했다. 극단이 큰 변화를 보인 때는 78년 집단창작을 내세운 ‘무엇이 될꼬하니’ 이후로 김정옥 연출은 “극장의 형식이 주는 구속을 거부하고 희곡이 주는 구속마저도 거부한 실험”이었다고 돌아봤다.
 
이날 기념식은 ‘극단 자유 50년지’ 발간 축하를 겸했다. 책을 받아든 연극평론가 유민영씨는 “극단 자유가 연극 인재의 사관학교 역할을 하며 한국 연극의 지평을 넓혔다”고 평가했다. TV와 영화에서 활약한 김혜자·최불암·고두심·유인촌·박상원 등이 극단 자유를 거쳐 갔다. 이상일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연극을 한국 무대에 올린 일과 더불어 우리 전통 연희 자산을 해체해 새로운 표현 양식으로 창조하며 새 방향을 제시한 점”을 업적으로 꼽았다.
 
창단 동인들의 회고도 이어졌다. 박정자씨는 “극단 자유에 참여한 일이야말로 내 일생에 가장 잘한 선택이었다”고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박웅씨는 “국내 사정으로 해외 공연이 어려웠던 시기에 극단 자유는 일본과 유럽은 물론, 남미와 아프리카 등 10여 차례 외국 무대를 개척함으로써 한국 연극을 세계에 알렸는데 그 자리에 설 수 있었던 체험은 평생 잊을 수 없는 행운”이라고 말했다.
 
특히 창단 대표로 참여하며 무대미술과 의상을 책임졌던 이병복씨는 ‘연극계의 대모(代母)’란 말을 들을 만큼 한국 연극사의 살아있는 아카이브(기록실) 구실을 했다.
 
사회를 맡은 배우 손숙씨는 “극단 자유 무대에 설 기회가 없어 아쉬웠는데 50년 만에 한을 풀었다”며 “100주년 기념행사가 열려 한국연극사에 최장수 기록을 세웠으면 좋겠다”고 축원했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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