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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년까지 수명 다하는 원전만 11기…불꺼진 원전 맏형 고리 1호기, 탈원전 도미노?

19일 0시로 영구정지된 고리원전 1호기의 모습.[사진 한국수력원자력]

19일 0시로 영구정지된 고리원전 1호기의 모습.[사진 한국수력원자력]

#지난 17일 오후 부산광역시 기장군 고리 원자력발전소 1호기 3층 주 제어실. 터빈 발전기와 원자로, 냉각시스템 등을 관리해 ‘원전의 두뇌’로 불리는 이곳에 이관섭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등 경영진과 고리원자력본부 직원이 모였다. 
 
오후 6시가 되자 고리 1호기 운전원이 제어판에 있는 붉은색 터빈 수동정지 버튼을 눌렀다. 제어판에 표시된 발전기 출력 수치가 ‘0’이 됐다. 터빈은 원자로에서 만들어진 고온·고압의 수증기를 에너지로 변환시키는 기계다. 터빈이 정지하면 전기생산은 이뤄지지 않는다. 박지태 고리 제1발전소장은 “전날까지 원자로 출력 100%, 발전기 출력 60만㎾로 운전하던 고리 1호기는 17일 오전 1시부터 한 시간에 5%씩 출력을 줄였다”며 “오후 6시 수동정지 버튼을 누름으로써 원전의 핵심기능인 전기 생산이 멈춘 것”이라고 말했다. 
 
열을 내뿜는 원자로도 오후 6시 38분 가동을 멈추고 서서히 식어갔다. 원자로 안으로 냉각 제어봉이 들어가자 300도 이상이던 원자로의 온도가 93도 이하까지 내려갔다. 이 온도는 원자로가 더는 핵반응을 벌이지 않는 ‘저온 정지 상태’ 기준 온도다. 한수원은 이 온도가 19일 0시까지 유지되자 고리 1호의 ‘영구정지’를 공식 선언했다. 사람으로 치면 심장이 멈추자 사망선고를 내린 것이다. 이로써 고리 1호기는 ‘생’을  공식 마감했다. 최초 임계(원자로 핵반응)를 한 1977년 6월 19일로부터 정확히 40년 만이다.
 고리 1호기는 78년 4월 29일 상업운전을 시작한 이후 지난해까지 15만5260GWh의 전력을 생산했다. 부산시가 지난해 소비한 전력량의 34배다.  
 
고리 1호기는 향후 5년간 핵연료 냉각 및 해체 계획을 수립한 뒤 2022년부터 본격 해체에 나설 계획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9일 고리 1호기의 구체적인 원전 해체 로드맵을 발표한다.  
 
17일 오후 6시 부산 기장군 고리1호기 원전 3층 주제어실에서 고리 1호기 운전원이 터빈 수동 정지 버튼을 누르고 있다. 왼쪽은 이관섭 한수국수력원자력 사장. [사진 한국수력원자력]

17일 오후 6시 부산 기장군 고리1호기 원전 3층 주제어실에서 고리 1호기 운전원이 터빈 수동 정지 버튼을 누르고 있다. 왼쪽은 이관섭 한수국수력원자력 사장. [사진 한국수력원자력]

 
 고리 1호기의 영구정지는 ‘탈 원전’을 내세워 온 문재인 정부의 정책 기조가 본격화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문 대통령은 대선 기간 ‘40년 후 원전제로(0)국가 달성’을 내걸고, ▶신규 원전 건설 중단 및 계획 백지화, ▶탈핵 에너지 전환 로드맵 수립 등을 공약했다. 문 대통령은 16일 열린 2017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연차총회에서도 “석탄과 원전 발전을 줄여 탈 원전국가로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16일 오후 울산광역시 울주군 새울원전본부. 정문으로 들어서자 ‘APR 1400 원전 수출의 효시’라는 문구가 먼저 들어왔다. APR 1400은 3세대 원전으로,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에서 드러난 미비점을 보완한 한국형 원전이다. 현재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에 4기가 건설 중이다. 2015년에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로부터 사전승인을 받았다.
 
 본 심사를 통과하면 미국 현지에 건설할 수 있다. 원전 본고장인 미국에서 기술적 완성도와 안전성을 인정받으면 향후 수출 시장에서도 더욱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APR 1400 모델로 건설 중인 신고리 4호기(공정률 99.5%)와 신고리 5·6호기(공정률 27.6%)는 운행여부가 아직 불투명하다. ‘탈(脫) 원전’ 을 내세우는 문재인 정부가 신규 원전 건설을 중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자가 이날 신고리 4호기를 방문했을 때엔 사실상 원자로에 핵연료만 주입되지 않았을 뿐 모든 기계가 가동되고 있었다. 신고리 4호기 건너편에는 신고리 5·6호기 공사 현장의 크레인이 시야에 들어왔다. 박병권 새울제1발전소장은 “신고리 4호기는 당초 지난해 말 운영허가를 받고 올해부터 가동에 들어갈 예정이었지만 경주 지진 사태 이후 주민들의 안정성 검토 요구로 재검토를 받고 있다”며 “안전성 확보 대책을 보완해 올해 말 운영허가를 받을 예정이지만 신고리 5·6호의 건설 및 가동 여부는 정부 방침이 정해지지 않아 확실하지 않다”고 말했다.
  
자료 : 한국수력원자력

자료 : 한국수력원자력

 
 고리 1호기 다음으로 영구정지가 될 걸로 보이는 원전은 경북 경주의 ‘월성 1호기’다. 2012년 설계수명을 다해 가동이 중단됐지만 2015년 2월 원자력안전위원회가 “2022년까지 원전을 가동해도 된다”고 결정해 다시 가동 중이다. 하지만 지난 2월 서울행정법원은 월성1호기 인근 주민 2000여명이 낸 수명연장 무효화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원안위와 한수원은 즉각 항소했다.
 
월성 1호기 이후에도 노후 원전의 가동 중단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수원에 따르면 2030년까지 설계수명이 만료되는 국내 원전은 월성 1호기를 포함해 총 11기다. 문재인 정부 기간 고리2·3호기의 연장 운행 여부 결정될 가능성이 있다. 
 고리 1호기의 운행정지 결정을 한계수명 도달 2년 전인 2015년 산업부가 결정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 기조를 보면 이들 원전의 10년 계속운전(연장운전) 가능성은 작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공약에 따라 향후 원전 건설 계획의 백지화 가능성도 현실화 되고 있다. 한수원은 지난달 25일 경북 울진에 건설 예정이었던 신한울 원전 3·4호기의 시공 설계를 일시 보류했다.  
 
 
 

 
문제는 현재 건설이 진행중인 원전이다. 현재 건설이 진행 중인 원전은 총 11기다. 공정률이 90%를 넘은 원전도 신고리 4호기와 신한울 1·2호기가 있다. 신고리 5·6호기는 공정률 27.6%로 이미 1조5242억원이 투입된 상태다. 만일 건설이 중단된다면 이로 인한 기회비용으로 진통이 예상된다. 실제로 신고리 5·6호기를 둘러싼 지역 주민들의 갈등은 심각한 수준이다. 
 
신고리5·6호기가 지어지는 울주군 서생면 지역 주민들은 “건설이 중단되면 지역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준다”고 주장하며 ‘원전 건설 정상 추진’ 등의 구호를 담은 플래카드를 원전 주변에 걸고 있었다. 
 반면 울산탈핵시민공동행동 등 지역의 시민단체들은 “시민 안전을 위해 무조건 건설이 중단돼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일단 정부는 일단 신고리 5·6호기에 대해 안전성, 경제성 등 모든 사항을 검토해 건설 계속 여부를 정하기로 했다. 그 사이 공사는 계속된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새울원전본부에 위치한 신고리 3ㆍ4호기의 모습[사진 한국수력원자력]

울산광역시 울주군 새울원전본부에 위치한 신고리 3ㆍ4호기의 모습[사진 한국수력원자력]

 
 일각에서는 국내 전기생산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석탄과 원자력 발전의 비중을 축소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지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한다. 지난해 기준 국내 전력 공급의 39.3%는 석탄이, 30.7%는 원전이 담당하고 있다. LNG 발전은 18.8%,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4.7%다. 
 
문 대통령은 원전과 석탄화력 비중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20%까지 늘린다는 공약을 내놨다. 발전 단가는 원전(㎾h당 68원)과 석탄화력(73.8원)에 비해 LNG(101.2원)·신재생에너지(156.5원)가 높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이번 고리1호기 영구정지로 인해 앞으로 고리2호기 등 다른 원전의 계속운전 자체가 시도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며 “탈원전 흐름에 따라 신고리5·6호기를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지만 오히려 고리1호기 중단으로 인한 전력 손실을 신규 원전으로 뒷받침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허은녕 서울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신재생에너지와 LNG발전 비중을 확대하려면 결국 예산이 필요하다”며 “정부 재정 투입이나 전기요금 인상 등의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후 원전의 ‘폐로(廢爐)’를 위한 선결 조건인 사용후 핵연료 처리장 마련 등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점도 문제다. 김창락 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노후원전을 해체하더라도 결국 원전에서 나오는 사용후 핵연료 등을 처리할 장소를 마련하지 않으면 완전해체로 인정할 수 없다”며 “탈 원전 목표를 정부가 달성하려면 고준위폐기물 관리처리절차법 통과 등 관련 제도 마련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기장·울주=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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