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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유생 복장하고 다도·활쏘기 … 선비처럼 살아보자

서악서원이 자리한 경주시 서악동 전경.

서악서원이 자리한 경주시 서악동 전경.

족히 몇 백 년은 돼 보이는 전통 건축물 문을 조심스레 열어젖혔다. 머리에 유관(儒冠)을 쓰고 유복(儒服)을 갖춰 입은 여행객이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안마당을 어슬렁거린다. 문턱 하나만 넘으면 조선시대로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는 이곳은 경북 경주시 서악동 서악서원이다. ‘경상북도 기념물 제19호’로 등록된 진짜 ‘문화재’다.
 
지난 6월 10일 오후 3시 서원 앞마당에 모여 유복으로 갈아입는 것으로 조선 선비 체험이 시작됐다.
 
“서악서원은 1561년 경주 사대부 이정이 세운 사립학교입니다. 조선 16대 왕 인조가 현판을 내린 사액서원(왕으로부터 편액·서적·토지·노비 등을 하사받아 권위를 인정받은 사원)이기도 하죠. 조선 후기 흥선 대원군이 전국의 사원을 철폐하라는 명을 내린 적이 있어요. 전국 600여 개의 서원이 문을 닫는 와중에도 서악서원은 굳건히 살아남았습니다. ”
 
이정희(54) 문화해설사가 서악서원의 역사와 유래를 조곤조곤 풀어낸 이곳은 서악서원 현판이 걸린 시습당이다. 조선시대 유생은 이 자리에서 유교 경전을 공부하고 친구와 교류했다. 그 옛날 선비가 생활했던 장소에 앉으니 기분이 묘했다. 평생 한 번도 걸쳐 보지 못한 유생 복장을 입어서인지 품행도 절로 방정해졌다.
 
조선시대 서원은 교육기관인 동시에 선현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기도 했다. 서악서원 역시 시습당 뒤편에는 서악서원이 기리는 신라 김유신 장군과 신라 문장가 설총·최치원의 위패를 모신다. 시습당의 왼편과 오른편에는 유생의 기숙사였던 서재와 동재가 남아 있다.
 
조선시대 교육기관이었던 향교와 서원 중 87곳이 전통문화 체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경주  서악서원에서 진행하는 선비 체험에 참여한 어린이 여행객.

조선시대 교육기관이었던 향교와 서원 중 87곳이 전통문화 체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경주 서악서원에서 진행하는 선비 체험에 참여한 어린이여행객.

지금껏 방문했던 궁궐이나 유적지 등 여타 전통 건축물과 서악서원의 가장 큰 차이점은 ‘들어가지 마시오’라고 쓰인 푯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출입을 막는 저지선이 어느 곳에도 하나 없었다. 대신 ‘신발을 벗고 올라가세요’라고 쓰인 친절한 안내판이 붙었다. 서악서원을 방문하는 누구나 전통 건축물에 다가서고, 만져 보고, 앉아 보고, 둘러볼 수 있다는 얘기다.
 
사실 서악서원도 다른 전통 건축물처럼 일반인에겐 마당만 허용했다. 2014년 문화재청이 전국에 남아 있는 향교(조선시대 국립 교육기관)와 서원을 활용할 수 있도록 허가하면서 비로소 사단법인 신라문화원이 서악서원을 전통문화 체험 장소로 가꿨다. 여행객은 체험이 있는 날 오후 3시부터 9시까지 서악서원에서 유생 복장을 입어 보고 다도를 배울 수 있다. 따로 신청하면 동재와 서재에서 숙박도 가능하다.
 
서악서원 안마당에서 열리는 국악 공연.

서악서원 안마당에서 열리는 국악 공연.

“쥐가 들끓던 서악서원은 사람들 발길이 뜸해 을씨년스러웠습니다. 깨끗하게 정비를 해 놓고 체험거리를 마련하니 한 해 여행객이 1만5000명이나 찾아옵니다. 잘만 활용하면 오히려 수명이 연장되는 문화재도 있어요.”
 
진병길 신라문화원 원장은 “2014년 전국의 향교와 서원 38곳이 개방됐는데 서악서원 등의 성공에 힘입어 현재 문화공간으로 이용되는 향교·서원이 87개로 늘었다”고 덧붙였다.
 
일일 선비가 돼 서원에서 보낸 6시간은 특별히 하는 일이 없어도 즐거웠다. 한옥 건물의 시원한 맞바람을 맞으며 명상을 즐기고 전통 활쏘기 죽궁도 체험했다. 서악서원이 있는 서악동에는 신라 고분 50기가 남아 있다. 유생 복장을 하고 신라 24대 진흥왕 무덤과 주인을 알 수 없는 신라의 대형 고분 사이를 유유자적 산책했다.
 
어둑해지자 서원은 낮과는 전혀 색다른 분위기로 변신했다. 색색의 조명이 켜지고 음향시설이 설치됐다. 서원 안마당에서 국악음악단 가람예술단이 연주를 한 것이다. 2017년 4월부터 매주 토요일 서원에서 국악뮤지컬 등의 공연이 한 시간 진행돼 오고 있단다. 누구에게나 개방된 무료 공연이라 300석 객석이 꽉 찼다.
 
문화재라고 하면 닫힌 공간, 죽은 공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서악서원은 사람의 생기가 가득했다. 박제된 ‘보존’이 아니라 ‘활용’이 문화재를 지키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대한제국 고종 황제의 개인 카페였던 서울 덕수궁 정관헌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실 수 있다면, 신라 왕의 연회 장소인 경주 포석정에서 근사한 파티가 열린다면 멋지지 않을까. 현대인과 호흡하는 문화재에서 ‘발칙한’ 상상을 했다. 
 
◆여행 정보
신라문화원(silla.or.kr)이 경북 경주시 서악서원에서 11월까지 매달 1~2회 선비 체험을 진행한다. 예절과 다도, 죽궁을 배우고 진흥왕릉·서악리 삼층석탑 등 신라시대 고분과 유적지 답사도 곁들인다. 일몰 후 무열왕릉 야간투어도 할 수 있다. 7월에는 8일과 29일, 8월에는 12일에 진행한다. 참가비 1인 1만원. 054-774-1950. 동재와 서재 숙박은 일~목요일 객실당 5만원, 금·토요일 7만원이다. 경주고택(sillaculture.cafe24.com) 홈페이지에서 예약 가능하다.
 
경주=글·사진 양보라 기자 bo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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