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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왜 하는가

기자
전새벽 사진 전새벽

이야, 정말 오랜만이다. 그러게 말야, 잘 지내지? 물론이지, 결혼 생활은 어때 누나?
그러자 그녀는 웃음기를 거두고 엄숙한 자세로 다가와 이렇게 속삭였다.

-넌 결혼 하지마.

농담이겠 거니했다. 그러나 그녀는 끝내 웃지 않았다. 몇 년 전에 수 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성대한 결혼식을 치른 선배였다. 그녀에게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내가 봉투를 들고 몰려드는 하객들에게 곧 둘러싸이고 말았기 때문에 오랜만의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나고 말았다. 나는 접수대에 앉아 축의금을 받는 중이었다. 조금 한산해지고 주위를 둘러보자 그녀도 인파 속 어딘가로 자취를 감춘 뒤였다. 신랑입장! 이라는 사회자의 말이 식장 밖으로 울려 퍼지는 것을 들으며, 나는 오늘 결혼식의 주인공들이 앞으로 무탈하기를 바랐다.

저녁에는 친구들 모임이 있었다. 무리 중엔 결혼을 앞 둔 놈이 둘(둘이나!) 있었다. 녀석들은 우리가 맥주를 마시며 왁자지껄 떠드는 동안 어딘가 넋이 나간 사람처럼 나무 테이블의 무늬를 관찰하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전에 청평에 놀러 갔을 때 말이야, 참 재미 있었는데, 그치?” 라는 뜬금없는 말을 하면서 대화의 흐름을 방해했다. 그래서 “예비 유부남들은 슬슬 들어 갈래?”라고 눈치를 주려는데 놈들은 알아서 짐을 챙겨 일어났다. “예비 신부가 기다리고 있거든”이라며 멋쩍게 웃는 놈들의 표정에는 49 정도의 다정함과 51 정도의 짜증이 섞여 있었다.‘노총’들 (언젠가 이 그룹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결혼파와 ‘노총’이다. 노총은 노동조합총연맹과는 상관없는, 노총각의 줄임말이다)은 자리에 남아 결혼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얘기했다.

-정말 이상한 일이야. 다들 하고 싶어 하면서, 하고 나면 하나같이 후회하는.

-무엇보다 그 과정이 정말 미스터리해. 결혼하기 전엔 누구나 간소한 절차를 꿈꾸잖아?
예물없이, 예단없이, 하객도, 비용도 최소로. 그런데 막상 닥치면 왜들 그렇게 기피하던 형태로 결혼하게 되는 걸까. 다들 준비하면서 ‘제발 이 결혼식이 빨리 끝났으면’하고 바라는 것도 웃기고.

-어쩌면 그런 게 아닐까? 앞으로 같이 살아가려면 얼마나 많은 힘든 일들이 있겠어. 그러니까 결혼식까지의 과정을 엄청 복잡하고 힘들게 만들어 놓은 거야. 이 정도를 견딜 수 없는 커플이라면 일찌감치 포기해라, 라는 일종의 경고인거지.

-싫다.

-맞아, 싫지.

그런 얘기를 하면서 우리는 또 다시 잔을 비웠다. 그리곤 멍하니 화면에 나오는 야한 뮤직 비디오를 보고 있는데 바텐더가 다가와 “너희, 맥주 더 줄까?”라고 물었다. 우리는 늘 그렇듯 씩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찍 집에 간단들 기다리고 있는 와이프 같은 것은 (다행히)없으니, 오늘도 양껏 마실 참이었다. 남자 바텐더가 우리에게 맥주를 따라주고, 여자 바텐더가 반대쪽에서 손님들을 맞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저녁마다 우리를 반겨주는 이 남녀 바텐더도 부부사이다. 한 사람이 바쁜 틈을 타 다른 한 쪽에게 은근히 묻는다.

-형, 결혼은 안 해도 되는 거죠?

그러자 그는 맥주를 따르다 말고 정색을 하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결혼이 얼마나 멋진 건데! 너희도 빨리 해!

모두 어리둥절.

-그동안 저희한테 결혼은 최대한 늦게 하라고 강조 하셨잖아요? 어떻게 된 거예요? 갑자기 사이가 좋아지기라도 하셨나?

-아니. 사실 결혼은 끔찍하지. 근데 나만 당할 수는 없잖아. 하하하!

그는 그 농담이 재미있어 견딜 수 없다는 듯이 웃어 제꼈다. 나와 친구들은 황당한 표정으로 말없이 그가 따라준 맥주를 마셨다. 밤은 깊고 맥주는 시원했다.

그날 밤, 노총들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나는 줄곧 결혼에 대해 생각했다.

예식장에서 만난 선배나 바텐더의 말 외에도, 결혼에 관한 얘기 중에는 훨씬 우리를 더 황당하게 하는 것들이 있다. 기나긴 수감생활동안 혹독한 매질과 고문을 이겨낸 그 넬슨 만델라조차 결혼생활은 견뎌내지 못하고 이혼했다든가, 결혼식과 장례식의 차이는 ‘장례식에선 한 사람만 묻힌다는 것’이라는 농담과 같은. 그리고 가장 압도적인 것은 미국의 소설가 레이먼드 챈들러의 ‘필립 말로’ 시리즈 중 <기나긴 이별>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대사다.

(결혼은) 100명 중 2명에게는 멋진 일이다.

이런 얘기들을 보고 있자면 정말 결혼은 바보 같은 짓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결혼기피 현상은 점점 두드러지고 있다. 1996년 한해 43만건이었던 혼인신고는 20년 뒤인 2016년에 28만 건으로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남녀 28세와 25세였던 평균 결혼 나이도 33세와 30세로 각각 5년씩 늦춰졌다. 안 하거나, 최대한 늦게 한다는 얘기다. 모두들 넬슨 만델라나 레이먼드 챈들러의 이야기를 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결혼이란 정말 할 필요가 없는 일일까?

여기에 ‘그렇지 않다’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일본의 호스피스 전문의 오츠 슈이치다. 그는 1천 명이 넘는 말기암 환자들의 임종을 지켜본 뒤 사람들이 죽기 전에 가장 많이 남기는 후회들을 모아 책을 한 권 썼다. 그에 의하면 죽기 전 가장 흔한 후회 중 하나는 ‘결혼을 했더라면’이라는 아쉬움이다. 죽음을 앞둔 환자들이 새삼 그때 가서 그런 후회를 하는 이유는 뭘까? 이토록 전국의 수많은 미혼남녀를 헷갈리게 하는 결혼이란 대체 왜 하는 걸까? 여기에 그 이유를 적는다.

인간의 본성 중 가장 강한 것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존재증명의 욕구’를 꼽는다. 그러면 누군가는 ‘식욕’이나 ‘성욕’이라고 쓰인 답안지를 들고 항의를 할지도 모른다. 글쎄, 다음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라.

① 죽을 때까지 먹을 것과 따뜻한 잠자리가 제공되는 무인도 (물론 당신 말고는 아무도 오지 않을 예정이다)
② 먹을 것도 잠자리도 치열하게 싸워 얻어야 하지만 사람들과 버무리며 살 수 있는 곳
당신은 어디에서 살고 싶은가?

대개는 2번을 고를 것이다. (만일 당신이 1번을 골랐다면 정중하게 부탁하건대 이만 컴퓨터를 끄고 당장 휴가를 가라. 당신에겐 휴식이 필요하다.) 그 결과가 보여주듯이 우리에겐 타인이란 존재가 필요하다. 먹을 것보다도 더 필요한 것이 타인의 존재다. 여기서 타인이란 포옹을 하고 입을 맞출 수 있는 상대에만 국한되는 말이 아니다. 동성이든 이성이든 외국인이든 나이 차이가 어떻든,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것은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싶어하는 종種이기 때문이며, 우리 존재의 증명이란 오로지 타인에 의해서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얘기냐고?

숲에서 나무가 쓰러졌는데 주변에 아무도 없어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면, 나무는 과연 소리를 낸 것인가?

아일랜드 출신의 철학자 조지 버클리는 위와 같은 질문을 던지며 “존재하는 것은 곧 지각되는 것”이라고 했다. 아무도 그 존재를 몰라준다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인식 덕분에 존재한다. 나라는 존재를 아무도 모르고 있다면 내가 살아 숨쉰다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으며, 그걸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멀리 서양철학까지 갈 필요도 없다. 우리에게 익숙한 김춘수의 시에도 이것이 이미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그것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 존재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는다. 이름을 불렀을 때 비로소 존재는 “꽃”이 되는 것이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는 시인의 말보다 존재증명의 욕구를 잘 보여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란 참으로 복잡하고 계산적인 동물이라, 존재를 그저 존재하는 것으로만 인식하지는 않는다. 누구든 타인의 존재를 떠올릴 땐 ‘그이는 어떤 사람’이라는 주관적 해석을 달게 마련이다. 섣부른 주관적 견해는 서운함이나 분노를 낳기도 한다. 그러니까 우리에겐 정말 우리를 잘 알고 있고 이해하는, 그러면서 끊임없이 우리의 존재를 증명해줄 살가운 타인이 필요한 것이다. 부모가 세상을 떠나고, 친구들이 맥줏집을 떠나고, 젊음이 끝나고, 경제활동이 끝나고, 한 시절이 저물어 가는 동안 계속해서 나의 곁에서, 나를 인식해줄 소중한 동반자가 필요한 것이다.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결혼만큼 적합한 제도가 없지 않나 한다. 자본주의란 결코 완벽하지 않지만 지금 우리에겐 딱히 대안이 없는 것처럼, 결혼이란 것(특히 한국의 결혼 문화) 상당히 문제가 많지만 지금으로선 그게 최선이지 않은가, 하고 말이다.
 
진심으로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앞으로 인류는 생명연장에 따라 결혼도 여러 차례 하게 될 것이라고 떠드는 미래학자들과 일부일처제는 지극히 부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외치는 일부 인류학자들과, ‘네 커플 중 하나는 이혼한대’라는 통계를 들먹이며 술이나 마시자고 꾀어내는 친구들 사이에서 힘겨운 과정을 밟고 있는 모든 예비 부부에게. 그리고 한 가지를 당부한다. 부디 끝없이 늘어선 ‘해야 할 일’과 ‘만나야 되는 사람’을 줄이고 부디 서로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을 늘려 가기를. 그렇게 언제든 서로의 존재를 증명해주는 소중한 반려자로 성숙하기를. 그리하여 결혼이란 거 참 좋은 일이더라, 라는 말이 세상에 많이 돌기를. 그것이 영향을 미쳐, 우리 노총 그룹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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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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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