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J가 가봤습니다] ‘탄소 제로섬’ 가파도? 전력 57%는 디젤 발전이군요

‘친환경 명품 섬’.
 
제주도 남단 모슬포항과 마라도 사이에 위치한 작은 섬,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가파도 선착장에 내리면 이런 문구가 새겨진 기념비가 반긴다. 이어 ‘탄소 제로섬(Carbon Free Island)’이라는 안내문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섬 어디에서나 보이는 높이 30m의 풍력발전기 2대는 가파도의 상징으로 많은 관광객을 끌어 모은다. 바람과 태양 만으로 주민 227명, 129가구가 쓸 전력을 충당하는 ‘에너지 자립 섬’으로 유명하다. <본지 2016년 7월 13일자 B2면>
 
하지만 이런 화려한 수사는 사실과 달랐다. 지난 8일 가파도 발전소 1층에 위치한 마이크로 그리드 운영센터 모니터 현황엔 가파도 누적 발전량(1871MWh)의 57%가 경유를 쓰는 디젤 발전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표시돼 있었다. 가파도 주민과 방문객이 사용한 전력 절반 이상이 화석 연료로 생산된 것이다. 같은 기간 풍력은 32%, 태양광은 11%의 전력을 생산하는 데 그쳤다.
 
8일 제주도 가파도의 상징으로 유명한 풍력 발전기 두 기의 프로펠러가 돌아가고 있다. 이 풍력 발전기는 가파도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는 데는 기여했지만, 이 지역 바람 특성이나 지형에는 잘 맞지 않는 에너지 설비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영선 기자]

8일 제주도 가파도의 상징으로 유명한 풍력 발전기 두 기의 프로펠러가 돌아가고 있다. 이 풍력 발전기는 가파도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는 데는 기여했지만, 이 지역 바람 특성이나 지형에는 잘 맞지 않는 에너지 설비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영선 기자]

한국전력을 대신해 가파도 발전소를 운영하는 업체인 JBC의 김문봉 사업소장은 “풍력과 태양광이 일정하게 전력을 생산하지 못해 비상시에 대비해 디젤 발전을 병행하고 있다”며 “기상 상황이 나빠 디젤 발전만 6일 연속으로 한 시기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제주도와 한국전력의 설명과는 달리 보조 수단이라던 디젤 발전이 오히려 주력인 셈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우선 2012년 제주에서 열린 세계자연보전총회(WCC) 개최를 앞두고 면밀한 타당성 검토 없이 풍력 발전기를 들여오면서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급하게 들여온 가파도 풍력 발전 설비는 인도 에너지 기업인 시바에서 만든 것으로 이곳 특성과는 맞지 않는다. 둘 중 한 대, 혹은 두 대 모두 가동을 하지 못할 때가 많아 한동안 “높은 사람이 와야 돌아간다”는 말이 돌았을 정도다.
 
신재생 에너지를 저장할 에너지저장장치(ESS)의 규모가 충분치 않은 것도 문제다. 스마트 그리드는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 곳마다 개별 ESS를 두고 연결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이렇게 해야 생산하고 남은 전력을 ESS에 저장해 나중에 쓰거나 팔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가파도에 설치된 3대의 ESS 용량은 3.86MWh 정도로 비축에 한계가 있다. 저장 설비 가격이 계속 떨어졌지만 아직도 1MWh 증설에 약 8억원이 든다. 이미 수십억원을 써 더 이상의 증설은 쉽지 않다.
 
제주도와 한국전력이 지난 5년간 가파도를 탄소없는 섬으로 만들기 위해 쓴 돈은 국비와 도비 등을 모두 합해 약 143억원이다. 이는 주민 부담금은 제외한 수치다. 가파도 48가구에 설치한 태양광 패널(3Kw) 설치 비용은 각 1260만원에 달한다. 이 중 10%(126만원)는 수혜 가구가 부담해야 한다.
 
가파도 선착장 인근에서 숙박업소를 운영하는 한 주민은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라는 연락이 오지만 거절하고 있다”고 말했다. 패널은 약 15년을 써야 경제성이 있지만 소금기가 많은 섬이나 바닷가에서의 수명은 이보다 짧다. 이 주민은 “제주도 본가에 설치해보니 당장은 공짜 같아 펑펑 쓰니 좋지만 잘 부식돼 신경이 쓰인다”며 “고장나면 목돈이 들어가 결국엔 전기세를 내는 것과 차이가 없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가파도의 중앙에 위치한 가파발전소 전경. 디젤 발전용 연료 저장 탱크(왼쪽)와 에너지저장설비(ESS)가 보관된 가건물이 나란히 보인다. [전영선 기자]

가파도의 중앙에 위치한 가파발전소 전경. 디젤 발전용 연료 저장 탱크(왼쪽)와 에너지저장설비(ESS)가 보관된 가건물이 나란히 보인다. [전영선 기자]

가파도가 겪는 문제는 에너지 자립성을 표방한 섬들의 공통된 문제다. 감사원에 따르면 에너지공단이 조성한 백아도(옹진군) 등 7개의 에너지 자립 섬 모두 ESS의 용량 부족 등을 이유로 디젤 발전기를 우선 가동하면서 태양광·풍력 발전설비를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않고 있다. 한국전력이 울릉도에서 추진하던 친환경에너지 자립 섬 조성사업은 기간이 촉박하다는 이유로 민간 사업자가 제시한 부풀려진 경제성 분석결과를 이용하다 감사원에 부적정 통보를 받았다.
 
더 큰 문제는 근본적 해결책 없이 유사 프로젝트가 쏟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4월 공개된 ‘2025년 제주도특별자치도 도시계획’에 따르면 “제주도는 전력 부문에서 신재생에너지만 쓰고 있는 가파도를 거점으로 2030년까지 제주도 총 전력 사용량인 1만1334GWh를 모두 신재생 에너지로 공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국전력 관계자는 “에너지공단과 함께 제주 비양도와 우도에 가파도와 같은 플랫폼을 도입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두 섬 역시 디젤발전소를 ‘콘트롤 발전소’로 사용할 예정이라 ‘무늬만 탄소없는 섬’이 될 위험이 있다. 한 환경 전문가는 “각각의 섬 특성에 맞지 않는 기술을 억지로 적용하다 보니 실패한 사업이 속출하고 중복 투자도 많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전력을 비롯해 에너지 공기업이 신재생 에너지 분야에 투자한 예산은 총 6조4000억원에 달한다. 2015년보다 2배 이상 늘어났다. 중복투자와 무리한 사업 진행 등이 드러나 예산 낭비였다는 지적도 많다. 문재인 대통령은 2030년까지 신재생 에너지 비율을 20%로 끌어 올리겠다고 공약했다. 2015년 기준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5.3%인데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이 중 순수 친환경 에너지 비중은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익명을 요구한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엄밀히 따져보지 않고 의욕만 앞서면 좋지 않은 선례만 쌓는 악순환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가파도는
●위치: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가파리
●면적:0.87㎢
●인구: 227명(129가구)
●하루 사용 전력 평균:119㎾(40~224㎾)
 
가파도=전영선 기자 azul@joongang.co.kr
AD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