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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칼럼] 문재인, ‘반성문’대로만 하면 된다

이하경 주필

이하경 주필

 
문재인 대통령은 기성정치를 멀리해 온 특이한 정치인이다. 2012년 대선에서 1369만 표를 받고 패배한 뒤에도 스스로를 흔쾌하게 정치인이라고 밝히는 데 주저할 정도였다. 2013년 12월 내놓은 저서 『1219 끝이 시작이다』에선 자신을 '정치인'이라고 하지 않고 '대한민국 법조인, 시민 운동가, 정치인'이라고 소개했다. 2002년 운명적 동지인 노무현의 대선캠프에서 부산선대본부장을 맡았지만 입당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았다. 권력의지가 아닌 '선한 의지'를 소중하게 생각했던 문재인의 집권은 현직 대통령을 끌어내린 촛불 시민혁명의 강력한 흐름이 그를 선택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문재인은 가족 식사와 치약·칫솔 구입비용을 사비로 처리하고 있다. 올해 남아 있는 청와대 특수활동비와 특정업무경비 126억원 가운데 42%인 53억원을 남겨 청년 일자리를 늘리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데 쓰기로 했다. 이정도 총무비서관의 얘기대로 주인이 아닌 전세 세입자로 살아가고 있다. 대통령이 돼 달라진 건 전세 살던 전용면적 84㎡인 홍은동 연립주택에서 청와대 관저로 이사했다는 사실뿐이다. 바티칸의 호화로운 관사를 거부하고 19세기의 호스피스 병동이었던 게스트하우스로 들어간 프란치스코 교황처럼 나그네라는 본분을 잊지 않고 있다.
 
선한 성정(性情)의 문재인에 대한 지지는 하늘을 찌르지만 국정 운영은 쉽지 않다. 후보 시절 확고한 원칙으로 제시했던 고위 공직인사 배제 5대 기준이 발목을 잡고 있다. 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위장 전입, 세금 탈루, 논문 표절에서 자유로운 후보자는 찾기 힘들다.
 
사실 이건 원칙주의자 문재인의 잘못이 아니다. 이 나라 지도층의 빗나간 처세와 편법을 용인해 온 낡은 관행이 문제다. 그래서 정의와 원칙을 지키되 현실적 조건을 헤아리는 리얼리스트의 지혜가 필요하다. 문재인은 스스로 출구를 제시한 적이 있다. 대선 패배를 자성한 책 『1219 끝이 시작이다』는 통렬한 반성문이었다. 문재인은 자신의 내부에도 근본주의가 있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독재 권력에 맞서 싸우던 민주화운동 시절 지켜왔던 원칙이나 순결주의가 유연성을 가로막고 있다고 진단했다.
 
“성장과 안보에 관한 담론 부족은 확실히 우리의 큰 약점이었다. 국민은 그 점을 꿰뚫어 보고 있다. 보수진영보다 더 뛰어난 경제 성장 전략을 가지고 있어야 국가 경영을 맡을 수 있다. (중략)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우리의 사고를 확장해야 한다. (중략) 이제부터라도 우리의 확장을 가로막았던 근본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중략) 더 유연한 진보, 더 유능한 진보, 더 실력 있는 진보가 돼야 한다. 우리도 보수진영이 갖고 있는 좋은 가치와 정책을 적극 수용할 수 있어야 더 폭넓은 진보가 될 수 있다.”
 
다시 태어나겠다는 비장한 결의다. 문재인이 자기 진영을 넘어선 사람들까지 인재풀에 포함해 기용하려 했다면 지금처럼 인사 검증의 장벽에 갇히진 않았을 것이다. 정책에서도 더 현실적이고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저소득층을 살리기 위해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은 선의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시급을 1만원으로 올린다고 하자 편의점주들이 “차라리 내가 알바를 하겠다”고 하소연하는 현실은 선의를 배반하고 있다.
 
문재인은 박근혜-최순실 세력의 국정 농단에 분노해 “이게 나라냐”고 절규한 촛불의 힘으로 당선됐다. 그러나 여야의 의석 비율은 탄핵 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지지율이 추락한 107석의 제1야당 자유한국당은 스스로 친박세력을 사면하고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 보수의 치욕이다. 하지만 분단 국가인 한국은 문재인이 생각했듯이 보수세력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진보에게 유리한 지금의 구도는 일시적이고 불안하다. 문재인이 허점을 보이면 한순간에 허물어지고 보수의 대대적인 반격은 시작될 것이다.
 
문재인은 핵심 지지층에서 들려오는 찬가(讚歌)의 달콤한 유혹을 거부하고 철저한 리얼리스트가 돼야 하고 싶은 일을 다하고 임기를 끝낼 수 있다. 실력만 있다면 밉더라도 발탁해 써야 한다. 그는 ‘반성문’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첫 조각 때 야당인 박근혜 의원을 통일부 장관으로 발탁할 것을 적극 검토한 데 대해 “남북 관계의 발전을 초당적으로 추진해 보자는 대담한 발상”이라고 적었다. 사회주의 중국이 자본주의 정책의 채택을 주저하지 않고, 타도 대상이었던 자본가들을 최고의결기구인 전국인민대표대회에 인민대표로 반아들이는 현실에도 주목했다. 그렇다면 더 대담한 인사와 현실적인 정책으로 야당과 보수를 끌어들여야 하지 않을까.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문 대통령이 어려움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간단하다. 스스로 다짐했듯이 우리 편의 정의만을 생각하는 근본주의와 결별하면 된다. 포용과 통합 없는 선의와 정의는 위태로운 질주일 뿐이다.
 
이하경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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