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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신념 지키려 챔피언 벨트 팽개친 복서

더 그레이티스트
월터 딘 마이어스 지음
이윤선 옮김, 돌베개
252쪽, 1만3500원
 
3일 미국의 전설적인 복서 무하마드 알리(1942∼2016)의 1주기를 맞아 번역 출간된 평전이다. 미국에서는 2001년 첫 선을 보인 책이지만, 우리말로는 이번에 처음 번역됐다. 그 이유에 대해 출판사 돌베개 측은 “흑인 복서에 대한 국내 독자들의 반응이 어떨지 자신이 없어서”라고 설명했다. 책을 고르는 과정에서도 “인종차별”이 있다는 것이다.
 
<div>무하마드 알리는 1967년 베트남 징병을 거부하고 <span style="font-size: 0.875em; letter-spacing: -0.02em;">세계 챔피언 자격을 박탈당했다. [중앙포토]</span></div>

무하마드 알리는 1967년 베트남 징병을 거부하고 세계 챔피언 자격을 박탈당했다. [중앙포토]

‘인종차별’은 알리의 삶을 지배한 단어였다. 알리는 스물두 살까지 ‘캐시어스 마셀러스 클레이’란 이름으로 살았다. 그가 태어났을 때 미국 사회에서 인종차별은 합법이었다. 흑인들은 ‘백인만 입장 가능’한 식당이나 학교에 들어갈 수 없었고, 버스나 영화관에서 백인과 나란히 앉을 수 없었다. 1954년 열두 살이던 알리는 자전거를 잃어버린 뒤 권투를 배우기 시작했다. 자전거 도둑을 혼내주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한 권투에 그는 온 정열을 쏟았다. 60년 로마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고, 64년에는 헤비급 세계 챔피언에 등극했다. 부유하고 편안한 삶이 보장된 바로 그 때, 그는 용기를 낸다. 자신의 신념에 따라 살겠다는 용기였다. 그는 64년 이슬람교로 개종하고 이름을 ‘무하마드 알리’로 바꿨다. 흑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인종차별에 맞서 흑인 인권운동에 나서겠다는 선언이었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는 그의 경기 전략은 세상에 자신의 목소리를 전할 때도 동일하게 적용됐다. 67년 베트남 징병을 거부하고 세계 챔피언 자격을 박탈당한 일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이다. 그는 최고 전성기인 25세부터 28세까지 권투를 금지당했지만, 그의 뜻은 마침내 통했다. 71년 연방대법원이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인정한 것이다. 책은 세 번의 실패한 결혼과 혼외 자식 문제 등 알리의 사생활 부분은 다루지 않았다. 대신 알리가 권투에 입문한 이후 81년 트레버 버빅에게 판정패한 마지막 경기까지, 27년의 세월 속에서 그가 빛났던 장면들을 박진감 넘치게 재현했다. 프로 경기 첫 패배를 기록한 71년 조 프레이저와의 시합, 조지 포먼으로부터 챔피언 타이틀을 탈환한 74년 킨샤사 혈전 등이다.
 
저자는 알리가 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의 성화를 점화하는 순간까지 그의 삶을 따라갔다. 파킨슨병으로 손이 떨리고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워진 알리에게서 저자는 또 ‘용기’를 읽어낸다.
 
“자신의 상태를 기꺼이 세상에 드러낸 알리의 태도는 아주 용감하고 고무적인 행동이다. (…) 그리고 옳은 일을 하는 것은 무하마드 알리가 늘 보였던 모습이다.”
 
[S BOX] “알리는 역경에 저항한 정의의 구도자”
『더 그레이티스트』의 저자 월터 딘 마이어스(1937∼2014)는 미국의 대표적인 흑인 작가이자 아동문학가다. 미국 최고의 아동문학상인 뉴베리 아너 상을 두 차례 수상했고, 뛰어난 흑인문학 작가에게 수여되는 코레타 스콧 킹 상을 다섯 차례나 받았다. 『몬스터』 『소년 정찰병』 『어둠 속 어딘가』 등이 그의 대표작이다.
 
마이어스는 뉴욕 할렘에서 성장했다. 친어머니가 여동생을 출산하다 사망한 뒤 친아버지의 첫 부인인 플로렌스 딘과 허버트 딘 부부에게 맡겨져 자랐고, 훗날 양부모에 대한 존경을 담아 미들네임을 ‘딘’으로 개명했다. 그는 1960년 TV를 통해 무하마드 알리를 처음 보았다고 했다.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고 시상대 위에 서 있는 모습이었다. 그는 이 책의 집필을 마친 뒤 “알리는 미국인으로, 권투 선수로, 아무리 역경이 벅차고 아무리 적이 거대해도 기꺼이 그 역경에 저항한 정의의 구도자”라고 결론지었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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