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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리앙의 서울이야기] (29)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인가

마법의 반지를 가진다면, 순한 양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한국과 프랑스 모두 거의 동시에 새 정부가 들어섰다. 이런 기회에 민주주의의 참의미를 되새겨 보는 것은 어떨까. 국민 모두가 존중받고 나라의 주인으로서 정당한 권리와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혼신을 다해 투쟁해온 모든 이의 희생에 진정한 감사의 뜻을 새겨 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는 기회의 균등이다. 우리가 정치적 선택을 하기에 앞서 꼭 나 말고도 사회적 약자를 염두에 두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정부의 수준을 평가할 때 정책적으로 약자를 얼마나 배려하느냐, 사회 불평등 해소에 얼마나 노력하느냐가 중요한 요건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들뢰즈의 말대로 다수란 언제나 소수가 모여 만들어지는 법이다. 우리 중 누구든 상대 입장에 처할 수 있기에 공정하고 균등한 사회는 그만큼 모두의 염원일 수밖에 없다.
 
서로 자기 이익만을 위해 반목하지 않고 모두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는 어떻게 해야 만들 수 있을까. 홉스가 말했다. 자연 상태의 모든 인간은 인간에 대해 늑대라고. 우리 마음속에 도사린 폭력의 위험성을 적나라하게 지적한 명언이다. 자연 상태 자체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뜻이다. 원래 인간이란 존재는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남을 해쳐서라도 자신의 안전을 도모해야 한다는 절박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과연 문명화된 민주주의 사회의 구성원인 우리는 어떤가. 나의 행복과 영달을 위해 남을 해치고 증오해야만 하는 운명에서 얼마나 자유로운가. 평등과 우애에 기초한 민주주의 체제의 혜택을 진정한 선물이자 책임으로 받아 누리고 있는가. 우리의 내면 깊숙한 곳에 숨은 마음은 정녕 어떤 모습인가.
 
플라톤은 저서 『공화국』에서 교훈적이고도 아주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무랄 데 없는 모범적인 시민 기게스가 어느 날 마법의 반지를 발견했다. 착용하는 순간 투명인간이 되는 반지다. 그는 반지를 착용한 상태로 궁궐에 침입해 왕비를 유혹하는가 하면 음모를 꾸며 왕을 시해하기까지 한다. 반지의 힘에 기댄 그의 탐욕을 가로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야기가 던지는 화두는 바로 이거다. 우리는 처벌이 두려워 정의를 실천하고 법을 지키며 남을 존중하는 것이 아닐까. 더 솔직해지자. 우리가 만약 저 이야기 속 주인공처럼 마법의 반지를 손에 넣는다면 그때도 얌전한 시민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답할 줄 아는 사람은 진정 자유로운 사람일 것이다. 본연의 내 모습으로 살기 위해 굳이 투명인간이 될 필요는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 말이다.
 
다시 홉스로 돌아와 우리는 어쩌면 두려움 때문에 자신을 위장하고 때론 과장하는지도 모른다. 스스로 약한 걸 알기에 늑대의 거죽을 뒤집어쓸 수밖에 없는 양처럼 말이다. 실제로 인간적인 나약함에 시달릴수록 남에게 유난히 과격하고 무례한 사람이 우리 주변에 적지 않다. 분명한 것은 민주주의 사회가 늑대로 변장한 양들의 공동체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민주주의 사회란 우리 모두의 균형 있는 삶을 어지럽히는 일부만의 특권과 파벌의 이익, 권력의 남용과 합의를 거치지 않은 독단에 결연히 맞설 만큼 강인한 구성원들의 공동체다. 무엇보다 같은 배의 탑승원으로서 서로 힘을 모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했을 때 민주주의는 가능하다. 
 
스위스 철학자/번역 성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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