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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으로] 박정희 ‘진도’ 사나워 돌려보내, 노태우 4마리 가출해 못 찾아

역대 대통령들의 퍼스트 도그
2012년 이명박 대통령에게 안기는 ‘청돌이’(왼쪽)와 1958년 경무대에서 이승만 대통령과 함께 한 반려견. [중앙포토]

2012년 이명박 대통령에게 안기는 ‘청돌이’(왼쪽)와 1958년 경무대에서 이승만 대통령과 함께 한 반려견. [중앙포토]

금요일인 지난 5일. 미국 워싱턴DC의 연방정부 청사에선 85마리의 개들이 사무실 곳곳을 활보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라이언 징키 미국 내무부 장관이 선포한 ‘내무부 강아지의 날(Doggy Days)’을 맞아 직원들이 반려견과 함께 출근한 것이다. 비록 시범적으로 날을 정한 것이긴 하지만 미국의 행정부처에서 반려견과의 동반 출근을 허용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공화당 하원의원이기도 한 징키 장관은 “여야는 늘 극한 대립을 해왔지만 반려견과의 동행은 여야 간 정치적 (갈등의) 이슈가 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동물이 현대인의 ‘반려’ 대상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정치권에서 이슈화되는 비중도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 들이기로 유기견 ‘토리’가 단연 관심사다.
문재인 대통령이 입양 하는‘토리’. [사진 동물권단체 케어]

문재인 대통령이 입양 하는‘토리’. [사진 동물권단체 케어]

 
유기견을 ‘퍼스트 도그(First Dog)’로 맞이하는 건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문 일이다.
 
사실 문 대통령은 아직 토리와 상견례도 하지 못했다. 그는 대선후보 시절 동물권 단체 ‘케어’로부터 토리의 사연을 접하고 입양하기로 약속했다. 토리는 주인에게 날카로운 꼬챙이로 찔리는 등 갖은 학대를 당하다 2014년 구조됐다.
 
보호소 직원들이 밤톨 같다며 ‘토리’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대략 네 살로 추정되는 적당한 나이에 작고 깜찍한 외모. 하지만 토리는 2년 넘게 새 주인을 만나지 못했다. 검은색 털을 가진 믹스견(잡종)이라는 ‘스펙’ 때문이었다.
 
박소연 케어 대표는 본지 통화에서 “하얀 순혈종은 건강하면 (보호소에) 들어오자마자 입양이 되는데 토리는 ‘검은 개는 재수가 없다, 잡종은 수준이 떨어진다’는 등의 편견 때문에 계속 늦어졌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경남 양산 자택에서 반려묘 ‘찡찡이’를 안고 있다. 찡찡이는 한국 최초의 ‘퍼스트캣’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경남 양산 자택에서 반려묘 ‘찡찡이’를 안고 있다. 찡찡이는 한국 최초의 ‘퍼스트캣’이 됐다.

이런 사연을 접한 문 대통령은 “모든 사람과 동물은 차별과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가 있다. 토리 사연이 와 닿고 꼭 입양하고 싶다”는 글을 보내왔다고 한다. 토리는 현재 입양절차를 밟고 있다. 조만간 문 대통령 내외의 식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케어 측은 “토리는 사람을 너무 좋아하고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어 한다”며 “질투가 많지만 청와대의 다른 동물 친구들과도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양산 자택에서 키우던 유기묘 출신 고양이 ‘찡찡이’도 청와대에 들이기로 했다. 한국 최초의 ‘퍼스트 캣’이다.
 
미국에 비하면 역사가 짧지만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도 개를 많이 키웠다. 대부분 선물받은 진돗개가 많았고 대통령들의 마지막이 그랬듯 퍼스트 도그들의 말로도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5년 전남 진도군에서 선물한 진돗개 ‘진도’를 좋아했는데 주인 외의 사람에겐 사납게 대하자 78년 신당동 사저로 돌려보냈다.
 
전두환 대통령이 키운 ‘송이’와 ‘서리’도 진도군에서 선물한 진돗개다. 2003년 재산압류 때 각각 40만원에 낙찰됐다가 이후 낙찰자가 전 대통령에게 다시 기증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관저 안에서 요크셔테리어 4마리를 키웠지만 가출한 뒤 찾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 이후 키우던 진돗개 ‘새롬이’와 ‘희망이’를 청와대에 두고 가 유기 논란이 일기도 했다.
 
1958년 이승만 대통령이 경무대에서 반려견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명박·이승만 대통령 모두 퇴임 후 반려견을 사저로 데려갔다. [중앙포토]

1958년 이승만 대통령이 경무대에서 반려견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명박·이승만 대통령 모두 퇴임 후 반려견을 사저로 데려갔다. [중앙포토]

2012년 9월 운동을 나서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안기는 ‘청돌이’. [중앙포토]

2012년 9월 운동을 나서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안기는 ‘청돌이’. [중앙포토]

역대 대통령 중 재임 시절과 그 이후까지 ‘반려견’과 가장 가까운 관계를 유지한 건 이승만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망명지인 하와이로 ‘해피’(스패니얼)를 데려갔고, 이명박 대통령도 ‘청돌이’(진돗개)와 함께 논현동 사저로 돌아갔다.
 
‘퍼스트 펫(First Pet)’은 사실 정치적으로도 큰 의미를 갖는다. 당장 유권자들의 표심만 고려해도 지난해 말 기준으로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1000만을 넘어섰다. 무시할 수 없는 파워 그룹이다.
 
동물과 가깝다는 이미지를 통해 대중과의 거리감도 좁힐 수 있다.
 
미국의 반려동물 블로거 닉 바넷은 “아무리 황제같이 높은 정치인이라도 반려동물에겐 그저 앉을 무릎, 음식 공급원이거나 무시해도 되는 목소리에 불과할 수 있다”며 “정치인들도 우리와 다를 것 없다는 사실에 대중은 공감대를 가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메시지 전달과 홍보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문 대통령도 토리의 입양을 통해 ‘차별과 편견 타파’라는 소신을 피력했다. 강진주 퍼스널이미지연구소 소장은 “반려동물은 아기를 키우는 것과 비슷하다. 온화하고 베푸는 이미지를 나타내는 데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며 “사람만 사는 세상이 아니라 동물, 나아가 자연환경과 공조하는 사회를 지향한다는 이미지를 홍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단순히 선거 전략 차원이 아니라 반려동물의 존재가 국정 운영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있다. 미국의 징키 장관도 “사무실에 반려견을 두는 것이 생산성과 사기를 높이고 스트레스 수준을 낮춘다는 사실이 연구 결과로도 증명됐다”고 설명했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는 “과거 대통령은 규격화된 공적인 삶을 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정치가 선진화·보편화되면서 대통령도 자연스러운 사생활을 누려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며 “심리적으로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낄 때 국정도 더 효율적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그러면서 “대통령이 평범한 국민으로서 따뜻하고 편안한 정치를 수행하는 것이 소통의 기본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S BOX] 문 대통령, 반려동물 표준 진료제와 놀이터 확대 등 공약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직접 22차례 정책 공약을 발표했는데 반려동물 관련 공약이 8번째였다. 순서로 봐도 꽤 비중 있는 ‘주요 공약’이었다. 핵심은 반려동물 표준 진료제와 놀이터 확대다. 후보 시절 민원을 들어본 결과 “동물병원 진료비가 너무 비싸다” “반려견을 마음껏 뛰놀게 할 장소가 부족하다”는 불만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수의사협회에서 표준 진료비를 자율적으로 정해주면 병원과 지역에 따라 큰 치료비 편차가 해소되고 의료보험 확대도 쉬워진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반려동물 지원센터 설치 ▶반려동물 행동교정 프로그램 지원 ▶학교 과정에 동물 보호 교육 강화 등도 제시했다.
 
그러나 ‘사람이 아닌 동물 역시 인권에 비견되는 생명권을 지니며 고통을 피하고 학대당하지 않을 권리 등을 지니고 있다’는 ‘동물권’에 대한 공약이 빠진 것을 아쉬워하는 이들도 있다. 우리 민법은 동물을 물건으로 취급한다.
 
반면 영국은 1876년 동물학대방지법을 제정했고, 오스트리아는 1988년, 독일은 90년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문구를 민법에 명시했다.
 
이와 관련해 문 대통령은 “ 행정에서 동물 복지 개념을 받아들인 게 얼마 안 된다”며 “지자체와 중앙부처에 서울시의 ‘동물보호과’ 같은 전담기구가 생겨야 한다”고 밝혔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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