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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으로] 4247만 명 투표용지 이으면 1만2106㎞ … 서울~뉴욕 거리보다 길어

19대 대선 진기록과 뒷얘기
사상 첫 대통령 궐위선거가 별 탈 없이 끝나 중앙선관위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보통 7개월 정도 걸리던 선거 준비 기간이 이번엔 2개월로 압축됐고, 사전투표까지 실시되면서 선관위 입장에선 관리 부담이 무척 컸던 선거였다.
 
이번 선거에 투입된 관리 인력은 총 48만5700명이나 됐다. ▶사전투표 11만1500명 ▶선거 당일 투표 27만500명 ▶개표 7만5000명 ▶ 위반행위 단속 3300명 등이다. 대부분은 지자체 공무원이나 교사들이다. 이 중 선관위 직원은 2800명뿐이다.
 
선관위는 임무를 위임받은 투표관리관과 투표사무원들에 대해 두 차례 이상 집중 교육을 했다. 선거 편람을 요약해 강의하고, 투표장에서 벌어질 수 있는 불법 사항, 투표지에 잘못 기표했을 때 대처 방안 등을 주지시켰다. 가령 유권자가 지지 후보의 칸에 정확히 찍지 못했다거나 다른 후보에게 기표했다며 투표지 교체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잘못 찍었다고 해서 새 투표용지로 교체해 주거나 재발급하진 않는다. 안창선 부천선관위 관리1계장은 “만약 유권자가 후보자 칸 바깥에 찍었다면 다시 지지하는 후보란 안에 기표하면 유효표가 된다. 하지만 후보자 칸에서 두 곳 이상 찍으면 무효가 되고 투표함에 넣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투·개표 사무원 위촉도 쉽지 않았다. 선거일이 징검다리 연휴 기간이다보니 공무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경기 지역 선관위 관계자는 “과거엔 국가 사무에 자발적 동참이 많았는데 지금은 예전과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에콰도르와 엘살바도르 선거관계자들이 5일 제19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에콰도르와 엘살바도르 선거관계자들이 5일 제19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준비 기간이 짧다 보니 투·개표소 확보도 난관이었다. 투표소만 총 13만964곳, 개표소는 251곳이었다. 시·군·구에 있는 ‘청소년 문화의 집’ 시설을 사용하려던 지역에선 어린이날인 5일이 사전투표일과 겹쳐 사용하기 어렵게 됐다. 서울 은평구선관위의 한 투표소에선 자동차 판매장을 빌려 투표소로 만들었다. 전시된 차량은 투표 전날 모두 빼내야 했다. 경기도 부천시 대장동 선거구에선 몽골텐트까지 등장했다. 대부분이 농지인 데다 투표소로 할 만한 임대 건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장비 분실을 우려해 동사무소 직원은 투표 전날 텐트에서 숙박까지 했다고 한다.
 
개표소는 체육관이 적절하지만 사전에 예약된 일정들이 있어 조율에 어려움을 겪었다. 최관용 중앙선관위 공보팀장은 “개표 일정이 잡혀서 확인해 보니 여자 프로농구 시합이 예정돼 있거나 K-팝스타 등 방송 프로그램 녹화가 예정된 경우도 있었다”며 “국가 사무를 우선해 달라며 부탁해 간신히 일정을 조율해 나갔다”고 말했다.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선관위 직원들의 고충도 컸다. 부산 강서구선관위 신모 서기관은 폐암 수술을 마친 뒤 일주일 만에 업무에 복귀했고, 경남 진주시 정모 주무관은 5월 6일 부친상을 당했으나 3일장만 치르고 대선 개표에 투입됐다.
 
◆사전투표 폭발적 열기, 그 이면엔=이번 대선에서 투표자 4명 중 1명이 사전투표를 했다. 가장 많은 사전투표자가 몰린 곳은 인천공항이다. 이틀간 1만8978명이 투표했다. 시간당 790명으로, 5초에 1명씩 투표한 셈이다. 사전투표가 첫 실시된 2016년 지방선거 때 5136명에 비하면 세 배 이상으로 늘었다.
 
인천공항 사전투표 관리관인 인천 중구청 이재성(46) 주무관은 “투표하려고 줄을 선 사람이 평균 300~400명씩 됐다”며 “‘왜 이렇게 투표에 시간이 오래 걸리느냐’는 항의를 하루 종일 받았다”고 말했다. 다른 사전투표장에 비해 시간이 지체된 건 통합선거인명부 시스템과 연결된 신분증 식별기가 주민등록증만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공항에는 여권을 갖고 온 사람이 많아 주민등록번호를 일일이 입력해 본인 여부를 확인하는 바람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인천공항 투표소는 이 주무관의 책임하에 인천 중구청 공무원 33명이 투표사무원을 맡았다. 이들은 공항 옆 게스트하우스에 숙소를 잡고 새벽 5시부터 투표소로 나와 통합선거인명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는지, 투표용지가 맞게 있는지 확인했다. 12시간의 투표를 마친 뒤엔 투표함을 선관위에 옮겨놔야 했다. 일이 끝난 건 밤 9시가 넘어서였다. 새벽 5시부터 밤 9시까지 17시간을 일하고 이씨가 받은 수당은 법정 금액인 8만원이다. 이 주무관은 “재외국민으로만 신고가 돼 있어 공항에서 투표를 하지 못한 50대 여성의 눈물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넓은 공항에서 왜 투표장이 한 곳뿐이냐”는 문의도 많았다. 차태욱 중앙선관위 언론팀장은 “선거법상 사전투표소 수를 한 지역에 1곳으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선거법 개정을 건의할지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가짜 뉴스의 ‘창궐’=이번 대선에선 허위사실 유포 등 가짜 뉴스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선관위 자료에 의하면 대선 당일까지 집계 결과는 4만351건으로 18대 대선 때의 7201건에 비해 6.5배로 늘었다. ▶허위사실 공표 2만5183건 ▶불법 여론조사 공표 1만2083건 ▶후보자 비방 843건 ▶지역 비하 모욕 글 429건 ▶선거운동금지자의 선거운동 113건 ▶기타 1696건 등이었다. 대선 기간 문재인 민주당 후보에 대해 “애비가 인민군 상좌 출신”이란 글을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모임’이란 네이버 밴드에 3개월간 59차례 올리거나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의 지지율이 높게 나온 KBS·여의도연구소 여론조사라며 거짓 자료를 동해·삼척 시의원 10여 명에게 보낸 경우 등이 적발됐다.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을 통해 “18대 대선은 부정선거. 안철수가 주범”이라고 반복적으로 방송한 경우도 있었다.
 
특히 사전투표 당일 투표용지 관련 루머의 확산으로 선관위가 곤욕을 치렀다. 지난 4일 강릉시의 한 유권자가 “제가 받은 사전투표용지는 후보 이름 칸이 띄어 있지 않고 다 붙어 있었다. 투표용지가 달라도 되는 건가”라는 트윗 글을 올렸다. 이 글이 급속히 확산되며 선관위는 이날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항의 전화에 시달렸다. 여기에 “저도 후보 이름 칸이 붙어 있는 투표용지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댓글까지 유포되면서 사전투표 부정 의혹으로 논란이 번졌다. 선관위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선거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는 엄중 조치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의혹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결국 선관위는 최초 유포자 등 11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시민단체와의 마찰도 있었다. 공정선거를 목적으로 한 시민단체인 ‘시민의눈’ 소속 한 남성 회원이 지난 5일 선관위로 옮겨지는 사전투표함을 참관하던 도중 선거물품을 내리는 여성 공무원을 몰래 촬영한 것이다. 여직원이 촬영을 중지할 것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남성이 뒤에서 목을 조르는 등 폭행을 했고 선관위는 그를 경찰에 고발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시민단체의 합법적인 참관은 최대한 보장하지만 선거 관리를 방해하는 행위에 대해선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대선에서 개표 부정 시비는 없었다. 개표는 정당과 후보자 측 참관인 1만8000명, 일반 시민 2200명이 처음으로 동시에 참관했다. 외국에서도 30개국 선거기관 관계자 69명이 방한해 이번 대선의 투·개표 과정을 지켜보기도 했다.
 
[S BOX] 지구 정반대편인 남미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19명 투표
19대 대선의 유권자 수는 4247만9710명으로 역대 최다였다. 18대 대선 때보다 197만 명 늘었다. 그런 만큼 새 기록이 속출했다.
 
먼저 투표용지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투표용지는 100장을 쌓아봐야 두께가 1㎝밖에 안 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 4247만 명의 투표용지를 모두 쌓으면 4248m로 123층 555m 높이인 롯데월드타워의 8배에 달한다. 투표용지를 이어붙이면 길이가 1만2106㎞로 서울~뉴욕 간 거리(1만1000㎞)보다 더 길다.
 
투표소 중 특이한 곳도 있었다. 한국과 지구 정반대에 있는 남미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인구 120만 명의 작은 섬 국가다. 이곳에 거주하는 한국인 재외국민 25명이 투표를 신청했다. 선관위는 이곳에도 재외투표소를 설치했다. 실제 투표한 사람 수는 19명이다.
 
이번 대선에서 부착된 선거 벽보는 총 122만8276장이었다. 후보가 15명이나 돼 선거 벽보 길이가 10m에 달했다. 이를 모두 모으면 잠실야구장 50개를 뒤덮을 수 있다. 후보자 14명의 선거 공보물은 4억 부였다. 이들 투표용지와 선거 공보·벽보에 사용된 종이는 30년 된 나무 8만6000그루 분량이다.
 
개표가 마무리된 시각은 10일 오전 6시49분이었다. 18대 대선 땐 5시8분이었다. 투표 시간이 2시간 연장된 만큼 개표 완료도 그만큼 늦어진 셈이다.
 
박성훈 기자 park.seong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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