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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76세에 남편에 간기증.. 56년 해로 닭살부부 사랑법

 18일 오후 1시 경기도 고양시 국립암센터 병원동 1층 구내식당. 아내 정민소(81)씨가 고기 볶음 반찬을 국에 헹궈서 남편 백지용(80)씨의 수저에 얹어준다. 김치도 마찬가지다. 신장이 좋지 않은 남편이 나트륨을 덜 먹게 하기 위해서다. 식사가 끝나자 이번에는 백씨가 아내의 식판까지 치우고 온수와 냉수를 적당히 섞어서 아내에게 건넨다. 
 
 "저 양반이 안스러워요."
 
 백씨는 아내를 '저 양반'이라고 칭했다. 자신에게 간을 떼준 걸 두고 하는 말이다. 2012년 4월 정씨는 자신의 간의 70%를 간암을 앓던 남편에게 줬다. 당시 정씨는 만 76세, 백씨는 75세였다. 의학계에서는 부부 간의 장기 기증을 최고의 사랑으로 평가한다.  
 
18일 오후 국립암센터 야외벤치에 백지용씨 부부가 다정스럽게 앉았다. 아내 정민소씨는 5년 전 76세 나이에 남편에게 간을 기증했다. 세계 최고령 기록이다. 우상조 기자 

18일 오후 국립암센터 야외벤치에 백지용씨 부부가 다정스럽게 앉았다. 아내 정민소씨는 5년 전 76세 나이에 남편에게 간을 기증했다. 세계 최고령 기록이다. 우상조 기자

 백씨 부부의 사례는 사실 의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수술을 집도한 국립암센터 김성훈 장기이식실장은 "지금도 76세 간 기증은 세계 최고령 기록이다. 서구에는 60대 기증자가 아예 없고 일본에 몇 명 있을 정도"라고 말한다. 
 
 세계 간이식 교과서는 생체 간기증이 가능한 최고 연령을 55세로 본다. 정씨가 의학교과서를 새로 쓴 것이다. 생체 간이식은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하고 기술도 최고다. 덕분에 당시 수술 시간과 입원 기간도 평균보다 더 짧았다.  
18일 오후 국립암센터 야외벤치에 정민소씨가 남편을 안고 있다. 76세에 남편에게 간의 70%를 떼줬다. 부부애 덕분에 두 사람 다 아무런 부작용이 없다. 우상조 기자 

18일 오후 국립암센터 야외벤치에 정민소씨가 남편을 안고 있다. 76세에 남편에게 간의 70%를 떼줬다. 부부애 덕분에 두 사람 다 아무런 부작용이 없다. 우상조 기자

 수술은 대성공이었다. 지금까지 간 기능에 어떤 문제도 없다. 김 실장은 2014년 간이식 분야의 세계적 권위지인 '미국이식학회지'에 부부 사례를 소개하는 논문을 실었다. 당시 학회지 편집장은 "아무나 따라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다고 한다.
 
 그만큼 위험이 따르는 수술이었다. 김 실장은 "두 환자가 잉꼬부부다. 남다른 부부애가 수술 성공의 정신적 밑거름이 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수술은 정씨가 떼를 써서 이뤄진 것이다. 백씨는 2004년 간암이 발병해 간의 일부를 잘라냈다. 54세에 은행을 퇴직할 때까지 술을 너무 즐겨 마셨고 B형간염을 치료하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2011년 간암이 재발했다. 3기였다. 수술할 수 없는 상태여서 색전술(혈관을 막아 암세포를 말려죽이는 것)을 시도했으나 듣지 않았다. 6개월도 채 못 산다는 진단이 나왔다. 유일한 치료법은 간 이식뿐이었다. 
 
"어디를 가더라도 치료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둘이 살다 남편을 먼저 보내면 어떻게 살지 막막하더라구요."
 
 정씨는 무조건 간을 떼주기로 맘 먹었다. 하지만 의료진은 완강하게 거부했다. 76세 할머니의 간을 이식한 전례가 없고, 자칫 잘못될 수도 있어서였다. 정씨도 그냥 물러서지 않았다.
 
"40년 동안 운동을 해서 다진 몸이예요. 지금까지 감기 한 번 안걸렸고 고혈압·당뇨 같은 흔한 병도 없어요. 의사 선생님을 만나게 해주세요."
 
생떼를 못 이겨 김 실장이 "그러면 검사해 보자"고 물러섰다. 김 실장의 고백이다. 
 
"검사에서 뭔가 이상이 나올테고 그걸 내세워 수술을 안하려고 했지요.그런데 아무 이상이 없는 거예요. 고령인 점 말고는."
 
정씨는 수술 날짜 잡은 걸 자식(아들 둘, 딸 하나)에게 숨겼다. 부담을 주기 싫어서였다. 그런데 들키고 말았다. 자식들이 나섰다. 하지만 셋 다 B형간염을 앓은 흔적이 있어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수술 전날 밤 딸(47)이 "엄마가 잘못 되면 우리는 고아가 된다"며 간곡히 말렸지만 정씨를 막지 못했다. 정씨에게 물었다.
 
-세계 최고령 수술인데 무섭지 않았나요.
"수술 중에 심장이 멎어서 죽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에이 죽으면 그만이지'라고 생각했어요. "
 
-지금도 후회하지 않나요.
"그런 적 한 번도 없어요."
 
정씨는 수술 날짜를 잡고 나서 남편의 배(간 있는 부위)에 자신의 배를 부볐다. 정씨는 "킹짱구(남편의 간)가 왕짱구(내 간)와 친구가 돼 잘 받아들여달라고 기도했지요. 거부 반응이 없던 게 이런 이유가 있지 않았나 해요"라고 말한다. 
백씨 부부의 1961년 약혼사진

백씨 부부의 1961년 약혼사진

백씨 부부가 50대 초반 시절 속리산 문장대에 올랐을 때의 모습.

백씨 부부가 50대 초반 시절 속리산 문장대에 올랐을 때의 모습.

 백씨의 아내 사랑도 정씨 못지 않다. 1961년 결혼하기 5년 전 상업은행 부산지점에서 동백꽃과 속옷을 명동지점의 정씨에게 수 없이 보냈다. 당시 보기 드문 구애작전이었다. 처가에서 한 살 적은 사위를 싫어할까봐 동갑이라고 속였다. 
 
백씨는 아내의 건강이 조금이라도 나빠질까봐 '셰프'를 자처한다. 항상 장을 보고, 아내가 좋아하는 돼지고기 요리와 닭볶음탕을 내놓는다. 매일 아침 커피를 내려 저지방 우유를 타 아내에게 건넨다. 청소도 백씨 몫이다. 
 
-아내의 좋은 점 한가지만 꼽아주세요.
"다 좋습니다. 80살이 넘어도 고와요. 예쁘고 복스럽고……."
 
-그래도 한 가지 꼽아주시죠.
"한 가지만 꼽을 수가 없어요. " 
 
부부는 "우리는 같은 날 세상을 뜨기로 했다. 안 되면 같은 달이라도 좋다"고 말한다. 정씨는 "요즘 이혼을 많이 하는데, 헤어지고 나면 절대 그만한 사람을 만나기 힘들다. 남자는 항상 '애기'라고 생각하고 보듬어야 해"라고 말한다. 백씨는 "아내 말을 들으면 행복이 따라온다"고 말한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21일은 부부의 날이다. 백씨 부부는 늘 "예쁘고 고맙다"고 말한다. 항상 상대방을 존중하는 이 마음이 56년 '닭살 부부'를 유지하는 비결인지 모른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ssshin@joongang.co.kr 
 
☞부부 간 장기이식=생체 신장이식에선 배우자가 기증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지난해 414명이었다. 간 기증자는 자녀가 221명으로 가장 많다. 간 상태가 좋고 떼내도 원상회복되기 때문이다. 배우자 기증은 97명에 불과하다. 두 장기 모두 '아내→남편' 기증이 그 반대 경우의 두 세배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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