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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문재인은 어떤 대통령으로 기록될까 “통일의 초석 깔고 개마고원 트레킹하고 싶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5월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진행된 제19대 대통령 선거 마지막 유세에서 딸 문다혜 씨의 영상편지를 보고 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5월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진행된 제19대 대통령 선거 마지막 유세에서 딸 문다혜 씨의 영상편지를 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아흔이 넘은 노모를 모시고 고향 함흥을 방문하긴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언젠가 그가 국민과 함께 개마고원을 트레킹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 개마고원에서 장진호를 거쳐 흥남에 이르는 122㎞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그 역사적 트레킹 길을 스스로 만들어가야 하는 운명에 그는 처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 작가가 찍은 개마고원 사진을 오랫동안 벽에 붙여두고 살았다. “언젠가 평화통일이 되면 저기(개마고원)를 기필코 내 발로 걸어야지”라고 다짐했다. 개마고원은 문 대통령의 가족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곳이다. 1950년 11월 27일부터 12월 13일 사이에 벌어진 한·미군과 중공군 간의 장진호전투와, 이어진 흥남철수가 부산 사람 문재인을 만들었다.
 
함경북도 함흥이 고향인 문 대통령의 부친은 흥남철수작전을 통해 거제도 장승포항에 정착했다. 미군 3000명이 전사한 바로 그 장진호전투가 벌어진 무대가 바로 개마고원이다. 장진호전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소련군이 벌였던 스탈린그라드전투와 함께 ‘불멸의 동계 전투’로 불린다. 중공군의 막강한 공격을 미 해병대원들이 영하 30도 추위 속에 목숨을 걸고 버텼고, 한·미 연합군은 장진호에서 122㎞ 거리에 있는 흥남항에 교두보를 만들고 해상철수를 감행했다.
 
1950년 성탄절 무렵 흥남철수선을 타고 거제도로 온 문재인의 부모는 그로부터 1년2개월 만인 1953년 1월 24일 장남 문재인을 낳았다. 두 살 위 누나와 두 여동생, 남동생 등 다섯 자녀의 피란민 가정은 가난할 수밖에 없었다. 피란생활의 가난은 마치 “천장에 매달아둔 등불과 같았다”는 것이 문 대통령의 회고다. 그래도 거제도는 따뜻했다. 문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거제 장승포항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가 받은 인상은 아주 강렬했다고 합니다. 세상이 온통 새파랗더라는 거예요. 흥남은 눈이 내려서 새하얀데 거제도는 새파랬다고 하셨어요. 남쪽 도서지방에서 자라는 나무가 상록수라선지 산도 푸르고, 보리밭도 푸르고, 풍경이 너무 새파래서, ‘야 여기는 정말로 따뜻한 남쪽 나라구나’라고 생각했답니다.” 개마고원 트레킹을 자신의 ‘버킷 리스트’라고 밝힌 문 대통령의 심중은 그래서 의미가 깊다. 여기엔 아버지의 인생과 가족사가 분단의 역사와 오버랩되어 있다. 아버지는 늘 고향 함흥을 그리워했다. 문 대통령의 기억에 아버지가 진정으로 기쁨을 표시했던 때는 딱 두 번이다. 문재인이 명문 경남중학교에 합격했을 때, 그리고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 되었을 때다. 부친은 1000만 이산가족이 통일이 되어 고향에 갈 수 있겠다며 큰 기대를 걸었다고 한다.
 
7·4 남북공동성명 때 고향 갈 꿈에 부풀었던 아버지 
월남 피란민 출신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은 중국에서도 화제가 됐다. 중국 관영 언론에서 특히 앞다퉈 이 사실을 보도했다. 문재인 일가가 흥남철수선을 타고 부산으로 피란한 데 대해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두 가지 제도에 대한 인식이 있었던 것은 아닌 듯하고, 보통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가능한 한 멀리 전쟁터에서 벗어나는 일이었다. 어쨌든 살아남을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중공군이 참전했던 ‘조·중전쟁’의 피란민 후손이 한국의 대통령이 되었다는 데에 깊은 인상을 받은 눈치다.
 
문 대통령은 ‘경제민생 이슈’를 국정 운영의 최우선 반열에 놓고 있다. 취임하자마자 일자리 문제 챙기기에 무서운 집중력을 보인 것이 그 방증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의 장기 포석은 역시 남북관계 개선과 북핵문제 해결에 또렷한 방점이 찍혀 있다. 문 대통령은 한국이 처한 경제 침체의 돌파구도 결국 남북 화해와 경제협력에서 찾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는 지난해 10월 러시아가 일본에 시베리아 횡단철도(TSR)를 일본 홋카이도까지 연결할 것을 제안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부연설명했다.
 
“우리의 철도가 북한을 통해 시베리아 철도와 연결되고 시베리아 철도가 중국의 철도와 연결돼 대륙으로 유럽까지 가는 루트, 김대중 대통령이 말씀하셨던 ‘철의 실크로드’는 우리의 꿈이었다. 철도가 연결될 수 있다면 가스관이 시베리아로부터 북한을 경유해 남쪽까지 올 수도 있고, 몽골에 대규모 태양광이나 풍력발전이 이뤄진다면 전기가 아시아 실크로드와 북한을 통해 남쪽으로 올 수도 있다. 무궁무진한 경제영역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과 러시아가 철도 연결을 하게 되면 우리는 대륙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와 통로를 잃어버리게 된다.”
 
서해 해주항과 동해 안변항의 개방 프로젝트 아쉬워
 
TSR의 일본 연결 프로젝트는 어느 정도 예견될 일이었다. 현재 러시아 전체 물동량의 26%를 블라디보스토크를 비롯한 극동지역 항만이 처리하고 있으며, 2005년부터 2014년 사이에 물동량은 136%나 증가했다. 러시아로서는 자국의 극동 지역 항만과 함께 이용 가능한 부동항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남북한이 담 쌓고 지낸 지 10년이 흐르는 동안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려는 일본과 러시아의 움직임이 탄력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 점에 대해 문 대통령은 진한 아쉬움을 숨기지 않는다. ‘철의 실크로드’는 한국의 주도로 관련국 모두를 평화경제로 이끌 수 있는 자력(磁力)을 지닌 사업이라 믿기 때문이다.
 
2000년 6월 13일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김대중 대통령이 예상을 깨고 트랩까지 영접 나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두 손을 잡고 환하게 웃으며 인사말을 나누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2000년 6월 13일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김대중 대통령이 예상을 깨고 트랩까지 영접 나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두 손을 잡고 환하게 웃으며 인사말을 나누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문 대통령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시절 북한과 합의한 여러 가지 경협사업에 애착이 강하다. 많은 사업이 고 노무현 대통령과 자신이 머리를 맞대고 구상했던 것이다. 보수정권 10년간 중단, 표류된 것에 크게 낙담하고 있었다는 후문이다. 집권 후 남북관계가 풀리면 당시 사업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여러 번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이 재개 추진 의욕을 갖고 있는 사업 중엔 서해 해주항과 동해 안변항의 개방 프로젝트가 들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경제민생 이슈’를 국정 운영의 최우선 반열에 놓고 있다. 취임하자마자 일자리 문제 챙기기에 무서운 집중력을 보인 것이 그 방증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의 장기 포석은 역시 남북관계 개선과 북핵문제 해결에 또렷한 방점이 찍혀 있다.
 
해주는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제2의 개성공단으로 개발을 예약했던 곳이다. 해주항은 지난 1973년 시멘트 전용항으로 개항했으며, 현재는 남포항의 보조항으로 기능하고 있다. 현재 부두 길이 1.4㎞에 하역능력은 240만t에 불과한 작은 항구다. 국내 항만에 비교하면 거의 어항에 가까운 규모다. 해주항에 들어올 수 있는 선박은 5000~1만t, 수심은 8~15m에 불과하다. 해주연안의 주민들은 어패류 등의 채취를 통해 생계와 외화벌이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항 수준의 해주항을 기존 개성공단과 새로 건설할 해주공단의 물류를 담당토록 확장계획을 세웠던 때가 바로 10년 전이다. 해주항이 확장되기는커녕 지금은 개성공단마저 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문 대통령은 비무장지대 남쪽에 남북협력공단 건설 사업에도 관심이 많다. 강원도 고성이나 경기도 파주에 공단을 만들면 북한 근로자들이 출퇴근하며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충분히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비무장지대를 중심으로 남북이 공동으로 펼칠 수 있는 사업이 무궁무진할 것으로 본다. 하고 싶은 사업이 많아도 지금은 북핵문제가 첨예한 상태라 엄두를 내지 못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화해 전략을 짐작하려면 대미특사로 임명된 홍석현 전 중앙일보·JTBC 회장의 최근 발언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익명을 요구한 문재인 정부의 한 핵심인사는 “두 사람이 남북관계 개선이나 북핵문제 해법에 있어 ‘의기투합’했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공감의 폭이 넓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대선 직전 문 대통령이 홍 전 회장을 만나 외교·통일 내각에 참여를 부탁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뤄졌고, 홍 전 회장은 향후 대북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도 비중 있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 전망했다.
 
문 대통령 입장에서 현재의 남북관계는 황무지나 다름없다. 지난해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개성공단이 문을 닫고 양측을 연결하던 통신까지 가동을 멈췄다. 양측 간 접촉이 사실상 전혀 없었던 지난 1972년 7·4 공동성명 이전으로 되돌아갔다.
 
홍 전 회장은 “북한과 교류협력을 중단하면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생명줄을 쥐게 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영향력과 입지가 축소되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이 홍 전 회장의 우려다. 홍 전 회장은 “북에 대한 선제타격은 참혹한 전면전을 부르기에 선택할 수 없는 옵션이고, 결국 핵을 동결시키고 협상 테이블로 나오게 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본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외과수술식 공격을 한다 해도 북 지휘부를 괴멸시키거나 핵시설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본다. 실제로 미국은 북한이 고농축우라늄 시설을 어디에 숨겼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길주의 핵실험장은 전술핵으로 공격해도 갱도 입구 정도만 타격을 받는다고 한다. 최근 북한이 미사일에 고체연료가 사용되면서 이동식 발사로 바뀌고 있어 미사일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파악하기 어렵다.
 
미국이 1994년 5월에 영변에 대한 ‘외과수술’식 공격을 검토하다 포기한 것은 60일 이내에 100만~150만 명의 무고한 희생자가 나올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북한이 반격을 하게 되면 미군기지가 있는 오산·평택·용산 같은 곳을 공격할텐데, 그곳이 전부 인구밀집지역이라 확전은 피할 수 없다. 홍 전 회장 지적대로 ‘참혹한 전면전’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문재인 정부 통일외교 분야에서 중용이 점쳐지는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의 생각도 비슷한 맥락이다. “북한 비핵화를 대북 협상의 입구에 놓으면 현실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우선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못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홍 전 회장이 언급한 ‘핵 동결’이다. 문 교수는 “대북 협상의 입구에 ‘동결’을, 출구에 비핵화를 놓고 그 가운데 감축과 검증 등을 배치해야 한다”면서 “북한이 미국과 양자협상을 하겠다면 그렇게 하도록 지원할 필요도 있다”고도 말했다. 북한이 하고픈 걸 못하게 하려면 응분의 대가가 있어야 하는데, 도덕적 관점에서 “핵을 가지는 건 나쁜 일이니 중단하라”고만 하는 건 비현실적이란 진단이다.
 
문 대통령 입장에서 현재의 남북관계는 황무지나 다름없다. 지난해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개성공단이 문을 닫고 양측을 연결하던 통신까지 가동을 멈췄다. 양측 간 접촉이 사실상 전혀 없었던 지난 1972년 7·4 공동성명 이전으로 되돌아갔다. 남북관계가 거의 제로 수준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미국이나 중국을 상대로 써먹을 지렛대가 없는 것이 문제다. 북한과의 국제관계에서 소위 ‘코리아 패싱(한국 제외)’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남북관계가 좋으면 미국도 한국에 의존할 것이 많아진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 직후 그런 상황이 조성됐다. 황원탁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방미해 클린턴 대통령에게 결과를 보고하고 김정일 위원장의 메시지도 전달했다. 그래서 이뤄진 게 조명록 국방위 제 1부위원장과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양국 교차방문이다. 북한이 6자회담에 나오도록 하는 데도 한국이 중국보다 더 큰 역할을 했다. 남북관계가 개선돼야 한국 정부가 그 카드를 외교의 지렛대로 쓸 수 있지만, 박근혜 정부의 대북 봉쇄정책으로 그런 카드는 다 사라지고 없다.
 
‘힐러리 해법’의 부활은 가능할까?
 
2010년 7월 23일 베트남 하노이 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가한 북한 대표부가 휴식 시간 중 지나치는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2010년 7월 23일 베트남 하노이 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가한 북한 대표부가 휴식 시간 중 지나치는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트럼프의 미 대통령 당선도 불운이라면 불운이다. 힐러리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었다면 대북문제에 관한 한 미국과 호흡이 척척 맞았을 가능성이 컸다. 오바마 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낸 힐러리는 북한과의 협상에서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오바마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 2009년 2월 13일, 당시 클린턴 장관은 중대한 발언을 했다.
 
첫째, 9·19 공동성명에 명시된 북·미수교를 하겠다는 것, 둘째 공동성명 4항에 있던 평화협정 문제를 우선적으로 논의하겠다는 것, 셋째 경제지원을 하겠다는 것이다.
 
9·19 공동성명은 2005년 9월 19일 6자회담에서 6개국 모두가 동의해 채택된 바 있다. ▷북한의 비핵화 ▷미국과 북한의 수교, 일본과 북한의 수교 ▷북한을 제외한 5개국의 대북 경제 지원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 논의 등이 그 내용이다.
 
6자회담의 이런 구상을 ‘비핵·개방·3000’을 내세운 이명박 정부가 반대했다. 핵을 포기하고 개방한다면 한국이 국제사회와 협력해 북한 주민의 1인당 소득을 3000달러까지 만들어주겠다는 것이 ‘비핵·개방·3000’의 요체다. 그전에는 남북교류나 대북지원을 일절하지 않겠다는 것이 이명박 정부의 의지였다. 이명박 정부의 ‘선 비핵화’ 장벽에 막혀 오바마 정부는 평화협정 논의를 시작하지 못했고, 6자회담도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북한은 힐러리 클린턴 장관 발언 3개월 후인 5월 29일 2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같은 해 11월에도 클린턴 장관은 거의 같은 발언을 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그 당시에도 모든 의제를 한 테이블에 올려놓는 ‘일괄타결’ 안을 고집하며 소위‘힐러리 해법’에 협조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안보팀이 2009년 ‘힐러리 해법’의 부활을 암묵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해도 현 단계에서 그 같은
전략을 공개적으로 언급할 순 없을 것이다. 클린턴이 아니라 트럼프가 당선된 현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에 대한 미국인의 반감이 상당한 상황에서, 북한 핵 문제를 외교적 협상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문 대통령을 트럼프가 우호적으로 보기는 힘들 것이다. 특히 트럼프의 종잡을 수 없는 태도가 문 대통령을 더욱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2015년 8월 16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당시·왼쪽)가 광복 70주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문 대표는 이날 회견에서 “환동해권과 환황해권을 양 날개로 하는 ‘한반도 신(新) 경제지도’ 구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김상선

2015년 8월 16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당시·왼쪽)가 광복 70주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문 대표는 이날 회견에서 “환동해권과 환황해권을 양 날개로 하는 ‘한반도 신(新) 경제지도’ 구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김상선

 
“북한이 대화로 나오면 화끈하게 응하겠다”
 
트럼프는 칼빈슨호를 한반도 해역에 급파하고, ‘모든 폭탄의 어머니’라는 모압(MOAB·공중폭발 초대형 폭탄)을 등장시키는 등 강경하게 처신하다 갑자기 “북한이 비핵화 의지가 있으면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도 말했다. 일상적으로 빅딜을 즐기는 사업가 기질이 여실히 드러나지만, 미국에 대한 불신이 큰 북한을 상대로 이 같은 전략이 먹힐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문 대통령 입장에선 김정은보다 트럼프의 속내를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인지 모른다.
 
게다가 현재 북·미 간 비밀접촉이 이뤄지고 있고, 여기에 트럼프가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설이 나돌고 있다. 트럼프는 FBI 국장을 해임하면서 탄핵이 언급될 만큼 국내정치 상황이 좋지 않다. 그가 북한 카드를 어떻게 활용할지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외치에서 업적을 쌓아야 할 처지인 만큼, 대(對)북한 관계에서 빅딜을 만들어보려는 유혹이 클 수도 있다. 북한에 대해 선제타격 등 강경론의 유혹에 빠질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최근 틸러슨 미 국무장관의 수정된 대북전략 발언은 문재인 정부도 경청할 필요가 있다. 틸러슨 장관은 “오바마가 제재와 압박도, 대화와 협상도 제대로 못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제재와 압박을 강력히 하되, 북한이 대화로 나오면 화끈하게 응하겠다”고 발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영광스럽게(honored)’ 만나겠다는 발언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서울과 평양 모두 이 메시지를 잘 읽고, 협상과 대화에 나서야 기회를 잡고, 위기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의 온갖 변덕에도 문 대통령은 북미 평화협정을 근간으로 하는 ‘힐러리 해법’ 외에 북핵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길은 없다고 믿는 것 같다. 대선을 보름 앞둔 지난 4월 23일 당시 문재인 후보는 비핵평화구상을 발표했다. “우리가 주도해 북한의 ‘선(先)행동론’ 대신 북한과 미국을 포함한 관련 당사국들의 ‘동시 행동’을 이끌어내겠다”는 것이 요지다. 북한이 먼저 핵을 포기해야 한다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와는 사뭇 다른 방침이다. 문 후보는 “이를 바탕으로 북한의 완전한 핵 폐기 및 비핵화와 함께 평화협정 체결이 포괄적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미 평화협정으로 가는 길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문 대통령이 지켜봐야 할 대상은 북·미관계만이 아니다. 현 단계에서 하이라이트는 미·중관계다. 4월 초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대화와 협상을 통해 북핵을 해결할 용의가 있다”는 답을 얻었을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으로부터 “대북 압박에 동참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것으로 보인다. 서로 ‘윈-윈’을 위한 전략적 거래를 한 셈이다.
 
트럼프가 대화 가능성을 비치고 있는 것은 북한뿐 아니라 중국에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중국이 북한을 제대로 압박해 협상에 나오도록 하면 기꺼이 대화할 용의가 있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북한 제재 문제에 있어 이 정도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면 트럼프가 시진핑을 떠올릴 때마다 그토록 파안대소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현재 외교 라인을 총동원해 트럼프-시진핑 간 이뤄진 북한 제재의 로드맵에 접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 정부 외교라인의 한 인사는 “이해찬 대중 특사도 시진핑을 만나면 트럼프와 시진핑 사이에 이뤄진 대북 압박조치의 정확한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 전언했다. 
 
문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의 7·4공동성명, 노태우 대통령의 남북기본합의서, 김대중 대통령의 6·15 공동선언, 노무현 대통령의 10·4 정상선언 등 4명의 역대 대통령이 보인 남북 평화공존 의지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조국통일 3대 원칙으로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을 선포한 7·4공동성명의 가치는 여전하고, 특히 노태우 정부 시절 이뤄낸 남북기본합의서를 가장 높은 수준의 남북 공존의 정신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5년이 그 운명의 시간
문재인 대통령을 표지에 게재한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5월 15일자.문 대통령 표지의 <타임> 아시아판은 품절 사태를 빚었다. 사진·중앙포토

문재인 대통령을 표지에 게재한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5월 15일자.문 대통령 표지의 <타임> 아시아판은 품절 사태를 빚었다. 사진·중앙포토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 서문에는 ‘(남북관계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고 규정하고 있다. 남북한이 당장 통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공동 인식 아래 상호 인정, 군사적 불가침, 교류·협력을 통한 점진적 통일을 내외에 천명했다. 1993년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한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합의서 내용은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문 대통령은 최근 사석에서 “25년 전 군사정부에서 합의된 내용보다 훨씬 후퇴한 남북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민족사의 관점에서 부끄러운 일”이란 생각을 밝혔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도올 김용옥과의 월간중앙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되면 북한부터 먼저 가겠다”는 발언으로 보수 세력의 총공세에 직면했다. 중도 세력으로 외연을 확장해야 하는 시기에 아마도 큰 악재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도올 인터뷰 직후에 발간된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그는 이렇게 심경을 토로했다.
 
“한반도 평화를 구축하고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디든 못 가겠습니까? 지옥이라도 가야죠. 다만 우리에게는 그 질문에 대해선 미국이라고 답해야 한다는 제한된 사고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게 정말 슬픈 일이죠. 그에 대한 답이 사상검증처럼 된다는 일이 슬픈 일이고, 그 답이 미국이어야하지 않으냐는 생각이 지배적이라는 것도 슬픈 일입니다.”
 
문재인의 남북화해 의지는 경제적 관점이 승하다. 남북 간 경제교류나 협력을 말할 때도 ‘거래’라는 상업적 용어를 즐겨 사용한다. 상호적이고 대등하게 이익을 주고받는 관계라야 건강하고 오래 지속된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 요컨대 남북관계 개선은 한민족 전체의 경제적 활로와 직결돼 있다는 소신이다. “수출과 내수가 한계에 이른 우리 경제는 북한을 통해 대륙으로 확장돼나가는 것 외에는 출구가 별로 없다”고 그는 생각한다.
 
그가 아흔이 넘은 노모를 모시고 고향 함흥을 방문하긴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언젠가 그가 여러 국민과 함께 개마고원을 트레킹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 그는 아마도 개마고원에서 장진호를 거쳐 흥남에 이르는 122㎞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그 역사적 트레킹 길을 스스로 만들어가야 하는 운명에 그는 처해 있다. 앞으로 5년이 그 운명의 시간이다.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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