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장기연체된 빚 전액 탕감해준다? 유례없는 '빚 탕감' 정책, 서민 살릴까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광주 북구 국립 5ㆍ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ㆍ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광주 북구 국립 5ㆍ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ㆍ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정부가 나서서 연체된 빚을 100% 탕감해준다?
유례없는 빚 탕감 정책은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수 있을까.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내세운 ‘소액·장기연체 채권 소각’ 공약이 어떻게 실현될지에 관심이 쏠린다.
 
문 대통령은 공약집에서 국민행복기금이 보유한 연체채권 중 1000만원 이하이면서 10년 이상 연체된 채권을 소각하겠다고 약속했다. 3월 말 기준으로 볼 때 이에 해당하는 채권자는 43만7000명, 전체 채권 규모는 1조9000억원 정도다. 1인당 435만원의 연체된 빚을 없애주는 셈이다.
 
금융위원회는 이 공약을 이행하기 위한 종합적인 채무 재조정 프로그램을 마련 중이다. 조만간 이를 '100일 플랜'으로 보고한다는 계획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오랫동안 빚을 갚지 못해 사회의 어두운 곳으로 떨어진 장기 연체자들의 빚은 털어주는 게 맞다. 국민행복기금이 그동안 다소 보수적으로 운영돼왔지만 좀 더 확실하게 (채권 소각을) 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법원에서 개인파산 결정을 받으면 채무에서 해방되지만 많은 연체자가 이런 제도를 모르거나 '파산자'라는 낙인이 싫어서 이를 이용하지 않고 있다"며 "이런 장기 연체자들이 대상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DJ "농가 부채 경감", 박근혜 "행복기금 빚 감면" 공약 
전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원 50여명이 1998년 9월 10일 오후 서울역앞에서 값이 폭락한 한우를 모델로 내세우고 농가부채 경감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중앙포토]

전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원 50여명이 1998년 9월 10일 오후 서울역앞에서 값이 폭락한 한우를 모델로 내세우고 농가부채 경감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중앙포토]

이전에도 ‘빚을 줄여준다’는 대선 공약은 많았다. 하지만 정부가 나서서 빚을 100% 없애준다는 공약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87년과 1992년 대선에서 ‘농가부채 탕감’을 공약했다. 그러나 정작 1997년 대선 때는 ‘부채 경감’으로 완화했고 집권 후에도 상환 연장과 이자 감면에 그쳤다.  
 
2007년 대선 때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선거 직전 '720만 신용 대사면'을 공약했다. 저신용자(신용등급 7~10등급)의 채무 중 이자를 감면해주고 금융채무 불이행자(신용불량자) 연체기록을 말소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실제 정책에선 한걸음 물러나 3000만원 이하의 연체자 72만 명이 이자 감면의 대상이 됐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은 "18조원 규모의 국민행복기금을 세워 일반채무자는 최대 50%, 기초생활수급자는 최대 70%까지 빚을 감면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실제 정부 출범 한 달 만인 2013년 3월 29일 국민행복기금이 설립됐다. 이후 원금 감면율은 공약보다 더 높아져서 일반 최대 60%, 기초생활수급자 90%로 높아졌다. 행복기금은 빚을 100% 탕감해주진 않기 때문에 채무조정된 금액을 최장 10년 동안 분할상환해야만 완전히 빚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연체채권 소각, 관건은 사회적 합의 
이번에 공약으로 나온 소액·장기연체 채권 소각은 새 정부가 실행하기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이미 행복기금이 보유한 채권이 대상이기 때문에 별다른 법 개정이나 예산 투입이 필요 없이 소각키로 정부가 결정하면 그만이다.  
 
문제는 사회적인 공감대 형성이다. 행복기금의 경우 15년 이상 연체된 소액(1000만원 이하) 채권에 한해 일반 채무자도 90%까지 빚을 깎아주는 ‘감면율 탄력적 확대’ 제도를 지난달 초 도입했다. 다만 본인이 직접 신청을 하고, 심의위원회로부터 소득·재산을 심사해 상환능력이 없다고 인정받아야 한다. 혹시 모를 ‘도덕적 해이’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심사 절차를 뒀다. 하지만 홍보 부족으로 실제 90% 감면을 신청한 사람이 몇 명 되지 않아 아직까지 이를 적용 받은 사례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심재철 국민행복기금 운영사무국장은 “소액·장기연체자는 상환여력이 없을 가능성이 크지만 정말 그런지 확인해보려고 제도를 만들었다”며 “(심사 없는) 일괄적인 감면은 대상자를 늘리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이에 대해서는) 찬반 의견이 나뉜다”고 설명했다.  
 
국민행복기금 가접수가 시작된 2013년 4월 22일 오전 서울 강남구 한국자산관리공사 채무조정 접수창구에서 시민들이 상담을 받고 있다. [중앙포토]

국민행복기금 가접수가 시작된 2013년 4월 22일 오전 서울 강남구 한국자산관리공사 채무조정 접수창구에서 시민들이 상담을 받고 있다. [중앙포토]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월 가계부채 공약을 발표하면서 "회수 가능성은 없는데 채권은 살아있으니 채무자는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못하고 있다"며 장기연체 채권 소각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아울러 "채무 감면은 연령·소득·재산·지출 정보를 면밀하게 심사해 실시하고 채무 감면 후 미신고 재산이나 소득이 발견되면 이를 무효화하고 즉시 회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따라서 공약에서 밝힌 연체 채권 소각도 결국 소득·재산에 대한 심사를 거쳐야 대상자로 선정될 전망이다. 빚 탕감 정책이 '빚을 갚지 않고 버티면 된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준다는 반대여론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심사 절차를 두지 않을 수 없다. 금융위 관계자도 "지원에 앞서 금융권과 국세청의 자료를 통해 재산과 소득을 확인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된다면 실제 대상자는 43만7000명보다 줄게 된다. 
 
남주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빚은 보통 5~6년 안에 못 갚으면 거의 갚을 능력이 없다고 볼 수 있다"며 "도덕적 해이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소각 대상 채권의 금액 기준을 500만원 이하로 낮추고, 대신 연체 기간은 5년 정도로 줄여주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500만원이 안 되는 채무를 탕감 받으려고 5년 간 금융거래도 막힌 채 연체상태로 버티는 사람을 거의 없을 거라는 설명이다. 남 교수도 "혹시 감춰진 소득이 있는지 모니터링을 꼼꼼히 하고, 사후에라도 추적을 해서 갚을 능력이 있으면 갚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관련기사
빚을 100% 없애준다고 해서 연체기록까지 모두 지워줘야 하느냐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을 전망이다. 예컨대 법원에서 개인파산으로 면책결정을 받으면 채무는 사라지지만 은행연합회에 특수기록정보가 5년 간 남아서 금융거래 시 불이익을 받게 된다. 이순호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10년 이상 연체했다면 수없이 빚 독촉을 받았는데도 결국 못 갚는 것이기 때문에 갚을 능력이 없다고 보는 건 맞다. “다만 빚을 면제해주면서 ‘신용 사면’까지 해준다면 이에 대한 여론의 반감이 심할 수 있으므로 어느 정도의 금융거래에 불이익을 주는 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정책을 짜는 과정에서 이런 부분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필요가 있다. 
저소득층엔 빚보다는 복지가 필요 
 
금융위는 이번에 신용회복위원회의 개인 워크아웃도 원금 감면율을 대폭 확대하고 대상자에 대한 금융지원도 확대하는 방안도 함께 내놓을 계획이다. 빚을 깎아주면 재기할 수 있을만한 사람들은 확실히 지원해주겠다는 취지다. 금융위 관계자는 "채무조정 대상인데도 신복위를 찾아오기를 주저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이들이 제 발로 찾아올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강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용회복위원회 상담 창구의 모습. 금융위는 신복위 개인워크아웃의 감면율을 확대하고 재기 지원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다. [중앙포토]

신용회복위원회 상담 창구의 모습. 금융위는 신복위 개인워크아웃의 감면율을 확대하고 재기 지원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다. [중앙포토]

하지만 저소득층에게 빚을 지게하고 이를 연체하면 깎아주는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큰 돈을 들이지 않고 많은 이들에게 생색을 낼 수 있지만 근본적인 해법은 되지 못한다. 아예 처음부터 빚을 질 필요 없게 사회적 안전망을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한 이유다.   
 
이순호 연구위원은 "갚을 여력이 없는 사람이 대출을 받지 못하는 건 나쁜 일이 아니다"라며 "그들에게 필요한 건 금융지원이 아닌 복지"라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공약집에서 '약탈적 대출 규제'와 '빚 내지 않고 살 수 있는 사회 구축'을 공약했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AD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