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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희의 맛따라기] 단맛 물씬 활어회 천국 … 숙취 아침에 간절한 졸복국·메기탕

통영중앙시장 서쪽 출입구 골목 초입에 있는 은성식당의 자연산 4종 모둠회. 참돔·볼락·쥐치·우럭(붉은색부터 시계방향)이 올라왔다. 살아있던 생선을 눈앞에서 회로 쳐주는데 생선 살이 달았다.

통영중앙시장 서쪽 출입구 골목 초입에 있는 은성식당의 자연산 4종 모둠회. 참돔·볼락·쥐치·우럭(붉은색부터 시계방향)이 올라왔다. 살아있던 생선을 눈앞에서 회로 쳐주는데 생선 살이 달았다.

김현정 셰프와 즐긴 ‘맛의 바다’ 통영(하)
경상도 음식은 맛이 없다는 게 일반의 상식이다. ‘짜장면도 경상도에서는 맛이 없다’는 우스개도 있다. 첫 통영 여행에서 나는 생각을 바꿨다. “경상도에 가면 먹을 게 없다고? 통영에 가보라.” 경상도 음식은 맛이 없다는 시각으로 보면 통영은 경상도가 아니다. 단위면적당 맛있는 음식 밀도를 재는 통계가 있다면 통영이 나라 안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 것이다.
                                                                                               그래픽=고석현기자

그래픽=고석현기자

통영은 별미가 넘쳐나는 ‘맛의 바다’다. 흔히 말하는 각종 회와 굴 요리, 다찌집 말고도 졸복국·도다리쑥국·시락국·충무김밥(꼬지김밥)·멍게(유곽)비빔밥·볼락(매운탕·구이·회·김치)·메기탕·(붕)장어(회·탕·구이)·멸치회무침·나물(비빔)밥·꿀빵·우짜·호래기(꼴뚜기)무침·죽(빼때기·깨·팥·녹두) … 다 꼽기 어려울 지경이다. 그 중 통영 사람들이 유난히 좋아하는 생선이 볼락과 졸복이다. 통영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음식점은 충무김밥과 꿀빵 집이다.
통영 사람들이 유난히 좋아하는 생선 볼락 구이. 노란 알이 먹음직스럽다. 2015년 12월 13일 아침 동호항 근처 ‘한산섬식당’에서 먹었다. 값도 꽤 비싸 한 마리에 4000~5000원은 한 것으로 기억한다.

통영 사람들이 유난히 좋아하는 생선 볼락 구이. 노란 알이 먹음직스럽다. 2015년 12월 13일 아침 동호항 근처 ‘한산섬식당’에서 먹었다. 값도 꽤 비싸 한 마리에 4000~5000원은 한 것으로 기억한다.

어선이 많이 드나드는 통영 동호항 근처 ‘한산섬식당’에서 먹은 볼락매운탕(1만2000원). 센 가시가 많은 게 흠이지만 국물은 시원하고 살은 담백하면서 고소하다. 아침인데도 소주 잔을 기울이는 테이블이 둘이나 보였다. 2015년 12월 13일 사진이다.

어선이 많이 드나드는 통영 동호항 근처 ‘한산섬식당’에서 먹은 볼락매운탕(1만2000원). 센 가시가 많은 게 흠이지만 국물은 시원하고 살은 담백하면서 고소하다. 아침인데도 소주 잔을 기울이는 테이블이 둘이나 보였다. 2015년 12월 13일 사진이다.

통영 음식문화의 독특한 발전은 탄탄한 역사·지리적 바탕이 있어 가능했다. 통영은 ‘통제영’을 줄인 말이다. 1600년대 초부터 1800년대 말까지 3도수군통제영이 있었다. 도시의 이름이 거기서 왔다. ‘3도’는 경상·전라·충청을 말한다. 조선시대 수군 편제상 한반도 남쪽 3도를 통할하는 부대라면 수군의 거의 전부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1895년까지 통제영이 주둔한 3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통영에는 3도 사람과 물산이 끊임없이 드나들었다. 사람을 따라 의식주 관습과 생활문화가 모이고 긴 세월만큼 쌓였다. 군인들의 노동력과 식욕은 왕성했다. 대규모 군사기지가 있었으니 소비도 왕성했다. 200여 개 섬이 있는 다도해 앞바다의 풍부한 수산물은 하늘이 준 혜택이었다. 이런 배경과 조건이 종횡으로 짜여 통영 음식은 경상도 다른 지역과 계통이 다르게 발달했다. 덕택에 통영은 ‘맛의 바다’가 됐다.
통영 여행 둘째 날 아침으로 먹은 분소식당의 졸복국 상차림. 콩나물·미나리와 손가락만한 졸복 7~8마리가 들어갔을 뿐인데 맑은 국물이 아주 시원하다.

통영 여행 둘째 날 아침으로 먹은 분소식당의 졸복국 상차림. 콩나물·미나리와 손가락만한 졸복 7~8마리가 들어갔을 뿐인데 맑은 국물이 아주 시원하다.

2008년 1월 분소식당의 메기탕. 졸복국과 함께 이 집이 자랑하는 음식이다. 시원한 국물은 서울에서도 숙취가 있는 아침마다 간절히 생각난다. 현재의 주인 부부에게 음식점을 넘긴 창업주의 딸과 사위가 할 때의 음식이다.

2008년 1월 분소식당의 메기탕. 졸복국과 함께 이 집이 자랑하는 음식이다. 시원한 국물은 서울에서도 숙취가 있는 아침마다 간절히 생각난다. 현재의 주인 부부에게 음식점을 넘긴 창업주의 딸과 사위가 할 때의 음식이다.

여행 이튿날 아침은 졸복국을 찾아갔다. ‘분소식당(경남 통영시 통영해안로 207/전화 055-644-0495)'이 단골집이다. 1년에 한두 번뿐이지만 20년 가까이 다녔다. 새벽시장인 서호시장을 끼고 여객선터미널 정문 앞에 있어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다. 계절 따라 졸복국(1만2000원)·메기탕(1만5000원)·도다리쑥국(1만5000원)를 대표 음식으로 낸다. 멍게비빔밥(1만2000원)도 한다.  
 
식당 이름 ‘분소’에 대해서는 세 가지 설이 있다. 분소(分笑), 웃음을 나누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뜻으로 지었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다. 뜻은 좋으나 작위적 해석이라는 느낌이 든다. 둘째는 이웃에 있는 ‘호동식당’에서 일하다가 나와 식당을 차린 아주머니가 동네 유지 단골에게 작명을 청하니 “호동식당에서 떨어져 나왔으니 ‘분소’라 하라" 했다는 얘기다. 셋째는 식당 자리에 이전 수협 분소(分所)가 있었기 때문에 동네 사람들이 ‘분소’라고 불러 그대로 옥호로 삼았다는 것이다. 
서호시장 안에서 본 분소식당. 문을 나서면 바로 번잡한 해물시장이 펼쳐진다.

서호시장 안에서 본 분소식당. 문을 나서면 바로 번잡한 해물시장이 펼쳐진다.

분소식당 문밖에서 본 서호시장. 언제 가도 시장이 푸짐해 구경하는 사람 마음도 풍요로워진다. 몇 년 전 시장을 전면 보수해 통행로도 깔끔하게 정비됐다.

분소식당 문밖에서 본 서호시장. 언제 가도 시장이 푸짐해 구경하는 사람 마음도 풍요로워진다. 몇 년 전 시장을 전면 보수해 통행로도 깔끔하게 정비됐다.

9년 전 겨울 서호시장 모습이다. 노점 자리가 완전히 개방돼있고 지붕도 없었다. 새벽에는 노점 한쪽에 장작불을 피워놓고 짬짬이 추위를 녹였다. 그 불에 성치 못한 생선을 구워 아침 허기를 달래기도 했는데, 지나가다 술 한잔 사면서 자리에 끼여 구운 고기를 얻어 먹기도 했다.

9년 전 겨울 서호시장 모습이다. 노점 자리가 완전히 개방돼있고 지붕도 없었다. 새벽에는 노점 한쪽에 장작불을 피워놓고 짬짬이 추위를 녹였다. 그 불에 성치 못한 생선을 구워 아침 허기를 달래기도 했는데, 지나가다 술 한잔 사면서 자리에 끼여 구운 고기를 얻어 먹기도 했다.

어느 게 사실인지 언젠가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주인이 바뀌어 이제는 물어볼 수 없게 됐다. 창업주인 조봉씨(작고)에 이어 딸과 사위가 한동안 운영했지만 딸은 어머니의 피땀이 서린 자리에서 매일 일을 하자니 어머니 생각이 너무 나서 힘들었다. 2012년 사위의 오랜 친구이자 식당 바로 옆 오팔수산의 주인 이옥용(59)·김혜숙(58)씨 부부에게 음식 비법과 함께 가게를 넘겼다. 이씨는 오팔수산을 운영하면서 25년간 도다리·물메기 등 자연산 활어를 분소식당에 공급했다. 아내 김씨는 다른 음식점에서 주방 일을 오래 해왔다. 좋은 재료와 숙달된 솜씨가 만나 분소식당은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밑반찬 스타일과 맛은 조금 바뀐 듯하다. 내가 간 날만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전 주인 때가 더 토속적이었다 할까, 더 바닷가 맛이라 할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집 졸복국에는 한 입 크기의 졸복 7~8마리에 머리 딴 콩나물과 미나리가 들어간다. 국물이 맑은데 시원하기가 그만이다. 도다리쑥국이나 물메기탕도 살과 국물이 봄바람처럼 부드럽고 시원한 맛이다. 싱싱한 생선만이 낼 수 있는 시원함이다. 국물 음식을 좋아하다 보니 서울에서도 숙취가 심한 날에는 한 뚝배기가 간절한 맛이다.
분소식당의 졸복매운탕은 2인 이상만 주문이 가능하다. 값도 1인 1만4000원으로 복국보다 2000원 비싸다. 서울 입맛에는 매운탕에 더 마음이 끌렸다. 2008년 1월 사진이다.

분소식당의 졸복매운탕은 2인 이상만 주문이 가능하다. 값도 1인 1만4000원으로 복국보다 2000원 비싸다. 서울 입맛에는 매운탕에 더 마음이 끌렸다. 2008년 1월 사진이다.

얼음에 덮여 들어온 졸복이 겨울이어서 얼어붙자 서호시장 상인이 물에서 녹이고 있다. 2008년 1월 사진이다.

얼음에 덮여 들어온 졸복이 겨울이어서 얼어붙자 서호시장 상인이 물에서 녹이고 있다. 2008년 1월 사진이다.

분소식당에서 졸복에 얽힌 특별한 기억 한 토막. 통영에도, 분소식당에도 처음 갔을 때 졸복국을 주문했다. 사위가 바가지에 졸복 몇 마리를 담아 식당 앞 수돗가로 손질하러 갔다. 따라가서 옆에 쪼그리고 앉아 구경을 하다가 알지도 못하면서 입바른 소리를 했다.
- 나 ”이렇게 작은 복들을 잡아버리니까 큰 복이 귀한 거 아닌가요?”
▷사위 “이거 다 자란 거예요. 이 복은 원래 요만해요.”
- 나 ”…….”
 
분소식당과 어깨를 겨루는 통영의 (졸)복국 집으로 1970년 문을 연 중앙시장의 ▷동광식당(경남 통영시 통영해안로 343-1/전화 055-644-1112)과 서호시장 ▷호동식당(경남 통영시 새터길 47/전화 055-645-3138) ▷만성복집(경남 통영시 새터길 12-13/전화 055-645-2140)이 있다. 저마다 개성이 있지만 외지인이 가려낼 정도의 차이는 아니다. 탄성이 저절로 나오는 시원함이 다른 분별심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해장음식이 주력이니 아침 일찍(오전 6~7시) 문을 여는 것도 비슷하다.
분소식당 옆자리 젊은 커플이 시킨 도다리쑥국. 3월쯤에 먹기 좋은 음식이다. 철이 이미 지났다. 5월이면 쑥이 너무 자라 국으로 먹기에는 향이 독하고 잎도 질기다. 도다리 살은 부드러워 보인다.

분소식당 옆자리 젊은 커플이 시킨 도다리쑥국. 3월쯤에 먹기 좋은 음식이다. 철이 이미 지났다. 5월이면 쑥이 너무 자라 국으로 먹기에는 향이 독하고 잎도 질기다. 도다리 살은 부드러워 보인다.

옆자리 젊은 커플이 도다리쑥국(1만5000원)을 주문했다. ‘통영 여행 초보이겠구나’ 속으로 생각했다. 도다리쑥국은 통영 앞바다 섬들의 양지바른 남쪽 비탈에서 쑥잎이 바닷바람 견디며 새끼손가락 길이쯤 자랐을 때 해먹는 음식이다. 3월까지가 좋고 4월도 조금 늦은 때다. 5월 쑥은 자랄 대로 자라고 쇄서 향이 독하다.
분소식당의 멍게비빔밥. 통영은 우리나라 멍게 생산량의 70%를 차지하는 집산지다. 웬만한 음식점에는 대개 멍게비빔밥이 있다.

분소식당의 멍게비빔밥. 통영은 우리나라 멍게 생산량의 70%를 차지하는 집산지다. 웬만한 음식점에는 대개 멍게비빔밥이 있다.

분소식당은 멍게비빔밥도 한다. 통영의 웬만한 식당에서는 멍게비빔밥을 다 한다. 5월은 멍게의 계절이다. 우리나라 멍게 생산량의 70%가 통영에서 나온다고 한다. 통영에는 비빔밥이 다양하다. 나물비빔밥, 멍게비빔밥, 유곽비빔밥, 멍게유곽비빔밥 등, 전주나 진주 비빔밥과 계통이 전혀 다른 독특한 비빔밥이 전해온다. 오랜 기간 수군 병영이 주둔한 영향이 아닐까 싶다. 비빔밥은 준비나 배분이 집단급식에 아주 편리하다. 사월초파일에 절마다 비빔밥 공양을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나물비빔밥은 특히 통제영 음식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 비빔밥은 통영 주변 뭍과 바다에서 나오는 나물 8가지를 돌려 담고 바지락조개 살과 두부 넣고 끓인 국의 건지를 가운데 소복하게 올린 비빔 대접과 밥이 따로 나온다. 12가지 밑반찬이 상에 깔리고 조개두부국도 한 그릇 나온다. 이름이 ‘통영비빔밥(9000원)’이다. 전문 식당 이름도 ‘통영비빔밥(경남 통영시 발개로 138/전화 055-642-1467)’이다.  
통영에는 독특한 전주나 진주 비빔밥과 다른 비빔밥이 있다. 바다와 뭍의 나물 8가지와 익힌 두부·조갯살이 들어간다. 음식이름도 통영비빔밥이고 그걸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 상호도 통영비빔밥이다.

통영에는 독특한 전주나 진주 비빔밥과 다른 비빔밥이 있다. 바다와 뭍의 나물 8가지와 익힌 두부·조갯살이 들어간다. 음식이름도 통영비빔밥이고 그걸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 상호도 통영비빔밥이다.

유곽비빔밥(1만원)은 이름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여기서 말하는 ‘유곽’은 국어사전에 올라있지 않지만 남도에서 귀한 대접을 받는 음식이다. 된장·고추장 양념해 볶은 조갯살을 큰 조개 껍데기에 채우고 구워낸 것이다. 반찬이나 쌈장, 비빔장으로 쓴다. 멍게유곽비빔밥은 2~3일 숙성한 멍게 살과 유곽을 넣고 비빈 밥이다. 통영의 멍게비빔밥에는 고추장이 들어가지 않는다. 간장과 참기름으로 비빈다. 고추장은 멍게 맛을 가리기 때문에 넣지 않는다고 한다.
연화도를 거쳐 욕지도로 가는 여객선에서 건너다본 통영시내. 오른쪽 작은 봉우리가 남망산이고, 이 바다는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학익진을 펼쳐 왜군을 궤멸시킨 한산섬대첩의 현장이다.

연화도를 거쳐 욕지도로 가는 여객선에서 건너다본 통영시내. 오른쪽 작은 봉우리가 남망산이고, 이 바다는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학익진을 펼쳐 왜군을 궤멸시킨 한산섬대첩의 현장이다.

아침을 먹고 식당 바로 앞에 있는 여객선터미널에서 연화도로 들어가는 배를 탔다. 오전 9시 30분에 출항하는 연안여객선은 욕지도로 가는 도중 연화도에 잠시 들러 승객을 내려주고 간다. 승선권을 매표하려면 타는 사람 전원의 신분증이 있어야 한다. 바다는 잔잔했다. 한려수도 청정해역 바닷물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만큼 맑았다. 미륵도와 한산도 사이 항로를 배는 미끄러지듯 물결을 가르며 갔다. 이 바다는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한산도대첩의 현장이다. 1592년 7월 8일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56척의 배로 학익진(鶴翼陣)을 펼쳐 공격에 가담한 왜선 73척 중 66척을 격파하거나 불사르는 대승을 거두었다.
 
통영 국제음악당을 지나면서 시내 중심부와 남망산공원이 한눈에 다 들어올 만큼 점점 멀어졌다. 뱃전에 펄럭이는 깃발을 보니 문득 통영이 배출한 시인 유치환(1908~1967)의 시 ‘깃발’(1936년 1월 발표)이 떠올랐다. 9행으로 짧지만 문학적 아름다움을 고루 갖춘 단단한 시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텔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理念)의 푯대 끝에
애수(哀愁)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 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아는 그는
 
고등학생 때 이 시를 줄줄 외우면서도 솔직히 무슨 말인지는 알지 못했다. 이후에도 틈틈이 그의 시편을 즐겼지만 문자적 이해는 해도 감성적 공감은 없었다. 마흔 갓 넘어 통영 남망산공원을 산책하면서 바쁘게 출항하는 아침 배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깨침을 얻었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영원한 노스텔지어의 손수건’이라는 대목이 그림처럼 눈에 들어왔다. 출항하는 배마다 뱃머리에 걸어둔 깃발이 파닥이는 걸 보니 실로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다. 시를 쓴 1930년대 시대 현실(식민지)과 역사적 과제(국권 회복) 사이에서 뭔가 하긴 해야 할 텐데 우두커니 서있을 수밖에 없는 시인이 펄럭이지만 날아갈 수는 없는 깃발의 이미지를 취해 내면을 고백했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뒷부분은 저절로 뜻이 드러났다. 교과서는 이 시의 주제를 ‘이상향에 대한 동경과 좌절’ 또는 ‘생명에 대한 연민과 강한 애착’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국시인협회 대표간사 유치환 명의로 1958년 12월 30일 김춘수 시인에게 수여한 그 해 ‘시협상’ 상장. 두 사람은 모두 통영이 배출한 시인이다. 이때 유치환은 50세, 김춘수는 38세였다. 상장은 통영시 봉평동 김춘수 유품전시관이 소장하고 있다.

한국시인협회 대표간사 유치환 명의로 1958년 12월 30일 김춘수 시인에게 수여한 그 해 ‘시협상’ 상장. 두 사람은 모두 통영이 배출한 시인이다. 이때 유치환은 50세, 김춘수는 38세였다. 상장은 통영시 봉평동 김춘수 유품전시관이 소장하고 있다.

통영시 도천동 윤이상기념공원에 있는 윤이상 동상. 이 공원의 공식 명칭은 ‘도천테마공원’이다. 윤이상 이름 석 자는 아직도 분단의 올가미에 갇혀 자유롭지 못하다.

통영시 도천동 윤이상기념공원에 있는 윤이상 동상. 이 공원의 공식 명칭은 ‘도천테마공원’이다. 윤이상 이름 석 자는 아직도 분단의 올가미에 갇혀 자유롭지 못하다.

수려한 자연이 있어 아름다운 시가 나올 수 있었구나 생각하니 통영은 맛 못지않게 ‘예술의 바다’임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고장이 키워낸 굵직한 예술가들 이름만 짚어보아도 세계적 음악가 윤이상(1917~1995), ‘꽃’의 시인 김춘수(1922~2004),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소설가 박경리(1926~2008), 시조시인 이영도(1916~1976)·김상옥(1920~2004),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좋아한 화가 전혁림(1916~2010)과 김형근(1930~) 등이 있다. 평남 평원 출신 화가 이중섭(1916~1956)도 한국전쟁 시기 피란 와서 통영에 2년을 머물렀고, 평북 정주 사람인 시인 백석(1912∼1996)은 끝내 이루지 못한 사랑 ‘난(蘭)’을 찾아 통영의 골목을 오래 헤매었다.
 
통영 시가지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배는 오른쪽에 하얀 스티로폼 부표가 바둑판 모양으로 떠있는 바다를 지난다. 생식기능이 없어 여름에도 먹을 수 있는 3배체 굴을 키우는 태화물산의 양식장이다(지난주 기사 참조). 이어서 통영항을 떠난 지 1시간쯤 되자 눈앞에 연화도가 보인다. 바다에서 보면 연꽃이 떠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섬 이름이 연화도다. 오전 10시 40분 배가 선착장에 닿았다. 
씨 없는 수박처럼 생식기능이 없어 여름에도 먹을 수 있는 3배체 굴이 자라고 있는 태화물산의 양식장. 가운데 수면에 떠 있는 듯 보이는 작은 바위를 동네 사람들은 복바위 또는 아들바위라고 부른다.

씨 없는 수박처럼 생식기능이 없어 여름에도 먹을 수 있는 3배체 굴이 자라고 있는 태화물산의 양식장. 가운데 수면에 떠 있는 듯 보이는 작은 바위를 동네 사람들은 복바위 또는 아들바위라고 부른다.

연화도는 동서 3.5㎞, 남북 1.5㎞가량 되는 작은 섬이다. 섬 남쪽 해안은 깎아지른 절벽으로 이어져 절경을 연출한다. 특히 섬 중간 해안절벽에 올라앉은 보덕암에서 보는 경치가 일품이다. 동쪽을 보면 섬이 끝나는 곳에 네 개의 바위섬이 점점이 이어져있다. 용머리라고 하는 곳인데 주민들이 부르는 이름은 ‘네바위’다. 통영 8경 중 하나다. 바위 섬 주변이 석양에 물드는 광경을 보덕암에서 건너다보면 환상적인 절경이라는데 배 시간에 쫓겨 보지는 못했다. 선착장에서 섬 반대쪽 끝에 있는 동두마을까지 해안절벽을 따라 트레킹 코스가 잘 정비돼있다. 섬을 한 바퀴 트레킹하는 데는 3시간쯤 걸린다. 섬 동쪽 끝에 ‘돼지목’이라는 깎아지른 협곡에 출렁다리가 있다. 길이가 44m로 2011년 12월 15일 개통했다. 출렁다리 중간에 서면 동두마을 앞바다에는 고등어 가두리 양식장이 만(灣)에 그득하게 들어서 있고, 멀리 보면 좌우로 비진도와 욕지도가 올망졸망 눈에 들어온다.  
연화도 돼지목 협곡에서 섬의 서쪽을 바라보면 해안 대부분이 깎아지른 절벽이다. 바다 건너로 소초도·초도·욕지도(앞에서부터)가 차례로 겹쳐 보인다.

연화도 돼지목 협곡에서 섬의 서쪽을 바라보면 해안 대부분이 깎아지른 절벽이다. 바다 건너로 소초도·초도·욕지도(앞에서부터)가 차례로 겹쳐 보인다.

연화도 돼지목 협곡 건너 바위 봉우리에서 보이는 출렁다리와 동두마을의 고등어 가두리 양식장. 멀리 보이는 섬은 비진도다.

연화도 돼지목 협곡 건너 바위 봉우리에서 보이는 출렁다리와 동두마을의 고등어 가두리 양식장. 멀리 보이는 섬은 비진도다.

연화도의 남단에 해당하는 용머리(네바위) 암봉들. 좀 떨어진 보덕암 쪽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통영 8경 중 하나다.

연화도의 남단에 해당하는 용머리(네바위) 암봉들. 좀 떨어진 보덕암 쪽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통영 8경 중 하나다.

연화도 동남쪽 끝인 동두마을 입구의 ‘돼지목’ 협곡에 놓인 출렁다리는 길이 44m로 2011년 12월 15일 개통했다. 가운데를 지날 때는 제법 출렁거려 아찔한 긴장감을 맛볼 수 있다.

연화도 동남쪽 끝인 동두마을 입구의 ‘돼지목’ 협곡에 놓인 출렁다리는 길이 44m로 2011년 12월 15일 개통했다. 가운데를 지날 때는 제법 출렁거려 아찔한 긴장감을 맛볼 수 있다.

통영항에서 남쪽으로 24km 떨어진 연화도는 행정구역으로는 통영시 욕지면 연화리다. 통영시의 43개 유인도 가운데 가장 먼저 사람이 살았다고 전한다. 이웃 우도와 사이에 배를 대기 좋은 지형이 있고 식수가 풍부해 일찍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연화도 주민들 생화(生貨)는 무엇보다 고등어 양식이다. 서울에서 보는 활고등어 대부분은 연화도와 욕지도에서 자랐다. 소비가 많은 도시에서 너무 멀지 않고 육지 오염원과 너무 가깝지도 않은 준(準) 외해(外海)여서 양식조건이 좋다. 고등어 양식은 역사가 이제 10년이다. 2007년 제주에서 고등어 새끼를 잡아 가두리에서 기른 것을 시초로 2008년 인공수정란 대량 확보, 2009년 치어 대량생산에 성공하면서 일반화됐다.
‘연화도 횟집’의 노천 주방. 싱싱한 활어가 수족관에 가득하다.

‘연화도 횟집’의 노천 주방. 싱싱한 활어가 수족관에 가득하다.

선착장 공터에 있는 ‘연화도 자연산 횟집’에서 모둠회를 만들려고 수족관에서 꺼내놓은 살아있는 농어와 고등어. 성질 급한 고등어가 뛰쳐나갈 기세로 파닥이고 있다.

선착장 공터에 있는 ‘연화도 자연산 횟집’에서 모둠회를 만들려고 수족관에서 꺼내놓은 살아있는 농어와 고등어. 성질 급한 고등어가 뛰쳐나갈 기세로 파닥이고 있다.

연화도에 갔으니 고등어회를 맛보지 않을 수 없다. 선착장 마을에는 음식 내용이 비슷비슷한 횟집 네 곳 있다. 대표 음식은 고등어다. ▷용머리민박식당(055-643-6915) ▷네바위횟집(055-642-6715) ▷출렁다리횟집(055-646-2890) 세 곳은 주택을 개량한 민박집 겸 음식점이고 ▷연화도 자연산횟집(경남 통영시 욕지면 연화리 선착장 공터/전화 017-595-1676)은 파라솔 아래 테이블 몇 개가 있는 노점이다. 한 동네 주민이라 경쟁은 없어 보였다. 손님들은 통영으로 나갈 배편을 정하고 왔기에 마음이 바쁘다. 나는 남은 시간이 50분이었다. 빠듯한 시간이다. ‘용머리횟집’에 가서 바로 먹을 수 있을지 물으니 “저 집으로 가소. 두 접시 더 맹가야 하는데 내가 손이 빠르지 모하다 아인교”라면 노천횟집을 권한다. 모둠회를 주문했다. 살아있는 고등어와 농어로 한 접시 해주겠다고 한다. 활어가 힘차게 유영하는 수족관 옆에 세워둔 메뉴판 설명이 재미있다. ‘모듬회 그냥 많이 3만원, 가장 많이 4만원, 최고 많이 5만원’.
‘연화도 횟집’의 농어·고등어 모둠회 접시. 5분 전까지도 수족관을 유영하던 활어였다. 회를 아주 투박하게 썰었지만 현지 재료들과 어울리니 그 나름의 독특한 풍미가 있었다.

‘연화도 횟집’의 농어·고등어 모둠회 접시. 5분 전까지도 수족관을 유영하던 활어였다. 회를 아주 투박하게 썰었지만 현지 재료들과 어울리니 그 나름의 독특한 풍미가 있었다.

‘연화도 회집’의 농어·고등어 모둠회 한 상. 고등어 양식을 많이 하는 섬이어서 그런지 고등어회 양념(오른편 가운데)을 따로 해줬다.

‘연화도 회집’의 농어·고등어 모둠회 한 상. 고등어 양식을 많이 하는 섬이어서 그런지 고등어회 양념(오른편 가운데)을 따로 해줬다.

씩씩한 상추, 싱싱한 생미역, 그냥 봐도 군침이 도는 묵은지, 다진 마늘 얹은 된장이 먼저 나왔다. 바깥주인은 바구니에서 뛰쳐나갈 듯 파닥이는 생선으로 회를 만들었다. ‘회를 떴다’고 말하면 안 될 것 같은 회가 나왔다. 뼈와 가시만 빼고 무 자르듯 뚝뚝 자른 생선 고깃덩이였다. 안주인이 고등어회 소스를 내왔다. 간장에 다진 마늘과 대파, 거칠게 빻은 고춧가루, 통참깨를 비슷한 양으로 얹은 소스였다. 고등어 양식을 많이 하는 이 동네 사람들이 먹는 방식인 듯했다. 회 한 점을 먹었다. 5분 전만 해도 수조에서 떼지어 어지러울 정도로 빙빙 돌던 고등어다. 졸깃할 걸 예상했는데 땡땡하다. 제법 저항을 한다. 김현정(42) 셰프는 “고등어 몸통을 둘러싼 막이 있는데 그걸 벗기지 않아서 그렇다”고 설명했다. 막을 벗겨보려 했지만 도구도 없고 다 잘라놔서 이미 어쩔 수 없었다. 이 또한 여기 방식이려니 여기고 서둘러 먹었다. 
고등어회는 살이 땡땡한데 햇빛과 바닷바람 가득 받고 자란 노지 상추와 생미역에 얹어 된장쌈을 해 먹으니 저마다의 맛도 살아 있고 어우러지는 맛도 있어 색다른 미각을 선사했다.

고등어회는 살이 땡땡한데 햇빛과 바닷바람 가득 받고 자란 노지 상추와 생미역에 얹어 된장쌈을 해 먹으니 저마다의 맛도 살아 있고 어우러지는 맛도 있어 색다른 미각을 선사했다.

먹는 과정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씩씩해 보이는 상추는 아삭하게 씹히면서 번지는 맛과 향이 허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노지에서 햇빛과 바닷바람 만끽하며 자란 잎이라 상추다운 맛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남녘 섬에서는 상추가 밭에서 얼지 않고 겨울을 난다. 노지 월동한 상추 맛은 먹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설명하기 어렵다. 볼품없지만 흠씬 익어 보이던 묵은지도 잊지 못할 맛이었다. 싱싱한 생선이 많이 들어가서 천천히 발효되면서 내는 고소하고 미묘한 감칠맛이 나는 늘 그립다. 절정은 생미역이었다. 단맛이 도는 생미역은 수확 철을 앞두고 도톰하게 살이 올랐지만 연했다. 어떤 조리도 하지 않은 싱싱한 미역이 이렇게 맛있는 줄 처음 알았다. 상추에 미역 한 가닥, 큼직한 회 한 점 차례로 올리고 된장 쌈으로 먹으니 입 안에서 개성 강한 현악4중주가 울려 퍼지듯 야성의 맛이 꿈틀거렸다. 글을 쓰면서도 나는 그 섬에 다시 가고 싶다.
통영시 봉평동 통영고등학교 아래 있는 두 번째 ‘오미사꿀빵’. 창업주의 아들이 운영한다.

통영시 봉평동 통영고등학교 아래 있는 두 번째 ‘오미사꿀빵’. 창업주의 아들이 운영한다.

통영시내로 돌아와 택시를 타고 이동하다가 통영고등학교 아래 있는 ‘오미사 꿀빵(경남 통영시 도남로 110/전화 055-646-3230)’ 앞을 지나갔다. 내가 알은척하자 기사가 말을 낚아챘다. 6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그는 꿀빵과 꼬지김밥(충무김밥)에 대해 현지인의 자부심인 듯 열성으로 설명을 이어갔다. 김 셰프는 이게 통영의 특징 중 하나라고 했다. 남자들도 음식과 요리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자부심을 가지고 담론을 즐긴다는 것이다. 통영을 대표하는 두 음식에 얽힌 사연을 그의 얘기를 참고해 정리하면 이렇다.  
 
오미사 꿀빵의 원조는 구도심인 항남동(경남 통영시 충렬로 14-18/전화 055-645-3230)에 있다. 창업주 정원석(1935~2015)씨가 작고한 뒤 큰딸 숙남씨가 물려받아 명맥을 잇고 있다.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지금도 하루 500개만 만든다고 한다. 아들 홍엽(52)씨는 2011년 미륵도 도남로 쪽에 새 건물을 마련하고 규모를 키워 제2 ‘오미사’를 운영하고 있다. 
2008년 1월 19일 낮 12시 무렵의 오미사꿀빵 입구에는 빵이 다 팔렸다는 안내문이 걸려 있다. 하루 500개씩만 만들어 다 팔리면 일찍 문을 닫았다.

2008년 1월 19일 낮 12시 무렵의 오미사꿀빵 입구에는 빵이 다 팔렸다는 안내문이 걸려 있다. 하루 500개씩만 만들어 다 팔리면 일찍 문을 닫았다.

오미사꿀빵 창업주가 운영하던 점포의 9년 전 모습. 지금도 외관은 그대로다. 창업주는 작고하고 큰딸이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다. 아버지 유언에 따라 지금도 하루 500개만 만들어 판다고 한다.

오미사꿀빵 창업주가 운영하던 점포의 9년 전 모습. 지금도 외관은 그대로다. 창업주는 작고하고 큰딸이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다. 아버지 유언에 따라 지금도 하루 500개만 만들어 판다고 한다.

밀가루 배급이 흔하던 1960년대 통영에는 밀가루 반죽을 팥소 없이 튀겨 겉에 물엿 바르고 ‘꿀빵’이라는 이름으로 파는 분식집이 여럿 있었다. 창업주 정씨는 통영에서 유명하던 평화당 제과점에서 제빵 일을 했다. 신혼의 아내는 집 앞에서 과일 좌판을 벌였다. 1963년 제과점을 나온 정씨는 빵을 만들어 아내 좌판 옆에서 팔았다. 꿀빵과 ‘안빵’ 두 가지였다. 제과점 근무 경력이 있어 빵에 팥소를 넣었다. 그래서 오미사는 꿀빵의 원조는 아니지만 팥소가 들어간 꿀빵의 원조이긴 하다. 이때 꿀빵은 소를 만들 때 팥의 양을 불리기 위해 통영에 흔하던 빼때기(고구마를 얇게 썰어 말린 것)를 삶아 섞어서 썼다고 한다. 욕지도 고구마가 유명한데 통영 앞마다의 섬들에서는 식량 대용으로 밭에 고구마를 많이 재배했다. 캐면 바로 얇게 저며 말려뒀다가 겨울에 잡곡 넣고 죽으로 끓여 끼니를 해결하곤 했다. 설탕이 귀하던 시절이라 소를 달게 만들기 어려워 단맛을 내려고 겉에 물엿을 발랐다고 한다. 엿물이 끈적이니 이름이 꿀빵이 됐다. 지금도 통영 꿀빵 집에는 대부분 고구마를 소로 사용한 제품이 있다. 안빵은 요즘의 단팥빵 같이 구운 빵이었다. 
 
꿀빵은 통영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아주 좋았다. 장사가 잘 되자 옆에 있던 양장 수선을 겸한 세탁소 한 귀퉁이에 탁자 하나를 놓고 자리를 잡았다. 간판도 없었다. 이름이 없으니 여학생들은 꿀빵 먹으러 가자고 할 때 세탁소 이름을 대며 ‘오미사 가자’고 했다 한다. 나중에 세탁소는 없어지고 전체가 꿀빵 집이 되면서 이름도 이어 받았다. 꿀빵이 잘 팔려 서호시장 쪽에 집을 사서 ‘오미사 분식’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우짜’와 튀김우동을 함께 팔기도 했다. 그러다가 1998년부터는 부부가 적십자병원 옆에서 꿀빵만 만들어 팔았다.
 
2008년 1월 오미사 창업주가 꿀빵을 만드는 자리 옆에 앉아 30분쯤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꿀빵 빚는 걸 보니 하나에 들어가는 팥소가 아주 많았다. 내가 물었다. “팥소는 직접 만드시나요?” 대답이 무척 솔직했다. “아녜요. 저거 다 중국산이에요. 예전에는 만들어서 썼지만 이제는 힘들어서 못해요. 기운 없어서 빵도 하루 500개밖에 못 만드는 걸요.” 미륵도 쪽에 아들이 가게를 내기 전까지 이 집 꿀빵은 늘 오전 10시 조금 지나면 동났다. 나는 아침 무렵이라 두 상자를 포장해 나오는데 안주인이 꿀빵 맛있게 먹는 법을 알려줬다. 냉동실에 넣어두고 출출할 때 하나씩 꺼내서 따끈한 보리차와 먹으면 맛있다고. 
 
통영 대표 음식이 충무김밥인데, 택시기사는 원래 부르던 이름은 ‘꼬지김밥’이라고 몇 번을 강조했다. 충무김밥으로 굳어진 데는 사연이 있다. 무력으로 집권한 전두환 정부는 1981년 5월 28일~6월 1일 언론사들을 동원해 여의도광장에서 ‘국풍81’이라는 대규모 관제 전통문화 축제를 열었다. 일종의 문화정책이다. 지금 여의도공원 자리는 당시 100만명 인파가 모일 수 있는 아스팔트 광장이었다. 가장 관심을 끈 프로그램은 8도 특산음식 장터였다. 행사 기획자는 당시 대통령비서실 정무1비서관이던 허문도(1940~2016)씨였다. 그는 경남 고성 출신이지만 통영고등학교를 다녔다. 고등학생 때 가끔 먹던 꼬지김밥이 생각나 그 집 아주머니를 행사에 나오도록 했다. '뚱보할매김밥집'의 어두리(1995년 작고) 할머니였다. 행사에 참여하는 음식은 모두 지역 이름을 걸고 자리를 폈다. 동래파전, 금정산성막걸리, 충무김밥… 통영은 1955년 통영군 통영읍이 충무시로 승격되면서 충무시와 통영군으로 나뉘었다. 1995년 다시 통합해 통영시가 되면서 옛 이름을 되찾았다. 1981년에는 충무시였으므로 ‘충무김밥’ 이름을 붙였다. 
통영 ‘꼬지김밥’을 가지고 1981년 5월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전두환 정부의 관제 전통문화 축제 ‘국풍81’에 ‘충무김밥’ 이름으로 참여해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은 어두리 할머니의 ‘뚱보할매김밥집’ 간판. 2008년 1월 사진이다.

통영 ‘꼬지김밥’을 가지고1981년 5월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전두환 정부의 관제 전통문화 축제 ‘국풍81’에 ‘충무김밥’ 이름으로 참여해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은 어두리 할머니의 ‘뚱보할매김밥집’ 간판. 2008년 1월 사진이다.

이 음식은 서울 사람들에게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택시기사는 그때 일을 이렇게 얘기했다. “얼마나 인기가 있었던지 여기서 매일 밥을 지어서 8t 트럭으로 두 대씩 여의도로 올려 보냈다. 그때 통영서 제일 큰 트럭이 8t인데 그게 시 전체에 두 대밖에 없었다.”
 
통영에 가면 꿀빵도 그렇지만 충무김밥도 ‘원조’를 내세우는 집이 많다. 그러나 그 일로 분란은 없다. 비슷한 시기에 너도 나도 시작을 했고, 누가 등록을 해놓은 것도 없기 때문이다. 어두리 할머니는 1947년부터 통영항 여객선 터미널 한쪽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부산~여수를 오가는 여객선이 들어오면 승객들에게 김밥을 팔았다고 전한다. 돈벌이할 일이 귀하던 시절이니 그런 상인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 후손들이 지금은 어엿한 가게를 내고 성업하고 있고, 그런 집마다 원조라고 내세우는 것이다. 뚱보할매김밥집은 며느리가 대물림해 지금도 여전히 손님이 많다.
 
‘꼬지김밥’을 강조하는 택시기사의 말은 음식의 유래와 특징을 잘 드러내는 이름이 좋지 않으냐는 항변으로 들렸다. 충무김밥은 본래 진한 양념에 무친 꼴뚜기(또는 갑오징어·주꾸미)와 잘 익은 무김치를 대꼬챙이에 끼워 간 하지 않은 밥·김과 함께 팔았다. 무침과 무김치 맛의 비밀은 잘 삭은 봄 멸치 젓국이라고 한다.
은성식당의 자연산 4종 모둠회 한 상. 싱싱하고 맛있는 회에 집중하라는 듯 차림이 간결하다.

은성식당의 자연산 4종 모둠회 한 상. 싱싱하고 맛있는 회에 집중하라는 듯 차림이 간결하다.

은성식당의 멸치회무침. 주문을 하자 주인은 “얼마짜리 해 드릴까요”하고 물었다. 메뉴판에 써있는 대로 “2만원 아닙니까”하고 되묻자 “멸치 사와야 하니까 더 드시려면 많이 가져오게요”라며 시장 골목으로 달려갔다.

은성식당의 멸치회무침. 주문을 하자 주인은 “얼마짜리 해 드릴까요”하고 물었다. 메뉴판에 써있는 대로 “2만원 아닙니까”하고 되묻자 “멸치 사와야 하니까 더 드시려면 많이 가져오게요”라며 시장 골목으로 달려갔다.

통영 사람들이 즐기는 자연산 생선들로 회·탕·구이를 맛깔스럽게 해내는 은성식당. 중앙시장 서쪽 출입구 초입에 있다.

통영 사람들이 즐기는 자연산 생선들로 회·탕·구이를 맛깔스럽게 해내는 은성식당. 중앙시장 서쪽 출입구 초입에 있다.

고별식사는 ‘은성(회)식당(경남 통영시 중앙로 152-7/전화 055-645-1798)’에서 자연산 4종 모둠회(소 5만원)와 멸치회무침(2만원)으로 했다. 서울에서 여행 온 지인을 길에서 우연히 만나 일행이 6명으로 늘었다. 내력이 30년쯤 된 이 집은 미륵도 ES리조트 뒤 바닷가 마을 척포에서 시작해 중앙시장 건어물 골목에서 9년을 하다가 현재 자리로 옮긴 지 2년이 됐다고 한다. 인터넷에는 주소나 지도상의 위치가 예전 자리로 표시되고 있으니 찾아갈 사람은 주의해야 한다. 모둠회 접시에는 참돔·볼락·쥐치·우럭이 올라왔다. 눈앞에서 활어를 바로 회로 치면서 여주인은 “자연산 아니면 안 써요”라고 묻지도 않았는데 힘주어 말했다. 회 맛이 달았다. 연화도의 깍두기 같은 회하고는 또 다른 감칠맛이 있었다. 
통영 중앙동우체국 앞에 있는 유치환 흉상과 시비. 우체국은 문을 닫고 이전하려 했으나 유치환과 이영도의 사랑이 오간 한국문학사의 현장이므로 그 이야기와 함께 보전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 그대로 두기로 했다. 2009년 1월 사진이다.

통영 중앙동우체국 앞에 있는 유치환 흉상과 시비. 우체국은 문을 닫고 이전하려 했으나 유치환과 이영도의 사랑이 오간 한국문학사의 현장이므로 그 이야기와 함께 보전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 그대로 두기로 했다.2009년 1월 사진이다.

통영중앙시장 서편 출입구 쪽에 있는 은성식당에서 나가 큰길 하나를 건너면 중앙동우체국이 있다. 그 앞에는 유치환 시인 흉상과 시비가 있다. 이 우체국에서 시인은 여덟 살 아래 청상 이영도 시인에게 연서(戀書)를 쓰거나 부쳤다. 무려 5000통이다. 가장 알려진 글이 시 ‘행복’이다.
 
“사랑하는 것은/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오늘도 나는/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라고 시작해서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로 끝나는 시다.  
 
나에게는 통영도 그렇다. 먹고 놀고 보고 생각할 거리가 많아서 사랑하고 틈날 때마다 갈 수 있으니 통영은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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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와 기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