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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안경이 배달되었다. 20년간 안경을 쓰면서도 안경을 선물 받은 적은 없었는데 아는 동생이 안경 좀 바꾸라며 보내왔다. 그간 틈틈이 바꾸라며 재촉하더니, 답답한 나머지 선물로 보낸 것이다. 나도 체념한 나의 외형을 이토록 살뜰히 챙기다니 고마운 일이다.
 
 안경을 바꿔 쓰고 거울을 한번 보았다. 잘 모르겠다. 워낙 제 마음에 들지 않는 얼굴이라 얼마나 나아졌는지, 볼만은 한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그래도 나아졌으리라 희망하며 거울에 얼굴을 비춰본다. 왼쪽이나, 오른쪽이나 내 얼굴이다.
 
 그러다 거울에 비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뭉툭한 코, 살짝 들어간 이마는 좁기까지 하다. 눈과 귀는 작고 입은 말이 많은 탓인지 잔뜩 나와 있다. 아, 이게 내 얼굴이구나. 게다가 나이까지 들어서 팔자주름에 미간은 사납기도 하다. 에고야, 자기주장이 강한 이목구비를 보니 내 열등감이 여기서 시작되었구나 했다. 게다가 지금이야 그럭저럭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지만, 한때는 키도 작은데, 체중이 백 킬로를 넘기까지 했었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외모는 포기하고 무심해지는 것이 정신건강에도 이로웠다.
 
 하지만 열등감에게까지 무심해질 수는 없었는지, 손등의 상처에서 온 몸으로 균이 퍼져나가듯 나의 열등감은 매사에 물들었다. 회의적이거나 부정적이라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 나의 못난 얼굴과 늘어지는 몸이 점차 선명히 보이는 각성 같은 것이었다. 아무튼 간에 그 불편한 것은 퍼졌다. 내가 아는 중에도, 모르는 중에도 성실하고 꾸준히 퍼져나가더니 급기야 열등감을 느끼지 않아도 될 만한 곳까지 들어섰다. 이름, 나의 이름에까지.
 
 하, 무슨 이름까지 열등감을 느끼는가 싶겠지만 이 만큼 은근히 열등감 느끼기에 적합한 것도 없다. 트집 잡을 거리도 많고, 이름 중 제일 많이 듣게 되는 것이 내 것이라는 점도 그렇고(원래 자주 볼수록 흠이 잘 보이지 않는가.) 아무튼 그렇다. 그 중에도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아버지는 형제가 많아서 한손으로 꼽을 수가 없는데, 그 모두의 업이 아들로 이어지다보니, 내게는 자연히 사촌 형들이 많았다. 내 때에 와서는 다들 이름 가운데 "종"자 돌림을 써서 정할 수 있는 글자는 한 글자 정도뿐 이였다. 사촌형들이 먼저 철이니 범이니 석에 수까지 가졌다. 내게는 내 이름 "빈"자만 아니라면 전부 다 좋았다.
 
 "빈"이라는 글자가 싫었다. 얼마나 싫었는가하면 내게 닥치는 불행은 그 한 글자에 속한다고 믿던 때가 있을 만큼 말이다. 한번은 내 일상이 사람에게 너무 시달리고 휘둘리는 것이 괴로웠는데, 그것도 내 이름에게 죄를 물었다. "손 맞을 빈" 할머니가 외교관되라고 지어준 이름이라 했는데, 나는 그 탓에 내 인생이 불청객에게 휘둘린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언제부터인지 미남배우들이 예명에 "빈"자를 넣어 다니는 바람에 나는 내 이름을 밝힘과 동시에 비난받을 각오를 다져야한다. 무겁고 성가시고 불편한 그것이 내 이름이었다.
 
 근거도 뭣도 없는 나의 열등감이 거울에 어른거린다. 이름에도, 안경에도, 안경을 받치고 있는 코에도, 어쩌면 세상 모든 것에 어른거리는지도 모른다. 체중이 줄고 외형은 조금 변했다지만, 이제 미남배우들이 예명에 "빈"자를 더 이상 쓰지 않는다고 한들 나는 나의 열등감을 끊어내지 못한다.
 
 거울을 정주한 채로 안경을 썼다 벗기를 여러 번, 안경을 선물한 마음이 고마워서인지 조금 볼만한 얼굴이 된 것 같기도 하고, 그냥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모르겠다. 당장이라도 광화문 광장에 뛰쳐나가서 외치고 싶다. "나는 못생겼다. 못났다. 멍청하다. 세상에서 제일 한심하다. 그러나 내게 어느 누구도 손가락질하지마라." 아찔한 상상에서 깨어나니 눈앞에는 다시 거울이고 안경이다.
 
 이제 와서는 이름을 바꾸려니 귀찮다. 살을 더 빼려니 식도락을 거절할 엄두가 안 난다. 얼굴을 깎고 고친다는 것은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용기로도 불가능하다. 이런 저런 변명을 늘어놓고 보니 할 수 있는 것은 안경을 바꾸는 정도네.
 
 오늘도 나는 열등감을 선택했다. 죽니 사니해도 이 정도는 어떻게든 괜찮겠지. 선물 받은 안경을 쓴 채 거울을 구석구석 훑어보니 조금 전과는 달리 조금 봐줄 만한 얼굴이다. "봐라, 나는 못났다, 그래도 괜찮은 편이다." 퍽이나 열등감이고, 참으로도 사치스러운 감정이다.
 
 추신, 내가 어디가 어때서. 싶은 생각이 드는 것 보니 나도 세월을 허투루만 살지는 않았나 보다. 나를 꼭 쥐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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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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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