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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2035] 트릭인 거 다 알아요, 저희가 팩트광이거든요

이 현 사회 2부 기자

이 현 사회 2부 기자

벽에 걸린 타이머는 정직하게 시간을 흘려보낸다. 선반 위에도, 카펫 밑에도, 서랍 안에도 수수께끼투성이다. 어렵사리 찾아낸 벽난로 뒤 밀실엔 살해당한 여성의 시체가 토막 난 채 널브러져 있다. 이 사이코패스는 대체 몇 명을 죽였단 말인가. 범인이 숨겨 놓은 이 방의 열쇠는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네, 탈출 실패하셨습니다.” 제한시간이 다 되자 직원이 칼같이 문을 열고 들어와 선언한다. 경찰 출입기자 넷이서 한 시간을 허둥댔지만 살인마의 방을 탈출하지 못했다. 그래도 범인과 두뇌 싸움을 벌이는 동안 엔도르핀은 충분히 돌았다.
 
요즘 청년들 사이에 방 탈출 카페가 유행이다. 일행과 밀폐된 공간에 들어가 방 곳곳에 숨어 있는 퀴즈를 풀어 방을 탈출할 방법을 찾아내는 게임이다. 어릴 적 미국 드라마 ‘CSI 과학수사대’에서 봤던 것처럼 특수조명으로 범인이 서툴게 지운 혈흔을 찾아내는 등 장치도 제법 정교하다. 한 시간에 이용료가 1인당 2만원 정도로 비싼 편인데 방마다, 업체마다 콘셉트도 다르고 난이도도 다양해 개미지옥처럼 방 탈출 카페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가 많다. 어느 아이돌그룹 멤버는 각 지역의 방 탈출 카페를 도느라 한 달에 300만원을 썼다고 한다.
 
방 탈출 게임보다 이전에는 영국 드라마 ‘셜록’이 있었다. BBC는 고전이 된 추리소설을 세련된 21세기형으로 각색했다. 왓슨 박사는 블로그에 사건 스토리를 올리고 셜록은 온종일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산다. 하수구에 사는 노숙자들이 그의 정보원이요, 해괴망측하게 손상된 시체는 셜록의 문제집이다. 이제는 뇌섹남 열풍을 타고 속담처럼 돼 버린 “이제 지성이 섹시함을 결정짓는 새 기준(Brainy is new sexy)”이라는 표현도 드라마 셜록에서 나왔다. 지난 시즌은 팬들에게 ‘가족 드라마가 돼 버렸다’는 혹평을 받았지만 셜록에 대한 애정은 여전히 뜨겁다.
 
슈퍼맨·007본드의 시대는 가고 ‘뇌섹남’ 셜록, 혹은 CSI 그리섬 반장이 새로운 ‘히어로’가 됐다. 이들과 싸우는 악당은 언론 재벌, 사이코패스, 정부를 배신한 공무원이다. 범인은 대개 의심해 본 적 없던 곳에 평범한 얼굴로 숨어 있다. 21세기 히어로의 무기는 ‘팩트’다.
 
지난해 말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꼽은 20대를 대표하는 2017년 키워드 중 하나가 ‘팩트광(fact+열광하다)’이다. 대선기간,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슈를 이해하기 쉽게 요약하고 후보들의 발언을 모아 앞뒤를 맞춰 보는 글이 부지런히 올라왔다. 인터넷 덕에 정보는 흘러넘치지만 어떤 것을 믿어야 할지, 확신을 갖기는 더 어려워졌다. 팩트에 대한 갈증을 역이용한 가짜뉴스까지 판친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명쾌하게 진실을 찾아내는 천재 탐정에게 열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갈망하지만 현실에 없는 인물이 히어로가 되는 법이다.
 
이 현 사회2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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