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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기자
김종빈 사진 김종빈
 "이래도 할 수 있겠어요?" 분명 나를 응시하며 물었으니 내게 묻는 것이었을 텐데, 어쩐지 내게 묻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그는 내게 묻기보다 자신에게 묻는 듯했다.
 
 내 못된 버릇 중 하나가 흥미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평소보다 배는 신속해지는 것인데, 이것이 문제가 되는 까닭은 생각의 속도는 평소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탄자니아라는 미지의 나라에 흥미는 가득하나 딱 거기까지라서 마음이나 몸이나 갈팡질팡, 이리저리 튕겨 다니던 차였다.
 
 탄자니아에서 사업을 한다는 그를 만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그가 만나준 덕분이지만.) 그는 탄자니아에서 여행사와 식당을 하고 있는데, 아내의 둘째아이의 출산을 위해 잠시 한국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조만간 탄자니아에 여행 갈 생각으로 몹시 들떠있었으니 충분히 만날만 한 인연이었다.
 
 그를 만나고 싶었다. 나는 큰마음 먹고, 조금 과장하면 각오까지 삼켜가며 가는 곳이 탄자니아인데, 그는 버젓이 그곳에서 살고 있다하니 대체 어떤 사람인가 궁금했다. 여행가라면 대략 그 모습을 상상이라도 해봤을 것이다. 낭만적이고 즉흥적인 모습, 아니면 차분하고 시적인, 아니면 책이나 영화에서 보아온 여행가의 모습이면 어떻게든 되니까. 그러나 이민에 시업가라니, 누군가에게는 탐험지가 되는 곳에서 산다니,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를 찾았고, 다행스럽게도 그는 사람을 꽤나 좋아하는지 흔쾌히 시간을 내주었다.
 
 나는 종종 이민이나 가야겠다는 소리를 했었다. 내가 살고 있는 나라가 쏙 마음에 들지 않으니, 어디 좀 괜찮은 곳 없나하는 마음이었다. 실제로 캐나다 같은 곳으로 이민을 간단하게나마 알아보기도 했다. 그러니까 내게 이민은 도망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아프리카 이민이라니, 이민 그 이상의 이민이었다. 생각해봐라. 세랭게티, 킬리만자로, 라이온 킹의 세계에서 먹고 자며 살다니 말만 들어도 부러워죽을 지경이었다.
 
 이런저런 생각(대부분은 라이온 킹 생각)을 하는 차에 그가 카페로 들어섰다. 이런 말은 좀 우습지만 거뭇하게 탄 피부, 시원한 옷차림새, 가게를 느긋하게 둘러보는 모습이 단번에 그임을 알아보게 했다. 그가 자리에 앉자마자 나는 어떤 음료를 마실지 그에게 물었다. 이때도 나는 은근히 아프리카다운 그의 대답("아프리카에서는 이런 커피를 다들 마시죠." 같은 살짝 뻐기는 모습)을 기다렸는데 그는 지난밤에 과음으로 오렌지에이드면 충분하다고 했다. 숙취에 시달리는 직장인의 모습이었다. 그를 기다리는 동안 줄 곳 주위를 어슬렁거리던 라이온 킹이 내게 작별을 고하고 카페 문 밖으로 나갔다.
 
 나는 여행의 기분으로 그에게 이민을 물어보는 것이 실례라는 생각에 속을 헤집어가며 말을 다시 골랐다. 탄자니아가 일상이 되어버린 그에게 하려했던 첫 질문은 본래 기린과 코끼리에 대한 것이었으나 그의 이야기를 오 분 정도 듣고 나니 그 생각도 싹 가셨다. 그 나라 사람들의 생활, 돈 씀씀이, 외국인을 대하는 태도, 정치상황과 조세제도, 한인사회, 그 외의 좋은 것들, 좋지 않은 것들을 듣다보니 두 시간이 순식간에 지났다. 게다가 이민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그가 하나하나 꼽아가며 해준 탄자니아 요약정리를 다 듣고 나니 마음이 묵직해졌다.
 
 송구하다. 여행의 기분으로 그의 일상에 접근한 것이야 그렇다 쳐도, 이민을 도망으로 삼으려 했다는 것이 말이다. 내게 내보인 "할 수 있겠어요?" 라는 그의 물음은 도발이 아니라 염려였고 자신의 어려움이었다.
 
 사람은 한자리에 오래 서 있다 보면 그 바닥을 보기 마련이다.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 유심히, 세세하게 볼 수 있다. 한 곳에 머문다는 것은 그런 거다. 처음이야 풀 한포기, 야생화 한 송이도 새롭다지만, 그 그림이 익숙하다 못해 지루해지면 그때부터는 뻔한 것들이 기운을 빼앗는다. 어느 날 매번 비슷한 단어만으로 말을 채우고, 비슷한 감상만으로 하루를 사는 자신이 궁핍해 보여 견딜 수 없다. 일상 위에 서 있다가 잠시 자리를 옮기는 여행으로 자신을 밀쳐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나는 주제넘지만 그가 걱정되었다. 나는 여행의 기분으로 아프리카를 보았지만, 그에게는 아프리카가 일상이 되었다면 그 역시도 나처럼 무기력해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해서, 내가 제 멋대로 감상을 그에게 쏟으려는 순간, 그가 말한다. "사실, 좀 더 좋은 이야기만 해드려야 할 텐데,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아서 그래요." 그는 차근히 자신이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한 이유로 말을 이었다. 이웃이 좀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렇게나 쉽지 않지만, 쉽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먼 이국의 거리로 도전하는 이웃들이 많아지면 좋겠다고 말이다. 그래서 여행의 기분을 망치려는 것은 아니지만, 혹시라도 이민을 꿈꾼다면 그 곳의 일상을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쳇, 그러면 똑같은 바닥만 보는 것이 지루하다며 도망칠 궁리만 하였던 나는 뭐가 되나요. 당신이 그 똑같은 바닥을 보면서 무엇을 심을까, 무엇이 또 피어날까 고심하고 기대하면, 나는 대체 뭐가 됩니까.' 내가 초라해지지 않기 위해서 그에게 뭐라도 따져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는 내 열등감을 알 리 없었기에, 자신이 꿈꾸는 탄자니아의 거리를 내게 그려냈다. 적도의 태양이 기우는 시간. 김 사장은 박 사장을 찾고, 박 사장은 이사장을 찾으며 안부를 묻는 동네, 뭐라도 좀 팔았다하면 서로 축하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그들의 거리가 내게도 선명히 보였다. 하니, 내 열등감은 따질 일도 못 되었다.
 
 그가 그린 거리에 감화 받았던 걸까, 나도 덩달아 말을 보탰다.(방금 전까지만 해도 따지겠다며 난리를 치더니만,) "제가 작가가 되거든, 그 거리에서 거하게 한 턱 내겠습니다." 그만한 자신이 있어서 한 말은 아니었다. 다만 그의 말을 다 듣고 나니 “일상”이니 “바닥”이니 하는 말들이 변명으로 쓰기에 적당하지 않은 것 같아서, 이런 말이 선뜻 나왔다.
 
 소망한다. 머지않은 날에 그가 그리는 거리를 걸을 수 있기를, 그리고 그 거리 한 귀퉁이에 내가 머물 자리가 있기를 소망한다.
 
 추신, 형님, 치열한 현실이라서 더 꿈만 같은 이야기 같습니다. 하.쿠.나.마.타.타. 제이.

추신의 추신, 대선결과를 보고나니 큰 기대를 하는 건 아니지만, 이민생각은 조금만 더 미뤄둘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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