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이하경 칼럼] 전쟁 막고 경제 살려야 진짜 대통령이다

이하경 주필

이하경 주필

이틀 뒤면 대한민국 19대 대통령이 정권 인수 절차도 없이 전임자가 임명한 장관과 청와대 참모에 둘러싸여 취임사를 읽게 된다. 머릿속은 후보 시절 표를 얻기 위해 준비한 개혁 과제와 정책 추진 일정으로 꽉 차 있다. 안타깝게도 여소야대의 상황이 발목을 잡는다. 어떻게 할 것인가. 급할수록 돌아가야 한다. 2000여 년 전 내전을 수습하고 ‘팍스 로마나(Pax Romana)’의 황금 시대를 연 고대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좌우명 “천천히 서둘러라(Festina lente)”를 음미하기 바란다.
 
탄핵으로 서둘러 치러진 대선에서 후보들은 지지층을 결집시키기 위해 책임질 수 없는 달콤한 공약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한 공동체의 조타수가 된 대통령은 후보와는 차원이 다른 존재다. 전체를 위해 이타성(利他性)을 발휘해야 진짜 대통령으로 태어나게 된다. 그래서 스스로를 비우는 숙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나를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좌절과 열망을 먼저 생각하면서 새로운 틀을 짜야 한다.
 
대통령은 성직자와는 달리 거친 현실에 내던져진 정치인이다. 철저하게 결과로 평가받는다. 막스 베버는 저서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가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강제력이어서 모든 폭력성에 잠복해 있는 악마적 힘들과 관계를 맺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대의를 실현하려는 신념윤리뿐만 아니라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는 책임윤리도 함께 갖출 것을 주문했다. 지지자들을 열광시키는 원칙 못지않게 반대자들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타협이 중요한 이유다.
 
새 대통령에게 주어진 절체절명의 과제는 안보 위기를 평화적으로 관리해 전쟁을 막는 일이다. 그래야 지속적인 경제 번영이 가능하다. 먼저 내부적 타협을 이뤄내야 한다. 협치든, 통합이든 수단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 우리끼리 눈만 뜨면 싸우면서 핵을 가진 김정은과 거칠고 강한 트럼프·시진핑·아베·푸틴을 상대할 방법은 없다.
 
사활이 걸린 남북 문제는 여야와 보수·진보의 시민사회가 함께 풀어 가야 한다. 수백만이 죽고 죽이는 전쟁을 치른 후유증으로 남·남 간 이념 갈등이 심각한 상황을 고려한다면 진보 집권 시 보수적 인물을 앞세우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1970년대 공산 중국의 문을 연 것도 반공주의자였던 미국 대통령 닉슨이었다. 독일도 통일 문제를 놓고 진보·보수가 오래 갈등했지만 진보인 사민당 브란트가 꺼낸 동방정책을 보수인 기민당의 콜이 승계하면서 통일을 이룰 수 있었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성장과 청년 일자리, 재벌 개혁과 동반 성장, 양극화 해소는 초당적 과제다.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은 취임 후 100일 동안 의회의 협조를 얻어 개혁 법안을 통과시켜 대공황의 위기를 넘었다. 법이 지배하는 정의로운 사회도 대통령 한 사람의 신념만으로는 이뤄지지 않는다.
 
미국 언론은 “당선되면 가장 먼저 김정은을 만나겠다”고 했던 문재인 후보가 “트럼프를 먼저 만나겠다”고 한 인터뷰 기사를 연일 보도하고 있다. 보수 정권 9년 동안 막혀 버린 남북 관계의 복원이 절실하지만 굳건한 한·미 동맹을 출발점으로 삼고 최소한 북한의 핵 동결을 약속받아야 착수하겠다는 현실적인 접근법이다. 하지만 문재인은 원칙과 정의를 중시하고, 신념윤리가 강한 인물이다. 시민운동가를 꿈꿨던 그가 지지자들의 목소리에 파묻혀 반대자를 외면한다면 역풍에 직면할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라크 파병을 결정한 뒤 “개인 노무현이라면 반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으로서는 다른 결정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결국 파병은 했지만 가장 축소된 형태로, 전원 비전투 요원으로, 재건과 복원을 위한 파병을 했다. 그래서 단 한 사람의 희생자도 없었고 한국은 전후 복구사업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청와대 내부의 치열한 토론이 있었기에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결정이 나왔던 것이다. 이건 노무현의 청와대 참모였던 문재인이 자랑스럽게 공개한 에피소드다.
 
새 대통령은 가장 민감한 남북 문제를 다룰 때 노무현보다 더 적극적으로 토론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북한을 같은 민족이라는 따뜻한 시선으로 대하는 통일부, 외국으로 보는 외교부,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는 주적으로 보는 국방부, 간첩 침투를 막기 위해 감시 대상으로 보는 국정원의 시각이 고루 반영돼야 국익을 극대화하는 최선의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세상은 불완전한 인간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함께 사는 불완전한 공동체다. 한 세력이 정의를 독점하면 반드시 문제가 발생한다. 남과 북도 모자라 남과 남이 갈라진 한반도에선 파국이 온다. 그래서 원칙과 타협을 모두 소중하게 생각하는,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를 조화시킬 수 있는 사려 깊은 대통령이 요구된다. 새 대통령은 아무리 급해도 반대자의 의견을 경청하고 국익을 위해 과감하게 소신을 접을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전쟁을 막고 경제를 살리는 진짜 대통령이 될 수 있다.
 
이하경 주필
AD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