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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세상을 바꾼 천재들, 어릴 적 ‘월드플레이’ 즐겼다

『생각의 탄생』 저자 미셸 루트번스타인 
지난해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 간 대국 이후 한국에선 4차 산업혁명이 화두가 됐다. 사전적 정의는 인공지능(AI)·로봇 등 정보통신기술(ICT)의 융합으로 이뤄지는 차세대 산업혁명이다. 이를 대하는 필부들의 심정은 ‘4차 산업혁명이 대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살다가는 일자리를 뺏긴다’는 공포 아닐까. 이번 생은 글렀다 쳐도 내 자녀들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기에 부모들은 자식을 어떻게 키우고 가르쳐야 할지 난감해 한다. 그저 ‘코딩’이나 ‘창의력’이라는 키워드만 맴돌 뿐이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최근 7세 이하 영유아 자녀가 있는 남녀 직장인 66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5.5%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 아닌 학습지나 학원 등의 사교육을 시키고 있다고 답했다. 사교육 과목 중에는 국어(47.7%)가 가장 많았고 수학(35.9%)에 이어 사고력·창의력(33.6%)이 순위에 올랐다. 사교육에 아웃소싱해서라도 창의력을 키워줘야 장차 자녀들이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는 절박함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래서 돈 들이지 않고 창의력을 키우는 아주 오랜 방법을 소개한다.
 
미셸 루트번스타인은 역사학자, 하이쿠(짧은 시) 시인이다. 삶의 전 분야에 걸친 창조적 상상의 과정과 실행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미셸 루트번스타인은 역사학자, 하이쿠(짧은 시) 시인이다. 삶의 전 분야에 걸친 창조적 상상의 과정과 실행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생각의 탄생』의 공동저자 미셸 루트번스타인은 세상을 바꾼 천재들을 연구하다 재미있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어린 시절 가상 세계를 창조한 경험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일단 가상의 나라를 하나 세운다고 치자. 국기·기후·동물·신화·언어·음악·법률·언론사 등 창조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교육계에서 그토록 구현하고자 애쓰는 창의융합교육과 자기주도학습이 이 같은 상상 놀이 ‘월드플레이(world- play)’를 통해 이뤄질 수 있다고 루트번스타인은 주장한다. 월드플레이가 창의력의 원천이며, 미래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더더욱 필요하다고 말하는 그를 e메일로 만났다.
 
루트번스타인 박사가 지난해 낸 책 『내 아이를 키우는 상상력의 힘』에 따르면 그가 월드플레이에 주목하게 된 건 딸 때문이다. 그의 딸은 아홉 살부터 ‘카랜드’라는 가상 세계 만들기에 빠져 카랜드의 언어와 생태계 등을 만들었다. 학교에서 구구단을 배울 땐 가상 세계에서도 수학 체계를 만들며 노는 등 현실과 상상을 조화시켜 나갔다고 한다. 지금은 커뮤니케이션과 언어학을 전공한 뒤 동물학과 환경 보전 분야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여러 위인들도 월드플레이를 하고 놀았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여동생과 ‘다람쥐 왕’이 나오는 가상 세계를 만들어 시와 희곡을 쓰고 음악을 작곡했다. 『나니아 연대기』를 집필한 C S 루이스,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 뇌신경학자이자 세계적 작가인 올리버 색스, 『반지의 제왕』을 쓴 J R R 톨킨 등 사례는 무수하다. 다음은 루트번스타인 박사와의 문답.
 
자녀가 월드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부모는 놀이를 위한 장소와 시간, 재료를 제공해줘야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이들이 원하는 놀이를 할 수 있도록 프라이버시를 지켜줘야 한다는 거예요. 아이의 놀이를 평가하거나 참견하지 말고, 가상 놀이에서 무엇을 탐색하든 지지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간단한 질문으로 유도하는 방법은 있어요. 아이가 인형을 가지고 논다면, ‘우리가 다 잠들었을 때 인형은 어디로 갈까?’ 하고 묻는 식이죠. 하지만 절대 강요해선 안 됩니다. 월드플레이는 정원에서 피어나는 야생화처럼 자연스러워야 해요.”
 
『털 없는 원숭이』의 저자 데즈먼드 모리스가 19살에 그린 가상 세계 ‘바이오모프’. [사진 문예출판사]

『털 없는 원숭이』의 저자 데즈먼드 모리스가 19살에 그린 가상 세계 ‘바이오모프’.[사진 문예출판사]

루트번스타인은 ‘저 블록은 자동차다’라고 생각하는 유아기의 ‘상상치환’처럼 월드플레이는 인간 발달의 자연스러운 부분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미국 어린이 중 약 12%가 월드플레이를 눈에 띄게 하고 있지만, 드러나지 않는 아이들까지 고려한다면 대다수에게 해당된다고 추정한다. 다만 그것이 살아남는지 사라지는지는 사회가 아이들이 상상력을 충분히 펼칠 수 있도록 얼마나 지원하는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딸이 10년간 월드플레이를 했다는데, 청소년기에도 상상을 이어가게 하려면 부모가 어떻게 지원해야 하나.
“모든 것에 순응하라고 강요하는 사회적·교육적 압력으로부터 자녀를 보호해야 합니다. 특히 권위적인 교사 등의 관점에서는 ‘어린애 같은 행동을 포기하지 않는’ 아이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거라 볼 수도 있거든요. 바쁜 하루 일과 중 혼자 상상하며 놀 수 있는 시간을 허용해야 합니다. 물론 10대에도 월드플레이를 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당사자의 의사에 달려 있죠.”
 
나아가 성인에게도 월드플레이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영국의 여류 작가 샬럿 브론테는 ‘앙그리아’라는 가상 세계를 만들며 놀았다. 그는 스물네 살 때 ‘앙그리아, 안녕’이라는 글을 써서 어린 시절의 놀이와 결별을 선언하고, 그 뒤로는 가상 세계 대신 영국의 풍경과 인물을 대입한 소설을 썼다. 바로 서른 살에 완성한 명작 『제인 에어』다.
 
소설 쓰기와 월드플레이의 차이점은 뭘까.
“소설은 수많은 성인들이 즐겨 하는 월드플레이의 한 형식입니다. 글쓰기 외에도 지도나 그림 그리기, 작곡, 노래 부르기, 스포츠 팀의 기록 통계 만들기 등으로 표현될 수 있어요. 이 모든 형식에는 ‘서사(narrative) 감각’과 ‘흉내 내기(pretense) 감각’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성인의 놀이가 더 집중적이고 정교하다는 것 말고는 아이들의 놀이와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해요.”
 
월드플레이는 『생각의 탄생』에 나왔던 창의적인 생각 도구 중에선 무엇의 발달과 연결될까.
“13가지 도구가 전부 사용됩니다. 다만 놀이의 성격에 따라 집중적으로 사용되는 도구는 달라지지만요.”
J R R 톨킨의 작가 데뷔 당시 그림. 『반지의 제왕』 호빗 마을의 토대가 된다. [사진 문예출판사]

J R R 톨킨의작가 데뷔 당시 그림.『반지의 제왕』호빗 마을의 토대가 된다. [사진 문예출판사]

 
그가 남편 로버트 루트번스타인과 함께 집필한 『생각의 탄생』에서는 13가지 생각 도구를 소개한다. 관찰·형상화·추상화·패턴인식·패턴형성·유추·감정이입·놀이·변형·통합과 몸으로 생각하기, 차원적 사고, 모형 만들기 등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아인슈타인, 파블로 피카소, 제인 구달 등 인류 역사상 위대한 르네상스형 인간으로 꼽히는 이들의 생각법을 추적한 이 책은 ‘21세기 고전’이라고도 불린다. 한국에서는 2007년 출간 이후 1년 만에 10만 부가 팔릴 정도로 화제가 됐다.
 
부모가 유도해도 월드플레이를 하지 않는다면, 어떤 놀이를 권하는 게 좋을까.
“자신만의 디자인과 의도에 맞게 아이디어와 사물을 구성하는 창의적 놀이라면 무엇이든이요. 이야기를 짓거나 그림을 그리고 인형극을 만드는 등의 예술적 놀이도 좋고요. 스크래치(어린이를 위해 개발된 교육용 코딩 프로그램)로 연을 날려보거나, 종이 비행기를 만드는 등 기술적이고 과학적인 놀이도 좋아요.”
 
한국 부모들은 공부 시간을 확보하는 데 유독 민감한데.
“질문부터 할게요. 한국의 부모는 자녀의 창의적 잠재력을 키우는 데 얼마나 관심이 있나요?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은 제2의 피카소나 아인슈타인, 에디슨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얼마나 관심이 있죠? 많다고요? 그렇다면 반드시 놀려야죠. 놀지 않고 일만 하면 바보가 된다는 속담도 있잖아요. 노벨상 수상자 같은 창의적인 사람들을 보면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는 치명적인 실수는 저지르지 않습니다. 어른이건 아이건 매일 얼마간 시간을 내 창의적인 놀이를 하면 기분도 전환되고 긴장도 풀려요. 그리고 학업이나 일에서 새로운 문제에 맞닥뜨려 창의적 해결책을 찾을 때, 이 소소한 놀이가 큰 도움이 됩니다. 개인은 물론 사회 전반에도요.”
[S BOX] 루트번스타인 박사의 딸이 만든 가상세계 ‘카랜드’
루트번스타인 박사는 『내 아이를 키우는 상상력의 힘』에서 딸이 가상 세계 ‘카랜드’를 건설하는 과정을 자세히 소개했다. 이를 통해 월드플레이의 개념과 놀이법을 얼추 파악할 수 있다.
가상 세계 ‘카랜드’의 생태계. 지구와 마찬가지로 식물과 초식동물, 육식동물 등으로 이어지는 먹이사슬로 이어져 있다. [사진 문예출판사]

가상 세계 ‘카랜드’의 생태계. 지구와 마찬가지로 식물과 초식동물, 육식동물 등으로 이어지는 먹이사슬로 이어져 있다. [사진 문예출판사]

 
① 언어를 만들다=어렵게 느낀 철자들을 모아 자기만의 언어와 발음으로 바꿔서 그림문자로 만들었다. 공부하면서 받은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었지만, 상상력을 자극하고 재미를 주기에 충분했다.
 
② 천지창조 신화를 만들다=‘카랜드어’를 만든 다음엔 천지창조 신화를 지었다. 자유롭게 몸을 바꿀 수 있는 절대적 존재가 새로 변신해 진흙 두 덩이를 물고 오는데, 그것이 떨어져 카랜드의 땅이 되고, 영양으로 변신해 풀씨를 떨어뜨려 숲을 이루고, 물고기로 변신해 물방울을 떨어뜨려 강을 만든다는 식이다.
 
③ 생태계=카랜드의 생태계 역시 먹이사슬로 이뤄져 있는데, 가장 아래의 식물부터 최상위층의 포식자까지 수십 종에 달한다. 학년이 올라가고 지식이 쌓일수록 더 구체적이며 다채롭게 보강됐다.
 
④ 구체화=12세부터 카랜드 사람들의 고유한 옷과 주택, 음식과 조리도구, 식기 등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글로 묘사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구현됨직한 논리적이고 정교한 세상을 창조한 것이다.
 
⑤ 카랜드 지도=19세 때는 이 모든 자료를 종합해 카랜드의 서식 지도를 그렸다. 지도엔 카랜드 영역마다 서식하고 있는 동물들의 위치가 그려져 있다. 이지은 프리랜서 기자
 
이경희 기자 dung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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