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김진국이 만난 사람] 미세먼지 심각하다면서 석탄발전소 왜 자꾸 짓나

최열 환경재단 대표 
입구에서 낯익은 캐릭터 ‘뿌까’가 맞아준다. ‘환경해뿌까!’라는 구호 아래 ‘뿌까’와 친구 ‘가루’, 또 약간 나이가 든 캐릭터 하나가 서 있다. 최열(68) 환경재단 대표다. 캐릭터 회사인 부즈가 기부해 환경재단의 홍보캐릭터가 됐다.
 
뿌까와 같이 놀 정도로 최 대표는 몸도 마음도 젊어 보인다. 1982년 한국공해문제연구소를 만든 이후 계속 환경운동을 해 왔다. 한국 NGO 1세대이면서 유일하게 현장에서 뛰고 있다. 그는 현장을 강조한다.
 
최열 대표는 25일 “제4차 산업혁명기에는 지식 주기가 짧아 공부 안 하고 30년 버틸 수 있는 직업이 없다”면서 재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상조 기자]

최열 대표는 25일 “제4차 산업혁명기에는 지식 주기가 짧아 공부 안 하고 30년 버틸 수 있는 직업이 없다”면서 재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상조 기자]

“우리는 공기 나쁜 데도 진짜 많이 다녔잖아요. 사람들은 지금만 아는데, 누군가 노력을 했으니까 바뀐 것이지.”
 
사실 한국의 환경이 개선되는 데는 최 대표의 공로가 크다. 일회용 젓가락, 장바구니, 쓰레기 종량제 등이 모두 그가 이루어낸 성과다. 1993년 그가 주도해 만든 환경운동연합은 회원 수만 8만 명이 넘는 아시아 최대의 시민단체로 성장했다. 그는 사무총장 10년, 대표 10년을 하고 고문으로 물러났다. 지금은 환경재단 대표를 맡고 있다.
 
최 대표는 지난 5일 한국과 중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미세먼지 때문이다. 그 뒤 모든 대선후보가 당선되면 한·중 정상회담에서 미세먼지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슈화에 성공한 셈이다. 그의 운동 방식이다.
 
“환경운동을 40년 했는데, 그냥 세미나 한다고 이슈화되는 게 없어요. 일단 관심을 갖게 해야 해요. 이는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늘에는 국경이 없어요. 중국에서 분명히 날아오는데 우리 정부는 뭐 많을 때는 86%라고 하고, 보통은 50%라고 하는데 그것도 확실한 과학적인 근거도 없이, 불리하면 중국에서 왔다고 덮어씌우는 거예요.”
 
법적인 근거가 부족하네요.
“법적인 근거가 없어도 소송을 해야 합니다. 문제가 심각하다고 느끼면 한국과 중국이 미세먼지 발생원을 정확하게 조사해야죠. 중국은 우리보다 더 심각해요. 8세 어린아이가 폐암으로 죽었어요. 미세먼지 때문입니다. 굉장히 시끄러웠습니다. 중국의 유명한 앵커 차이징(柴静)은 자비(自費)로 미세먼지의 심각성을 알리는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렸어요.”
최열 대표는 25일 “제4차 산업혁명기에는 지식 주기가 짧아 공부 안 하고 30년 버틸 수 있는 직업이 없다”면서 재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상조 기자]

최열 대표는 25일 “제4차 산업혁명기에는 지식 주기가 짧아 공부 안 하고 30년 버틸 수 있는 직업이 없다”면서 재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상조 기자]

 
그는 스웨덴 과학자들이 산성비 문제를 제기해 유럽·북미 월경성 장거리 이동 대기오염에 대한 협약(CLRTAP)이 체결된 것처럼 이 소송을 계기로 한·중·일이 공동 조사하고 대응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2000년부터 황사를 막기 위해 중국에 가서 나무를 심었더니 인민일보가 크게 보도했어요. 그게 중국 사람에게 영향을 줬죠. ‘우리가 노력을 하고 중국에 요구하자’ 이거예요. 황사·미세먼지가 심각하다면서 석탄 발전소를 자꾸 건설하면 되나요.”
 
원전 반대 운동도 하고 있죠.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핵은 공해가 없고, 가격이 싸고, 안전하다. 이렇게 배워왔단 말이에요. 그런데 가격이 싼 것도 아니고, 사고 나면 경제적인 것도 아니고, 미래세대에 부담을 안겨주는 것입니다. 과학이 아니라 윤리의 문제입니다.”
 
노무현 정부 때도 대체에너지 개발을 모색하다 원자력 발전이 최선이라고 돌아섰는데.
“김대중 정부 때 미국에 있던 분을 한전 사장으로 영입했어요. 그분이 ‘원자력도, 석탄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고서를 올렸는데 위로 올라가면서 원전이 좋다는 내용으로 바뀌는 걸 보고 ‘야, 한국 관료가 이렇게 저질이구나’ 했답니다. 대통령이 결정하려 해도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야 하는데 원자력 연구자들의 영향력이 가장 커요. 정치는 결국 로비입니다. 느슨한 다수가 특별한 입장이 없을 경우 로비하는 쪽으로 가게 돼 있습니다. 그 느슨한 다수가 결집된 다수가 될 때 힘이 생기는데, 가장 대표적인 게 이번 촛불집회입니다.”
 
태양광에 투자한 기업들이 경제성이 없어 손실을 보지 않았나요.
“우리나라 산업의 규모나 기술 수준에 따라 에너지를 전환해야 한다는 거예요. 에너지는 적게 쓰면서 부가가치가 높은 쪽으로 가야 된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원전과 석탄의 가격이 비슷해요. 태양광 발전은 해마다 가격이 15%씩 떨어지고, 리튬이온전지는 14%씩 떨어집니다. 그렇지만 석탄·석유·가스는 계속 올라요.”
 
최열 대표는 25일 “제4차 산업혁명기에는 지식 주기가 짧아 공부 안 하고 30년 버틸 수 있는 직업이 없다”면서 재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상조 기자]

최열 대표는 25일 “제4차 산업혁명기에는 지식 주기가 짧아 공부 안 하고 30년 버틸 수 있는 직업이 없다”면서 재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상조 기자]

최 대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많이 도와줬다고 한다. 승용차 요일제도 그의 제안이다. 그렇지만 4대 강 사업을 이야기하자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전 세계 역사상 흐르는 물을 막아 더 맑아진 것은 없다”면서 반대했다고 한다.
 
“제 말이 맞았어요. 흐르는 물을 막아서 내륙 지역의 오염물질…녹조가 나타나는 것 아닙니까. 결국은 ‘4대 강 살리기’가 아니라 ‘4대 강 죽이기’예요.”
 
해결책이 뭐라고 생각합니까.
“일단 물을 흐르게 해야 합니다. 시화호도 결국 물길을 터서 좋아진 거예요. 완전히 다 깨부순다는 게 아니라 수문을 열면 일정 부분 나가는데, 물은 움직여야 합니다.”
 
최 대표는 2008년 가을 업무상 횡령·알선 혐의로 수사를 받기 시작해 9년간의 재판 끝에 대법원에서 1년형을 확정 받았다. 경험이 없던 NGO 초기 주머니 돈도 써야 했던 시절 회계상 실수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4대강 사업을 반대한 데 대한 이명박 정부의 보복이라는 것이다.
 
5월 18일부터 24일까지 이화여대 ECC 삼성홀에서 제14회 서울환경영화제를 연다.
 
“제가 환경운동을 하면서…초창기는 감시하고 고발하는 운동을 했어요. 그렇지만 저는 머리 깎는 것, 단식하고, 띠 두르는 것, 그거 제일 싫어해요. 그거는 효과가 없어요. 왜냐하면 환경운동은 국민 전체가 동참해야 하는데 머리 깎으면 반은 싫어합니다. 띠 두르면 그중의 반이 또 떨어져 나가고, 굶으면 또 떨어져 나가고… 단식해도 관심 하나도 없습니다. 제가 얻은 결론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문화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거죠. 영화 한 편이 세미나 열 번 하는 것보다 더 감동을 줍니다.”
 
그는 해마다 일본의 피스보트와 ‘피스앤그린보트’ 행사를 하고 있다. 그의 마지막 꿈은 독자적인 크루즈선이다. 2022년까지 만들어 학교 교육과 공무원·기업체 연수를 하고 다보스포럼 같이 세계 환경포럼도 열겠다는 구상이다. 그가 처음 공해문제연구소를 만들었을 때 독일 환경단체로부터 3년간 지원을 받았다. 그 보답으로 아시아 국가들을 도와주고 있다.
 
그는 정치권의 유혹을 받은 것이 7, 8번쯤 된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청와대에 불러 한 시간 반을 설득했지만 “우리 정치 풍토는 귤을 심으면 탱자가 달립니다. 저는 탱자가 되기 싫습니다”하고 거절했다.
 
“환경운동을 가장 먼저 시작한 사람으로서 한길로 가야죠. 후배들에게 영향을 주니까요. 또 제가 어린이 책을 10여 권 썼거든요. 국어책에도 제가 나와요. 그러니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85년부터 2010년까지 25년간 강연을 5000번 했다. 2007, 2008년에는 방송도 매일 했다. 그러다 “공부 안 하고 계속 방송에서 떠들기만 하면 바보 된다”는 아버지의 충고에 모두 그만뒀다고 한다. NGO 교육을 하고, 석·박사 과정을 지원하는 것도 전문성을 확보해주기 위해서다.
 
다음 정부에 부탁하고 싶은 게 있나요.
“너무 5년 단위로 사업을 짜지 마라. 5년 단위로 짜면 안 되는 게 너무 많다는 겁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없어지지만 더 많은 일자리가 새로 생겨요. 그래서 저는 대학을 완전히 개방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대학 졸업하면 30년 정도 우려먹었어요. 지금은 지식 주기가 짧아 공부 안 하고 30년 버틸 수 있는 직업이 없습니다. 재교육의 장으로 대학을 완전히 개방해야 해요. 교육방송도 10개 만드는 겁니다.”
 
[S BOX] 42년 전 수감 중 공해 관련 책 250권 읽으며 환경운동 시작
최열 대표는 어떻게 환경아저씨가 되었을까. 1975년 안양교도소에서 시작했다. 71년 교련 반대 시위로 강제 징집된 그는 74년 제대해 보니 친구들이 모두 구속돼 있었다.
 
복학한 그는 명동성당을 중심으로 긴급조치 철폐,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는 운동을 벌였다. 구속돼 안양교도소로 가니 민주화운동으로 들어와 있는 동료들이 45명이 있었다. 그때는 점검이 엄격하지 않아 밤새 토론했다. 앞으로 뭘 하나. 그것이 가장 큰 주제였다.
 
“다 노동운동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야, 다 노동 운동하면 안 된다. 나는 전공(화학)을 살려 공해 문제를 하겠다’고 했더니 친구들이 ‘공해라도 배불리 먹고 살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공기가 좋은데 무슨’ ‘그건 민주화된 뒤에 해도 된다’며 다들 이해를 못 해요.”
 
최 대표는 어머니에게 공해 관련 책을 넣어 달라고 했다. 한국에는 책이 없었다. 어머니가 일본 앰네스티에 연락해 일본 책을 구해 넣어줬다. 그는 이때 일본어를 배워 독방에 2년3개월 있으면서 250권을 읽었다.
 
79년 출감했지만 10·26으로 공해 운동을 미뤘다. YWCA 위장결혼식 사건으로 보안사에 끌려갔다. 심한 고문을 견디자 ‘플라스틱 인간’이라고 불렸다. 이때 보안사령관이 전두환, 재판관이 노태우 수방사령관이었다. 81년 전두환 대통령 취임식 날 특별사면으로 나왔다. 그는 “이제 내 길을 가겠다”면서 82년 공해문제연구소를 만들었다. 한국 최초의 환경운동단체다. 이것이 93년 환경운동연합으로 발전했다.
김진국 칼럼니스트 kim.jinkook@joongang.co.kr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오영환 부소장 : oh.younghwan@joongang.co.kr (02-751-5515)
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