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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일의 시시각각] 바둑 고수 대통령의 등장

홍승일 논설위원

홍승일 논설위원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이하 호칭 생략)가 바둑을 접한 과정은 사뭇 다르다. 가난한 시골 중학생 문재인은 어르신들 어깨너머로 바둑을 배웠다. 안철수는 의대 예과 2년 때 “취미 하나쯤 있어야 한다”는 선배 권유로 바둑에 입문했다. 학구파답게 실전보다 바둑책이었다. 공부머리로 혼자 정석 달달 외웠더니 1년 만에 아마 2단이 됐다. 문재인은 한국 바둑의 전설적 라이벌 조훈현·서봉수 9단과 1953년생 동갑이다. 집에서 기보를 바둑판에 늘어놓아 가며 서봉수처럼 독학했다. 아마추어 3~4단 정도로 추정되는 두 후보가 반상에서 맞붙으면 누가 이길까도 벌써 호사가들의 관심거리다.
 
바둑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문화이자 마인드 스포츠다. 서양 체스보다 동양의 바둑을 더 높이 친 빌 게이츠는 지난해 3월 이세돌이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역사적 대결에서 1대 4로 패하자 “바둑마저 컴퓨터에 지다니···” 하고 탄식했다. 한국은 334명의 프로기사와 수만 명의 아마추어 유단자를 포함해 바둑인구가 1000만 명에 달한다. 이쯤이면 바둑 고수 대통령이 등장할 때도 됐다. 문재인·안철수 누가 당선되든 수담(手談)을 나누며 협치·연정을 논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한자 문화권이자 바둑 문화권인 한·중·일 3국이 바둑의 품격으로 한데 뭉치는 일이 대한민국 바둑 애호가 신임 대통령의 주도로 성사되는 멋진 장면을 상상해 본다.
 
물론 바둑은 취미로 두면 상생·화합의 신선놀음이지만 승부가 업인 이들에게 이보다 격한 싸움이 없다. 가로세로 19줄 반상 위에서 검은 돌, 흰 돌이 맞부딪치면서 천변만화 회오리를 일으킨다. 격렬한 정치판에 바둑 용어가 깊숙이 파고든 건 우연이 아니다. ‘수읽기’에 고심, ‘장고’ 끝에 ‘악수’, ‘자충수’ ‘무리수’가 패인, 3김은 정치 ‘9단’, 합당하려는 ‘포석’, 정적의 스캔들을 ‘꽃놀이패’로 활용, ‘초읽기’에 몰린 ‘덜컥수’, ‘판세’ 역전, 예정된 ‘수순’, 국민 기만하는 ‘꼼수’, ‘국면’ 전환용 ‘신의 한 수’ 등등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바둑이 없었다면 정치담당 기자들이 어떻게 기사를 썼을까. 웹툰과 드라마로 인기를 끈 ‘미생(未生)’도 ‘미생마’라는 바둑 용어에서 왔다.
 
체스가 상대를 파괴하는 데 주력한다면 바둑은 각자 영토를 확장하는 고차원적 게임임을 헨리 키신저도 일찍이 간파했다. 바둑도 물론 세를 불리는 과정에서 다툼이 빚어진다. 하나 작은 전투에선 타협·양보를 해 가면서 누가 집이 많은가로 결판을 낸다. 이 점 역시 표로 승부하는 선거와 유사하다.
 
19대 대선이 ‘포석’ 단계를 지나 ‘중반전’에 돌입했다. 두 차례의 TV토론을 통해 상대의 ‘급소(치명적 부위)’도 어느 정도 드러났다. 문재인의 ‘북한 인식’, 안철수의 ‘대북송금 입장’을 경쟁 후보들이 난타하고 있다. 10여 명 후보 중에 종반 ‘끝내기’에 접어들면 패배를 인정하고 ‘돌을 거두는(사퇴하는)’ 경우가 나올 수 있다.
 
유·불리가 뚜렷해질수록 네거티브식 ‘변칙수’ 판세 흔들기가 잦아질 것이다. 이미 문재인·안철수는 복지 등 선심성 정책 공약에서 ‘흉내바둑’을 구사해 온 터라 색깔이 엇비슷해졌다. 차별화가 어려우니 폭로전이나 후보연대 같은 ‘승부수’가 속출할 것이다.
 
두 후보는 바둑에 임하는 10가지 자세, 위기십결(圍棋十訣)을 다시금 들춰볼 것이다. 집토끼를 지키면서 무난히 ‘계가(計家, 집 계산)’를 마무리하려는 문재인은 부득탐승(不得貪勝, 무리하지 않음), 공피고아(攻彼顧我, 집안 단속), 봉위수기(逢危須棄, 급하면 꼬리자르기)의 자세를 가다듬는다. 안철수는 기자쟁선(棄子爭先, 주도권 잡기), 사소취대(捨小取大,작은 것 포기), 세고취화(勢孤取和, 불리할 때 원군 찾기)로 맹추격 의지를 불태운다. 반상의 좁은 변·귀보다 확장성이 큰 중원(中原, 부동표)에 집을 더 지어야 한다.
 
두 후보의 기풍(棋風)은 차분한 암중모색 스타일이라고 한다. 고수들의 팽팽한 바둑처럼 막바지 대선 가도는 여전히 형세불명이다.
 
홍승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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