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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한·중·일 협력 위해 평생 바쳤죠”

와카미야 주필 장남 다로(왼쪽)씨와 부인 리에코 여사.

와카미야 주필 장남 다로(왼쪽)씨와 부인 리에코 여사.

니어 재단(이사장 정덕구)이 고 와카미야 요시부미(1948~2016) 전 아사히신문 주필에게 제1회 ‘한·중·일 화해협력상’을 수여했다. 21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시상식에는 부인 리에코 여사와 장남 다로 씨가 참석해 대리 수상했다. 한·중·일 화해협력상 위원인 신각수 전 주일 대사는 공적사에서 “ 2002 한·일 월드컵 공동 주최에도 기여한 와카미야 주필은 한·중·일 역사 화해 문제를 집중 연구하고 실천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다로씨는 “아버지는 한·중·일 3국의 화해와 우호 관계 증진을 일생의 사업으로 여기셨다”며 “평소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한국과 중국의 많은 친구와 동지를 자랑스러워하셨다”고 말했다.
 
고인은 1970년부터 2013년까지 아사히신문에 재직하며 정치부장·논설주간·주필 등을 역임했다. 한·일, 중·일 관계의 중요성을 일관되게 강조했고, 일본의 평화적 진로와 아시아의 공생을 위한 노력에 평생을 바쳤다. 80년대 초 한국에 연수를 와 한국과 인연을 맺은 그는 칼럼에서 “독도를 한국에 양보하자”고 주장했다가 일본 우익 세력의 위협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 4월 한·중·일 국제회의 참석차 중국 베이징을 방문했다가 호텔에서 쓰러져 별세했다.
 
리에코 여사는 남편이 2013년 정년퇴직 후엔 일본보다 한국에 머문 시간이 더 길었다고 했다. “아사히신문 기자였던 시아버지 고타로 의 뒤를 이어 기자가 된 남편은 초등학교 때부터 신문기자의 꿈을 키웠다고 했습니다. 80년대 초 한국 민주화 과정에 깊은 인상을 받고 서울 특파원을 하고 싶어 했지만, 그럴 기회가 없었지요. 2013년 은퇴하고서야 ‘이제 하고 싶은 일을 원 없이 할 수 있게 됐다’며 좋아하던 차에 세상을 뜨게 돼 안타깝습니다.”  
 
글·사진=박소영 기자 park.so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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