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Behind & Beyond] 네 번 만에 찍은 대장경 ‘천 년의 숨결’

고려대장경 발원 천 년을 기념하는
 
‘대장경 천 년 세계문화축전’이 있던 2011년의 일이다.
 
“딱 10분입니다.”
 
팔만대장경 보존 국장이 사진 촬영을 허가하며 내게 한 말이었다.
 
그냥 한 바퀴 둘러만 봐도 10분일 텐데 그 시간에
 
천 년의 숨결을 사진으로 담아내야 할 상황이었다.
 
그래도 군말 못했다.
 
사실 해인사 장경판전(藏經板殿)은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니지 않은가.
 
출입조차 쉽지 않은 터니 사진 촬영 허가는 더 어려울 터다.
 
그런데 10분이나마 촬영 허가가 났으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보존 국장의 인도 아래 장경판전에 들어섰다.
 
첫발을 들여놓자마자 긴장감이 엄습했다.
 
천 년의 숨결을 단 10분 이내에 사진으로 찍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다.
 
사진을 찍기 전에 보존 국장에게 부탁했다.
 
“ ‘心’이 새겨진 경판을 한 장 찾아 주십시오.”
 
뒤에서 지켜보는 눈길의 부담을 피할 겸 시간을 아끼기 위해 그리 부탁을 했다.
 
“그래도 공부는 좀 하고 오셨나 봅니다. 팔만대장경 5200만 자를 한 글자로 응축하면 결국 마음 심(心)이 됩니다. 찾아올 테니 얼른 사진 찍으세요. 딱 10분입니다.”
 
정신없이 사진을 찍었다. 쫓겨나듯 떠밀려 나와서야 정신이 들었다.
 
천 년의 숨결을 느끼는 것은 고사하고 눈에 띄는 대로
 
셔터 누르기에 바빴음을 그제야 알았다.
 
보존 국장을 다시 찾아갔다.
 
“스님 한 번만 더 들어가게 해주십시오. 제가 무능하여 사진을 제대로 못 찍었습니다.”
 
“안 됩니다. 곧 다른 방송국에서 취재 올 겁니다. 물론 그 사람들도 10분입니다.”
 
“그럼 스님 인터뷰 사진도 어차피 필요하니 방송 촬영 때 뒤에서 찍도록 해주십시오.”
 
어렵사리 허락을 구해 방송 촬영 팀을 따라 두 번째 들어섰다.
 
방송 카메라 뒤에서 인터뷰용 사진을 촬영했다.
 
방송 촬영도 여지없이 10분이었다.
 
다른 사진 찍을 겨를이 없었다.
 
또 떠밀려 나와야 했다.
 
그때부터 스님을 졸졸 따라다녔다.
 
보존 국장으로서 지켜야 하는 게 스님의 소임이었다.
 
기자로서 독자에게 천 년의 숨결을 전달해야 하는 것은 나의 소임이었다.
 
그러니 스님은 나를 피해 다니고 나는 스님을 따라다녔다.
 
그 와중에 또 다른 방송 촬영팀이 왔다.
 
고려대장경 발원 천 년을 기념하는 문화축전이니 취재진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다시 부탁하여 그들을 따라 또 들어섰다. 세 번째였다.
 
그때야 팔만대장경의 숨결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여지없이 10분 후 바깥으로 끌려 나왔다.
 
이때 들어오지도 못하고 바깥에서 기다리던 취재기자가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대장경을 위에서 부감으로 찍은 사진이었다. 이거다 싶었다.
 
마침 세 번째 들어섰을 때 봐 둔 장소가 있었다.
 
다시 스님에게 조르듯 부탁했다.
 
“천 년의 숨결은 고사하고 10분의 숨결도 못 찍었습니다.
 
그런데 이제야 찍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딱 10분만 주십시오.”
 
“정말이죠? 그렇다면 그 사진을 우리 보존국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고 약속하십시오.”
 
그렇게 네 번째 장경판전에 들어섰다.
 
판가를 연결하는 나무 지지대 위에 올라섰다.
 
몸 기댈 곳 없는 데다 폭이 고작 20cm 정도였다.
 
내려다보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아찔했다. 카메라를 잡은 손도 떨렸다.
 
떨리는 다리와 손이 도무지 진정되지 않았다. 호흡을 가다듬었다.
 
넓은 위 살창과 좁은 아래 살창으로 오가는 바람이 느껴졌다.
 
남쪽에서 들어와 대장경을 감돌고 북쪽 창으로 빠져나가는 바람이었다.
 
그 바람을 호흡하면서야 다리와 손이 진정되었다.
 
살창을 통해 넘나드는 빛과 바람, 바로 천 년의 숨결을 잇게 한 그것이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AD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북핵위기 심화 및 동북아 안보환경 변화 등 미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2017년 7월 1일 개소했습니다.
연구소는 대학과 정부출연 연구 기관 등과 연계해 학술행사를 개최하며, 정기적으로 자문회의를 열고 다양한 시각과 차별화된 이슈를 제시합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은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와 기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