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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마당 없는 집은 짐승의 ‘우리’와 같다

집은 디자인이 아니다
김기석 지음, 구승민 그림
디북, 192쪽, 1만6000원
 
1995년에 나왔다가 절판된 책이 있다. 『건축가 김기석의 집이야기』(대원사)다. 얼마나 재미있고 흥미진진했던지 소설가 양귀자 씨는 “내 몸이 들어가 살고 있는 집을 이토록 깊이 ‘읽어 내는’” 저자의 통찰과 전언에 압도돼 “불현듯 집을 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지은이는 초판 서문에서 “집은 지혜로 짓는 것이지 지식으로 짓는 것이 아니다. 지혜는 재미있는 곳에 있다”라고 단언한다.
 
『집은 디자인이 아니다』는 그 문제적 책을 22년 만에 되살려낸 재편집본이다. 편집자인 이재성 씨는 “저자가 말하는 ‘집은 생명이다’라는 명제가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초점을 맞추었다”고 밝혔다. “집이 사라졌을 때 사람도 사라졌다”는 김기석의 화두를 곱씹어 볼 수 있도록 기존 내용을 재구성했다.
 
집은 그에게 무엇이었을까. 집은 어머니나 신과 같은 의미의 사랑이다. 어린 시절, 가족 모두를 불러 앉히던 안방 아랫목은 집의 심장이었다. 현대 주택은 그러한 결정적 구심점을 상실함으로써 사랑에 실패했다. 최고의 집은 추억의 집이다. 집 속에는 건축학개론에서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동경이 있다. “집은 다분히 인문학적인 것으로 꿈속에서 피어난다.”(25쪽)
 
구승민이 그린 부뚜막과 가마솥. 김기석은 “한국의 부엌은 24시간 기능하는 시스템”이라고 했다. [사진 디북]

구승민이 그린 부뚜막과 가마솥. 김기석은 “한국의 부엌은 24시간 기능하는 시스템”이라고 했다. [사진 디북]

집은 성(性)이기도 하다. “같이 자는 것이 성을 뜻한다면 같이 자기 위해 만든 집은 애초부터 성적인 것이다.” 열고 닫는 것이 집이기에 집은 리듬이고, 견고한 춤이다. “한국의 전통 건축 공간에는 굽이굽이 흐르며 열리고 닫히는 재미, 공간의 춤이 있다.”(33쪽)
 
집에 대한 그의 명상은 광활하게 흘러간다. 최초의 집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를 타일피시라는 물고기로부터 유추하더니 온돌과 굴뚝을 거쳐 부뚜막과 가마솥을 지나 드디어 마당에 도착한다. “마당은 공간의 고리이자, 공간의 보따리이다. (…) 마당은 심정(心情)의 산물이다. ”(115쪽)
 
지은이는 “이 마당이 사라져 가고 있다”며 “심정의 보자기는 사라지고 칸막이가 잘된 가방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으니 그건 집이 아니라 비싸게 팔 수 있는 짐승의 ‘우리(cage)’라고 탄식했다.
 
책 곳곳에서 ‘심정의 눈’을 뜨게 도와주는 것이 지은이의 제자인 구승민 씨가 그린 삽화다. 수 만 개 점(點)으로 이뤄진 건축물의 자태는 집이 빛의 생명체임을 보여준다. “생명은 항상 미지의 것, 그 미지의 것이 전혀 뜻하지 않은 모습으로 우리의 공간을 새로이 채워 주고 풍요롭게 해줄 수 있도록 빈 그릇을 남겨 두어야 한다.”(116쪽)
 
[S BOX] 홀연히 자취 감춘 건축가 김기석
지은이 김기석은 1944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서울대 건축과를 졸업한 뒤 70년부터 서울 대학로에서 ‘아람광장’을 운영하며 300여 채가 넘는 집을 지었다. 그가 70년대 서울 홍대 앞에 지은 ‘우리마당’ 연작은 ‘피카소 거리’의 문화 초석을 다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붉은 벽돌집 세 채가 마당으로 이어지는 풍경은 김기석 건축의 핵심이라 할 ‘마당의 사상’을 보여준다.
 
그의 제자이자 삽화를 그린 구승민(48) ‘스튜디오 꾸시노’ 대표는 재출간 서문에서 “불현 듯이 사라져 버린 그에 대한 그리움”이라 썼다. 2000년 대 초까지 만나고 전화도 했는데 연락이 두절되더니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는 것이다. 등단 시인이자 소설가이기도 했던 김기석은 무주구천동에 터를 잡고 글만 쓰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으나 종적이 묘연하다. 구 대표는 “돌아가셨다는 풍문이 들리지만 나는 스승이 잠깐 여행가셨을 것이라 믿고 있다”고 했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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