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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송민순 “문재인, 이처럼 증거 있는데도 계속 부인”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 인터뷰 
2007년 유엔 투표를 앞두고 노무현 정부가 북한과 사전 협의했다는 논란에 대해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20일 입을 열었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투표를 앞두고 찬성과 기권을 놓고 내부 의견이 갈린 상황이었다. 송 전 장관은 저서 『빙하는 움직인다』를 통해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던 문재인 후보가 결의안 투표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자며 북한과의 접촉을 지시하고 이를 반영했다고 주장했다. 문 후보가 이를 부인하자 이번에 송 전 장관이 “청와대에서 만든 메모”라며 반박 문건을 공개한 것이다.
 
2007년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찬반 투표 전 노무현 정부와 북한 간 사전협의설을 제기한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20일 과거 사용했던 수첩을 들고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2007년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찬반 투표 전 노무현 정부와 북한 간 사전협의설을 제기한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20일 과거 사용했던 수첩을 들고 당시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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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건은 뭔가.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이 북한에서 받은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문서에 찍힌 로고는 청와대 마크다. 싱가포르를 방문 중인 노무현 대통령에게 안보실장이 20일 저녁 6시30분에 접수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내용이 서류 밑에 적혀 있다.”
 
본인 글씨인가.
“내 것은 아니다. 백종천 외교안보실장 글씨로 생각된다.”
 
당시 상황은.
“노 대통령의 호텔 방에 들어가니 ‘북한에서 받은 반응’이라며 내게 보라고 문서를 줬다. 그때 눈을 의심했다. 노 대통령은 ‘그냥 갑시다. 기권으로. 북한에 물어보지 말고 찬성으로 가고 송 장관 사표를 받을까 생각도 들었지만 이제 시간을 놓친 것 같다’고 했다. 방을 나온 뒤 나중에 수첩에 당시의 감정을 적어놓기도 했다. ‘내가 이런 정부에서 이런 사람들과 같이 일을 해야 하나’라고. 나중에 차관에게 국제전화를 걸어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상의하기도 했다.”
2007년 11월 인권결의안 투표와 관련된 북한 측 반응을 정리해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달됐던 청와대 문건. 장진영 기자

2007년 11월 인권결의안 투표와 관련된 북한 측 반응을 정리해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달됐던 청와대 문건. 장진영 기자

 
결의안에 찬성하자고 한 까닭은.
“유엔에서 외교부가 북한 측과 접촉한 내용을 보니 그쪽은 우리가 인권결의안에 찬성하는 것에 반대는 하나 그렇다고 극렬하게 반발하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찬성하자고 했었다.”
 
책 발간 후 문 후보 측에서 강력히 부인했는데.
"내 책이 언론에서 문제 되기 전 문 후보 측에서 연락이 왔다. 그때 나는 ‘당시에는 나라 생각하는 충정에서 그렇게 했지만 지금 보니 물어보고 할 건 아니었다고 문 후보가 말하는 게 맞다’고 했다. 전화 기록도 다 있다. 하지만 정쟁의 대상이 되면서 문 후보가 내 책의 신빙성 문제를 제기해 일이 이렇게 된 것이다.”
 
저서의 신빙성에 자신 있는가.
"나는 업무와 관련된 모든 내용을 수첩에 적어놓는 사람이다. (수첩을 꺼내 보이며) 이런 수첩이 수십 권 있다. 그리고 책을 쓸 때 포스트잇으로 작성한 메모가 1000개 이상이었다. 신문 기사도 참고를 한다. 이런 자료들을 바탕으로 책을 쓴 것이라 틀림없다.”
 
문건 공개 배경은.
"원래는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이처럼 분명한 증거가 있는데도 문 후보가 대선 토론 등에 나와 계속 부인만 하니 어쩌겠는가. 문 후보는 자신의 이야기가 잘못됐었다고 해야지 사실을 싹 깔아뭉갤 일이 아니지 않으냐. 이처럼 확실한데 어떻게 역사에 눈을 감고 있을 수 있나.”
 
‘송 전 장관도 나중에는 기권에 동의했다’는 주장도 있다.
"문 후보가 여러 방송에서 ‘내가 북한 반응을 확인해 보자고 결론을 내렸다는 송 전 장관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고 했다. 또 그 과정에서 나 역시 다 동의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안 된다고 했다. 내가 동의했다면 이렇게까지 될 리 있겠는가.”
문 후보가 정확히 기억 못할 수도 있지 않은가.
“청와대에서 안보조정회의를 네 번이나 해 기억 못할 일이 아니다. 의견이 갈리면 대통령에게 내는 보고서에는 병기를 하기 마련이다. 안보조정회의는 의결기구가 아니므로 의견을 조정해 대통령에게 보고하도록 돼 있다. 그래서 나는 병기를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비서실장이던 문 후보는 ‘왜 그런 부담을 대통령께 드립니까’라고 했다. 지금의 한국이 가장 어려운 상황 아니냐. 그럼 본인이 대통령이 되면 밑에서 정해주는 대로 하겠다는 얘기인가.”
 
북한에 물어보는 게 잘못됐다고 생각했나.
"대북정책의 기초는 국내 여론 통합이다. 이런 일로 그쪽 뜻을 물어보면 북한에 칼자루를 쥐여주고 우리가 칼끝을 쥐는 셈이 된다. 이래서는 제대로 정책을 펼칠 수 없다.”
 
당시 노 대통령이 기권하기로 결정한 정황을 보여 주는 수첩의 해당 페이지. “묻지 말았어야 했는데 문 실장이 물어보자고 해서”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장진영 기자

당시 노 대통령이 기권하기로 결정한 정황을 보여주는 수첩의 해당 페이지. “묻지 말았어야 했는데문 실장이 물어보자고 해서”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장진영 기자

노무현 정권의 대북정책이 잘못됐다고 보나.
"책의 내용은 대체로 노 대통령의 외교안보 철학과 궤를 같이한다. 다만 일부 방법론 상의 잘못을 지적한 것이다. 철학이 틀려서가 아니고.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있지 않느냐. 아무리 방향이 맞아도 방법이 틀리면 아닌 거다.”
 
그간의 심경은.
"내 책의 온전성도 보존해야 하지만 내 책이 정치적 소용돌이에 빠져들어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그럼에도 이 두 사안이 양립할 수는 없다. 문 후보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했으면 본인의 리더십도 인정받고 내 책은 제대로 된 기록으로 남을 수 있었는데 아쉽다. 책이 나왔을 당시 새누리당도 ‘북한과 내통했다, 결재를 받았다’는 둥 지나치게 공격한 느낌이 없지 않다. 자신의 결정을 인정하더라도 얼마든지 이를 정당화할 수 있었을 텐데 도리어 내 책을 공격하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본다.”
 
일각에서 정치적 의도로 책을 낸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
“9·19 공동성명이 2005년에 있지 않았느냐. 2015년이 10주년이라 이때에 맞춰 회고록을 내려 했다. 하지만 대학 총장으로 일하다 보니 시간이 더 걸려 지난해에 낸 것뿐이다.”
 
너무 일찍 낸 것 아닌가.
“미국의 외교를 담당했던 콘돌리자 라이스, 크리스토퍼 힐, 로버트 게이츠 등은 은퇴 후 2~3년 만에 회고록을 썼다. 최소한 한국 외교부 장관이 우리 문제에 대해선 이 사람들보다는 더 치밀하게 기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인들이 쓴 책만을 읽고 그쪽 시각에 빠지게 된다.”
 
19일 대선 토론을 보고 난 느낌은.
“두 가지였다. 잘못된 것을 피하기 위해 정교하게 준비를 했거나 아니면 자기도 모르게 자기의 말에 마취가 됐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여기저기서 딴소리를 하는 것 아니겠느냐. 있는 그대로 말하면 내용이 바뀔 수 없다. 자기가 이야기하는 게 맞는 걸로 착각할 수도 있다.”
 
남정호 기자 nam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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