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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해인사 가면 보인다, 800년 끄떡없는 팔만대장경의 비밀

가야산 중턱에 들어선 천년고찰 해인사. 해인사 정점에 장경판전이 세워졌다.

가야산 중턱에 들어선 천년고찰 해인사. 해인사정점에 장경판전이 세워졌다.

봄이 진동했다. 경남 합천 가야산에 둥지를 틀고 있는 해인사로 향하는 길에 흐드러진 봄꽃과 새초롬한 신록을 만났다. 천년고찰의 길목에서 단지 봄이 빚은 풍경만으로 들뜬 것은 아니었다. 해인사가 소장하고 있는 팔만대장경(고려대장경·국보 32호)을 본다는 생각에 한층 설렜다.
 
사실 팔만대장경 관람이라 해도 대장경을 보관한 건물 장경판전(국보 52호)의 창살 틈으로 그 존재를 확인하는 일이 전부다. 2013년부터는 이마저 제한을 뒀다. 숭례문(2008년)·화엄사(2012년) 등에 방화사건이 터지자 해인사 측은 장경판전의 중정(中庭·마당) 입구를 통제했다. 여행객은 하릴없이 장경판전 바깥쪽 창을 통해서만 팔만대장경을 엿봐야 했다.
장경판전 법보전 중앙에 있는 불당. 장경판전 중정을 개방하기 이전에는 접근할 수 없었다.

장경판전 법보전 중앙에 있는 불당. 장경판전 중정을 개방하기 이전에는 접근할 수 없었다.

 
4년의 시간이 흘렀고, 올해 1월 1일 마침내 장경판전 중정으로 통하는 문이 개방됐다. 창살 사이로 팔만대장경을 본다는 데는 변함이 없지만 다양한 각도에서 관찰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해인사로 향해야 하는 이유는 충분해 보였다. 부처님오신날(5월 3일)도 코앞이었다.
 
가야산 중턱께 다다르자 해인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주지 향적 스님은 외부인을 반갑게 맞아줬지만 “팔만대장경을 대하는 데 경외심을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고려 고종 23년(1236년)부터 16년에 걸쳐 제작된 팔만대장경은 모두 8만1350장입니다. 한 장도 손실·분실되지 않고 온전한 모습입니다. 800년 가까운 세월을 견뎠으니 경판 한 장 한 장이 살아 있는 부처님과 같지요.”
 
국보 32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팔만대장경은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 안에 보관돼 있다. 해인사 주지 향적 스님이 팔만대장경 경판을 조심스레 꺼내 보이고 있다.

국보 32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팔만대장경은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 안에 보관돼 있다. 해인사 주지 향적 스님이 팔만대장경 경판을 조심스레 꺼내 보이고 있다.

팔만대장경은 현재 보험을 받아주는 보험회사가 없어 화재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상태다. 가치를 산정할 수 없다는 게 이유란다. 대신 해인사 내 많은 조직이 팔만대장경을 수호하고 있다. 팔만대장경을 보존·보호하는 ‘보존국’, 팔만대장경 데이터베이스 작업을 하는 ‘대장경연구원’이 있다. 해인사는 또 대장경을 지키는 장주(藏主)라는 직책도 둔다. 올해로 27년째 장주를 맡고 있는 원산 스님은 “해인사에 7차례 대화재가 났는데도 대장경이 그대로 남아 있는 이유는 부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야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장경연구원 한홍익 연구원과 함께 팔만대장경을 모신 장경판전으로 향했다. 장경판전은 해인사 맨 꼭대기 해발 700m께 지어졌다. 장경판전은 수다라장, 법보전, 동·서사간전 네 동의 건물이 ‘ㅁ’자 형으로 둘린 모양새였다. 팔만대장경은 수다라장과 법보전에 보관됐다. 장경판전 중정을 개방하기 전에는 수다라장 외벽만 볼 수 있었지만 중정 문을 열면서 수다라장 안쪽과 법보전을 두루 둘러볼 수 있게 됐다.
 
해인사 장경판전 팔만대장경.

해인사 장경판전 팔만대장경.

국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장경판전은 보고도 그냥 지나칠 정도로 허름한 목조 건축물이었다. 창문이 뻥뻥 뚫려 있는 게 팔만대장경과 같은 국보를 감싸고 있는 건물 치고 허술해 보였다. 한홍익 연구원은 “장경판전의 큼지막한 창구에 800년간 팔만대장경이 유지돼 온 비밀이 있다”고 했다. 창문으로 볕이 들고 비도 들어오지만 공기 순환이 원활해 팔만대장경은 지금껏 어느 하나 뒤틀리거나 썩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연구원은 팔만대장경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2005년)으로 등재되기 앞서 1995년 장경판전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덧붙였다.
 
수다라장과 법보전 벽면 위쪽과 아래쪽, 그리고 앞면과 뒷면의 창 크기가 서로 다른 것도 눈에 띄었다. 큰 창은 폭 2.15m, 세로 1m 크기고 작은 창은 폭 1.22m, 세로 0.44m인데 통풍을 원활하게 만들 목적이라는 점만 파악했을 뿐 현대 과학으로도 정확한 원리를 알기 어렵단다. 해인사 측은 장경판전이 팔만대장경에 앞서 초조대장경(1011년 제작, 1232년 소실)이 만들어질 당시 지어졌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천년의 시간을 버틴 장경판전 창살 사이로 빽빽이 꽂힌 팔만대장경이 들여다보였다. 수령 40년 이상 된 나무를 골라 벌목하고, 바닷물로 쪄내 진을 제거하고, 1년여간 정성스레 말렸다가 각수(刻手)가 한 자 한 자 새길 때마다 절을 올렸다는 목판은 형형한 에너지를 내뿜었다.
 
해인사 측의 배려로 장경판전 내부로 들어가 팔만대장경을 가까이서 볼 기회를 얻었다. 세월이 무색할 만큼 목판은 어제 만든 듯 광택이 났다. 고려인이 어떤 마음으로 팔만대장경을 제작했는지 자못 궁금했다. 향적 스님은 이 위대한 문화재는 고려의 국운이 융성할 때가 아니라 오히려 절체절명의 순간에 탄생했다고 일렀다.
 
“팔만대장경은 고려가 몽골족과 전쟁 중에 제작됐습니다. 13세기 고려 인구의 4분의 1가량이 팔만대장경을 만드는 데 참여했다고 추측됩니다. 전 국민이 똘똘 뭉쳐 대장경을 만들면서 위기를 극복한 것이죠. 세대·지역·계층 간 갈등과 반목이 높은 한국 사회에 대장경의 정신이 복원되길 기원합니다.”
 
●여행 정보
서울시청에서 경남 합천 해인사까지 차로 4시간30분 걸린다. 팔만대장경·장경판전 등 국보와 보물 70점이 면적 18.66㎢에 이르는 사찰 곳곳에 산재해 있다.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장경판전 중정을 오전 8시30분~오후 6시에 개방한다. 해인사 입장료 어른 3000원, 어린이 700원.
 
글·사진=양보라 기자 bo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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