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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거짓말에 굴복해선 안 된다"

홀로코스트 연구의 권위자인 미국의 역사학자, 에모리대학의 데보라 립스타트(레이첼 와이즈) 교수가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가 유대인 말살을 지시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영국인 데이비드 어빙(티모시 스폴)이 고소인이다. 립스타트가 저서 『홀로코스트 부인하기』에서 그를 ‘홀로코스트 부인론자’라고 칭한 구절을 문제 삼은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무죄 추정의 원칙을 적용하지 않는 영국 법원에 고소하는 바람에, 유대인 대학살이 실제로 일어났고 어빙이 그 사실을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책임을 립스타트 교수가 고스란히 떠안는다.
 
이는 영화 ‘나는 부정한다’(원제 Denial, 4월 26일 개봉, 믹 잭슨 감독)가 상상한 극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1996년 일어났던 실화다. 영화는 그 사건의 무게 속에, ‘인류의 참혹한 역사, 그 진실을 왜 끊임없이 되새겨야 하는가’ 진지하게 묻는다. 립스타트(70) 교수가 서면 인터뷰를 통해 그에 대한 명쾌한 답을 들려줬다.    
배우 레이첼 와이즈(왼쪽) -  데보라 립스타트 교수(오른쪽)

배우 레이첼 와이즈(왼쪽) -데보라 립스타트 교수(오른쪽)

 
어빙과의 재판을 영화화하겠다는 제안을 받았을 때, 극적인 연출을 위해 ‘진실’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고. 그 진실이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진실은 홀로코스트 부인론자들이 어떤 근거나 증거도 없이 그러한 주장을 펼친다는 것이다. 판결문에 나와 있듯, 어빙은 사실을 ‘뒤틀고’ ‘왜곡했으며’, 그가 주장하는 역사는 ‘정당하지 않은’ ‘모방품’에 지나지 않는다.(www.hdot.org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신나치주의자다. 그건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인 것이다.”
 
레이첼 와이즈가 당신을 연기하는 모습을 보는 기분이 어땠나.  
“비현실적이었다. 엄청난 기량과 재능을 지닌 배우가 나를 연기하는 모습을 보다니, 영광이었다. 와이즈는 나를 ‘진실하게’ 연기하고 싶어 했다. 재판 당시 내 느낌과 경험에 대해 그와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와이즈는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고 분명하게 밝히는 강한 사람이다. 그 점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나도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전략상 재판 내내 변호사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침묵을 지켜야 했다고. 평생 홀로코스트의 진실을 이야기해 온 당신에게 굉장히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을 것 같은데.  
“정말 당황스러웠다. 법정에 앉아 어빙의 날조와 거짓말을 듣고 있는 게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진정한 신념을 지닌 최고의 변호사들과 함께했고, 그들이 내 몫까지 잘해 줬다.”
 
어빙 같은 홀로코스트 부인론자들이 지금도 이렇게 멀쩡히 존재한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다.
“그들은 트롤처럼 매우 활발히 활동하며 자신들의 의견을 쉼 없이 주장하고 있다.”
 
부인론자들은 어떤 마음과 욕망에서 그런 주장을 하는 걸까.  
“그들은 반유대주의자다. 유대인 학살을 거짓이라 믿으려면, 그 생존자들과, 학살을 지켜본 사람들(유대인 수용소 주변에 살면서 매일같이 기차가 유대인들을 싣고 들어와 빈 채 나가는 것을 목격한 폴란드인들, 이웃들이 교외의 한적한 곳으로 실려 나가 총살당하고 그 시체가 마구잡이로 버려지는 것을 목격한 러시아인들), 그리고 무엇보다 가해자들, 그러니까 ‘우리가 했다’고 인정한 독일인들까지 모두 틀렸다고 믿어야 한다. 그건 비이성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환상적인 사업인 셈이다. 반유대주의라는 세계관으로 무장하지 않고서는 그런 사업을 벌일 수 없다.”
 
홀로코스트, 그 역사의 진실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나타나는 사실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혐오주의자들, 범죄자들, 악한 자들은 언제나 있어 왔다. 그들은 미래에도 존재할 것이다. 오랜 편견의 이름으로 진실을 부정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어빙과의 재판은 역사를 대하는 당신의 시각과 태도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한층 더 경계를 늦추지 말고 진실을 위해 싸우고, 홀로코스트 부인론자 같은 이들에게 증거를 요구해야 한다는 확신이 강해졌다. 말도 안 되는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줄 필요는 없다.”
 
홀로코스트의 역사와 진실을 끊임없이 되새겨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대인 학살은 우리가 사는 시대에 일어났던 일이다. ‘천재성’을 동원해 한 민족을 어떻게 말살할지 고심했다. 살인 기계를 고안해 내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확신한다(이미 르완다 대량 학살(1994) 같은 인종 학살이 여러 차례 일어났지만). 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홀로코스트에 대해 가르치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에서도 전직 대통령이 연루된 사상 초유의 국정 농단 사태를 두고, 진실을 드러내려는 사람들과, 그것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알고 있다. 외신 보도로만 접한 사건이라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다만,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사실과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계속해서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외롭고 긴 싸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상대가 권력자와 지도자라고 해서, 거짓말쟁이들에게 굴복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독재로 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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