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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칼럼] 새 대통령도 박정희처럼 치욕당할 건가

이하경 주필

이하경 주필

역시 키신저였다. 트럼프와 시진핑의 정상회담은 93세 키신저의 막후 중재로 성사됐다. 1971년 7월 9일 비밀리에 저우언라이를 만나 미·중 수교의 물꼬를 텄고, 미·중 관계가 험악해지자 트럼프의 메신저로 시진핑을 만났다. 46년 전 키신저에게 미·중 화해의 전초작업을 지시한 사람은 닉슨 대통령이다.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을 상대했고, 박정희에게 치욕을 안겨준 인물이다.
 
아이젠하워 대통령 정부의 부통령인 닉슨은 54년 7월 26일 워싱턴 공항에 도착한 이승만 부부를 영접했다. 21발의 예포가 포토맥강 건너까지 울려 퍼졌다. 비록 미국의 원조에 의존하는 약소국의 지도자였지만 이승만은 연설에서 “미국이 겁을 먹어 한반도 통일의 길은 막혔지만 전지전능한 신은 우리의 계획이 기필코 성취되도록 해주실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이승만 일행이 백악관에 도착하자 아이젠하워는 현관 계단에서 내려와 이승만을 영접했고 계단을 올라가서 자신의 부인에게 안내했다. 성대한 국빈 만찬이 이어졌다. 불과 1년 전인 53년 6월 18일 이승만은 반공포로 2만6000명을 미국과 상의 없이 기습적으로 석방했다. 한국에서 발을 빼려는 미국을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로 묶어두기 위한 압박카드였다. 분노한 아이젠하워는 한때 이승만을 제거하려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지만 탁월한 안목과 애국심을 무시할 수 없어 깍듯하게 예우를 갖춘 것이다. 닉슨은 회고록에서 “공산주의자를 다루는 데 있어서 이승만보다 탁월한 사람은 보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박정희에 대한 닉슨의 태도는 달랐다. 두 사람은 69년 8월 21일 캘리포니아에서 정상회담을 했다. 닉슨은 마중 나오지도 않고 호텔방 안에서 박정희를 맞았다. 만찬에 고향 친구들을 동석시키기까지 했다. 박정희는 심하게 홀대당했다. 한 달 전 ‘아시아인의 안보는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닉슨 독트린’을 발표한 직후였지만 주한미군이 감축 대상이라는 중대한 사실을 박정희에게는 알려주지 않았다. 베트남전 종식을 공약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닉슨은 ‘닉슨 독트린’을 선언했지만 한국 정부는 한국만 예외라고 믿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41년 일본의 진주만 기습을 유일하게 예언한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 출신 이승만의 외교적 통찰력이 육군 소장 출신 박정희에겐 없었다. 박정희는 닉슨이 야인 시절인 66년 한국을 방문하자 퇴물로 취급해 식사도 안 하고 커피 한 잔 나눈 뒤 보냈다. 닉슨은 아시아 여러 나라 여행의 경험을 바탕으로 67년 포린어페어스에 ‘베트남 이후의 아시아’라는 기고문을 발표했다. 그는 “장기적으로 중국이 세계 혁명의 진원지가 아니라 위대하고 발전하는 국가로서 세계 공동체에 귀환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베트남전 종식을 대선 공약으로 걸고, 주한미군 7사단의 철수로 이어지는 닉슨 독트린과 미·중 수교의 예고편이었다는 사실을 박정희 정부의 어느 누구도 몰랐다.
 
북핵 위기가 고조되고 한반도 전쟁위기론이 퍼지고 있는 가운데 미·중 관계가 전면적인 조정 국면을 맞았지만 한국 대통령은 궐위 상태다. 정상회담에서 양국 간 무역 갈등은 진정됐지만 우리의 운명을 쥐고 있는 북핵과 사드에 대한 인식 차이가 좁혀졌는지는 알 길이 없다. 불길한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이 계속되고 있다.
 
강대국의 흥정이 끝나면 반드시 청구서가 날아온다. 71년 7월 닉슨이 키신저의 베이징 비밀 방문을 공개하고 자신의 중국 방문 계획을 밝히는 특별성명을 내놓자 두 달 뒤에 이산가족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남북 적십자 예비회담이 열렸다. 분단 이후 최초의 공식 남북대화다. 이건 확실히 좋은 변화였다. 반면 45년 2월 얄타에서 미국의 루스벨트, 소련의 스탈린, 영국의 처칠이 한반도 분단과 신탁통치의 밑그림을 그렸던 장면은 역사의 악몽이다.
 
새 정부 출범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대선후보들은 외교안보 현안에는 큰 관심이 없다. 사드 배치에 대해서 이렇다 할 논리와 전략도 제시하지 않고 입장을 바꾼다. 선거 승리가 전쟁을 막아줄 것으로 믿는가. 48년 4월 14일 지식인 108인은 “남북 협상을 성원함”이라는 성명서를 내고 분단 이후의 전쟁 가능성을 정확하게 경고했다. 그러나 지금 양심적 지성의 목소리는 폴리페서의 어지러운 발자국 소리에 파묻혔는지 들리지 않는다.
 
이대로 가면 미국과 불화 끝에 유신체제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파멸했던 박정희의 실패를 반복할 수 있다. 한반도 정세는 한국전쟁 이후 가장 위험하다. 선제타격론과 4월 위기설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새 대통령은 당선과 동시에 강대국과 북한을 상대해야 한다. 국제 정세 변화의 흐름을 예민하게 읽고 큰 그림을 그리면서 대처할 수 있는 외교안보 컨트롤타워 구성은 필수다. 실력이 있다면 내 편 네 편을 따지지 말아야 한다. 박정희의 치욕을 되풀이하지 않고, 전쟁을 막으려면 지금 결단해야 한다.
 
이하경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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