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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를 닮고 싶었던 추상조각가, 그가 남긴 흔적들

한국 추상조각의 선구자로 꼽히는 김종영(1915 ~1982·사진)은 그 세대의 미술가로는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휘문고보를 나와 일본 유학을 다녀오기에 앞서 서예와 한학에 익숙한 문화적 토양에서 자랐다는 점이 그렇다. 그의 집안은 영남 유림의 명문가였다. 경남 창원의 생가에 전해내려오는 현판이나 한 사람의 시에 여러 사람이 그 운을 빌려 쓴 시를 차례로 새긴 시판들은 그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전시장 오른편에 김종영의 글씨 ‘불각재(不刻齋)’, 왼편에 1974년 석조작품들이 보인다. [사진 김종영미술관]

전시장 오른편에 김종영의 글씨 ‘불각재(不刻齋)’, 왼편에 1974년 석조작품들이 보인다. [사진 김종영미술관]

김종영의 조각 ‘생성’. 50×48×75㎝, 시멘트, 1958.

김종영의 조각 ‘생성’. 50×48×75㎝, 시멘트,1958.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김종영, 그의 여정’은 이같은 성장배경, 나아가 자신에게 체화된 전통을 아우르며 추상을 탐구한 그의 정신적 궤적을 전하는 흥미로운 전시다. 조각 작품은 물론이고 최근에야 공개되기 시작한 그의 서예와 서화, 이런 저런 책을 구매하라는 아버지의 편지, 생가의 모습, 직접 그린 그림과 남긴 글 등 다양한 작품과 자료가 그에 대한 호기심을 한껏 북돋운다. 특히 추사 김정희에 대한 그의 탐구와 애정은 곳곳에서 확인된다. 추사의 글씨가 지닌 “투철한 조형성과 아울러 입체적 구조력”을 강조하며 세잔느와 비교한 ‘완당과 세잔느’, 추사가 원용한 ‘유희삼매’에 대해 “예술의 기원이 인간의 유희본능이라는 학설도 있어 완당의 탁월한 달견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고 한 ‘유희삼매’같은 글이 한 예다. 그는 잎 떨군 나무와 더불어 자신이 살던 삼선교 주변 풍경을 그린 그림에는 ‘세한도’라는 제목을 붙였다. 박춘호 학예실장은 “추사가 58세에 ‘세한도’를 그렸듯 김종영도 58세에 이 그림을 그렸다”고 설명한다. 추사의 삶에 대해서도 그만큼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김종영의 ‘세한도’, 53×38㎝, 종이에 펜, 먹, 수채, 1973.

김종영의 ‘세한도’, 53×38㎝, 종이에 펜, 먹, 수채, 1973.

경남 창원 김종영 생가의 누각에 걸려있던 시판. 증조부 김영규가 지은 시를 판각했다.

경남 창원 김종영 생가의 누각에 걸려있던시판. 증조부 김영규가 지은 시를 판각했다.

그의 탐구 대상에는 겸재 정선도 있다. 김종영은 환갑을 바라보던 70년대 초반에 겸재의 ‘만폭동도’의 방작, 즉 모방해 그린 작품이 여럿 그렸다. 먹과 붓이 아니라 매직이나 수채로 그린 이같은 방작은 형태를 단순화하는 기법이 두드러진다 이는 북한산을 그린 또 다른 그림에도 이어진다. 말년에 전시도록에 쓴 글에는 전통에 대한 그의 전반적인 태도가 드러난다. “과거에 있었던 역사적 사실이나 풍속, 유물, 기법의 전승 등에 의존하는 것으로 착각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중략) 전통이란 말 속에는 시간이나 공간을 초월한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모던한 조각과 자화상, 고전의 글귀만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한자로 쓴 서예작품이 함께 자리한 이번 전시는 풍부한 문화적 맥락이 한 예술가에게 시공을 초월해 체화된 풍경을 보여준다. 5월 31일까지.
 
때마침 서울 성북동 성북구립미술관에서는 ‘성북의 조각가들’이 열린다. 김종영에 더해 권진규, 송영수, 최만린 등 이 지역에 살았던 네 조각가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기획전이다. 6월 18일까지.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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