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더불어 사는 그들이 행복해져야 우리도 함께 행복해진다

[창간 10주년 기획] 한국에 사는 이방인, 마이그런트 200만 <중>
시한폭탄인가 에너지인가
KOREA’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은 김대연과 이강민·어어낼칸 (왼쪽부터). 이 선수들이 합류하면서 한국 크리켓 대표팀 전력이 향상됐고 인도나 동남아시아와의 스포츠·경제 교류 증진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경빈 기자

KOREA’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은 김대연과 이강민·어어낼칸 (왼쪽부터). 이 선수들이 합류하면서 한국 크리켓 대표팀 전력이 향상됐고 인도나 동남아시아와의 스포츠·경제 교류 증진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경빈 기자

지난달 30일 인천시 서구에 있는 연희크리켓경기장. 아직은 서늘하게 느껴지는 날씨였지만 열심히 뛰어다니는 크리켓 한국 대표팀 선수들의 얼굴에선 비지땀이 흘러내렸다. 야구 경기와 유사한 크리켓은 한국에선 비인기 종목이지만 대표팀 실력은 녹록지 않다. 2014년 처녀 출전한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8강에 올랐다. 지난해 홍콩에서 열린 동아시아컵에서는 일본을 꺾고 우승했다. 이상욱 코치는 “한국 크리켓팀은 아시아의 다크호스”라고 말했다.
 
크리켓 대표팀 선수 중엔 피부색이 짙고 이국적인 선수가 3명 있다. 대표팀의 주요 전력이다. 이 코치는 “해외 이주민이 늘어나면서 파키스탄·방글라데시 출신 선수들이 지원하는 추세다. 크리켓을 잘하는 나라에서 오는 선수들 때문에 우리 팀 실력이 향상됐다”고 말했다.
 
한국 크리켓 대표팀엔 파키스탄인과 방글라데시인 피를 가진 마이그런트 3명이 뛴다. 김경빈 기자

한국 크리켓 대표팀엔 파키스탄인과 방글라데시인 피를 가진 마이그런트 3명이 뛴다. 김경빈 기자

“꿈을 만들어 나갈 수 있어 행복”
볼러(투수)인 김대연(22) 선수는 방글라데시에서 태어나 한국인과 결혼한 누나를 따라 2011년 한국인 가정으로 입양된 마이그런트다. tvN 시트콤 ‘막돼먹은 영애씨’에 ‘스잘’이란 이름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한국말이 청산유수였다. 한국의 에이스 볼러인 그는 “구속이 시속 120~130㎞ 정도다. 예전에는 빠르게 던지는 ‘패스트 볼러’였는데 다친 다음엔 땅에 떨어지면 꺾어서 들어가는 구종을 구사한다. 야구로 치면 류현진처럼 제구로 승부한다”고 말했다. 또래의 토종 한국인보다 속담과 사자성어를 많이 썼다. “산전수전 다 겪긴 했지만 인생사 새옹지마, 고생 끝에 낙이 오는 거죠. 방글라데시에서 올 때부터 운동에, 한국어에 고생이 많았는데 한국 대표도 되고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지 않겠어요.”
 
이강민(23) 선수와 어어낼칸(20) 선수는 파키스탄 아버지와 한국 어머니를 뒀다. 이 선수는 “내년에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고 카투사로 군에 가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이들 때문에 대표팀에서 탈락한 한국 선수도 있다. 그러나 팀 내 갈등은 거의 없다. 이 코치는 “함께 농담도 하고 잘 어울린다. 이들 때문에 우리 전력이 좋아진 것을 다른 한국 선수들도 안다. 2명이 무슬림이어서 돼지고기를 못 먹는 것을 제외하면 아무 문제없다. 서로 장점을 인정하고 존중한다”고 말했다.
 
김 선수는 “민주주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발전된 나라에서 국가 대표를 하고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 꿈을 만들어 나갈 수 있어 행복하다. 외국에서 왔다고 싫어하는 이도 있지만 피부색이 달라도 팔 2개, 다리 2개 있는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금메달을 따면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설득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고등학생인 한현민(16)군은 나이지리아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패션모델이다. 모델을 꿈꿨지만 돈이 부족해 학원에 다니지 못하다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으로 발탁돼 단기간에 스타급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10월 서울패션위크에선 무려 10개의 남성복 런웨이에 올랐다. 한군은 “제가 얼마나 중요한 선례인지 알아요. 혼혈 모델이 점점 많아질텐데 좋은 롤 모델이 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한국의 200만 마이그런트 중 모델 한현민군과 국가대표 김대연 선수 등은 말 그대로 성공신화다. 대부분이 허드렛일을 한다. 한국 사람들이 하려고 하지 않는 힘들고 어렵고 낮은 임금의 일이다.
 
일자리 경쟁 탓 이주민 피로증상도
노동경제학자들은 외국인 근로자가 유입되면 일반적으로 자국인의 계급적 지위가 향상되고 보다 역동적이고 사회에서 더 높은 가치를 두는 부문으로 자국 인력이 재배치되는 효과가 있다고 본다. 일반인들은 외국인 노동력 때문에 음식을 좀 더 싸게 먹고 저렴한 물건을 살 수 있었다. 외국인 노동자는 수출에도 도움이 됐다. 사회구성원 대부분이 이주민 근로자 덕분에 이득을 보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외국인 범죄와 일자리 경쟁 등으로 인해 마이그런트 피로증상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다문화나 외국인 관련 뉴스에는 가시 돋친 댓글들이 달린다. 취업절벽 시대를 맞은 젊은 층의 반이민 정서도 상당하다. 강진구 중앙대 교양학부 교수는 “외국인 범죄 등을 보면서 사회 내부의 불안과 공포를 외부로, 외국인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반다문화 인터넷 카페는 포털사이트에서 30여 개가 검색된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이민자 1000만 명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이런 매국노적인 삼성 제품을 사는 건 결국 국민에게 독으로 작용한다. 그런 점에서 불매운동을 제안한다. 다른 국산 제품이나 외국 제품을 사는 게 진짜 애국이다” “개헌으로 이민·귀화·국제결혼·해외여행·해외취업·유학을 법으로 금지해야 다문화 척결이 가능하다” “다문화는 외국인 거지, 유색인종 범죄자들만 온다. 가난과 질병을 수입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긍정효과도 없다” 등의 과격하고 인종 차별적인 주장이 다수다.
 
반이주민 주장이 일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포털 다음의 ‘다문화정책반대’ 카페(약칭 ‘다정반’)는 회원 수가 1만 명이 넘는다. “다문화는 후진국의 값싼 인력을 대량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가진 자들의 논리다. 후진국의 인력과 우리 서민을 저임금 경쟁을 시키려는 자본가들의 음모”라는 등의 주장이 호응을 얻고 있다.
 
이규용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상호보완적이었던 외국인과 내국인의 노동시장이 2012년 이후 대체재가 되고 있다. 국내 취업 외국인이 1% 늘면 내국인 근로자의 임금이 최대 1.1%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난다. 특히 여성과 노령층 등 취약계층의 일자리가 외국인들과 겹친다”고 말했다.
 
경기가 나빠지면서 내국인과 이주민이 질 낮은 일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형국이 된 것이다. 정기선 IOM이민정책연구원장은 “일손이 필요하다는 기업들의 요구로 외국인 취업제도가 시작됐다. 외국인을 고용하는 동안 발전된 산업구조를 만들었어야 했는데 반대로 영세기업들이 싼 노동력으로 연명하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내국인의 노동 가격도 덩달아 끌어내리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미 온 이주민을 돌려보내기 어려우며 함께 잘 살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수용 자세에 따라 마이그런트들이 미래의 에너지도, 시한폭탄도 될 수 있다고 본다. 아직은 내국인과 이주민의 갈등이 큰 편은 아니지만 일자리가 없거나 반이주민 정서 등으로 비하와 멸시를 받으면 사회적 일탈 가능성이 있다. 유럽은 현지 국적을 가진 이주민들의 테러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미국은 불법체류자가 1800만 명에 이른다. 도널드 트럼프는 이들과 일자리를 놓고 경쟁하던 서민계층의 분노를 이용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양쪽의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이주민 단순노무자 92% 개선해야
이런 일을 막기 위해선 단순노무자가 92%나 되는 이주민 노동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사회에서 당장 필요하긴 하지만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고 이주민에게도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윤광일 숙명여대 다문화통합연구소장은 “한계 사업을 지탱하는 인력이 아니라 새로운 산업을 이끌 노동력 수입으로 전환해야 한다. 적정한 외국인 근로자 수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며 통일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러 부처의 중복 지원을 받는 일부 다문화가정이 장애인 등 한국의 취약계층보다 더 많은 복지 혜택을 누린다는 역차별 논란도 반이주민 정서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사회 통합도 중요하다. 독일은 1970년대 터키 출신 노동자들을 활용하고 내보내려 했지만 돌아가지 않았다. 이규용 선임연구위원은 “외국인 노동력은 한번 들어오면 통제 관리가 가능한 수준을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또 기계가 아니고 인간이다. 쓰고 버릴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인간적으로 대우를 해 주지 않으면 유럽처럼 국가 재정이나 사회적 측면에서 두고두고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혜선 숙명여대 다문화통합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이주민을 도움이 필요한 대상이 아닌 우리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봐야 하고 그렇게 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사회구성원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할 수 있도록 정책을 수립하고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이그런트들이 크리켓 대표선수가 된 것처럼 과학계·경제계에서도 대표선수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석행 대한크리켓협회장은 “삼성전자·현대차·LG 등이 세계크리켓협회를 후원한다. 인구가 많은 인도나 동남아시아 시장을 개척하려면 크리켓만 한 것이 없다고 한다. 우리 팀 실력을 키워 크리켓을 종교처럼 대하는 나라와 교류한다면 한국 이미지를 좋게 하고 경제적 성과를 얻게 할 수 있다. 이주민들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또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크리켓 주말리그를 만들었더니 아주 좋아한다. 한국이 따뜻한 나라라는 인식을 주는 것 같다. 그들이 행복해야 우리도 행복할 수 있다”고 했다.
 
 
특별취재팀 성호준·강기헌·박민제 기자, 조수영·나영인 인턴기자, 숙명여대 다문화통합연구소 윤광일 소장·김현숙 책임연구원·신혜선 선임연구원 

구독신청

AD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