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가족만이 행복” 모든 걸 바쳤는데 어느날 아이들이 …

서천석의 내 마음속 몬스터
양수리 안개. 임현동 기자

양수리 안개. 임현동 기자

서천석의 ‘내 마음속 몬스터’를 시작합니다. 분노, 질투, 외로움, 조바심 … . 나를 스스로 괴롭히며 상처를 주는 내 마음속 몬스터들입니다. ‘서천석의 내 마음속 몬스터’를 통해 내 안의 몬스터를 발견하고 이해하며 화해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봅니다. 

“가족만이 행복” 모든 걸 바쳤는데 어느날 아이들이…
진호씨는 화가 나서 도저히 견딜 수 없다. 인생이 완전히 시궁창에 빠진 기분이다. 이럴 수는 없다. 내가 얼마나 많은 정성을 쏟았는데 배은망덕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도대체 그들은 어떻게 해야 만족한단 말인가? 진호씨는 끓어오르는 분노에 책상 위 파일을 파티션을 향해 집어던졌다. 쾅 소리에 모두가 쳐다본다. ‘될 대로 되라지. 어차피 다들 나를 미워하잖아.’


요즘은 육아에 힘쓰는 아빠들이 제법 늘었다. 진호씨로 말하자면 그들의 선배다. 진호씨에게 가족은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였다. 진호씨의 어린 시절 가정은 조금 복잡했다. 아버지는 늘 바빴고 어머니는 건강이 안 좋으셨다. 두 분의 사이도 좋지 않았다. 진호씨가 보기에 아버지는 한심했다. 아무리일이 많아도 아픈 어머니를 좀 챙기면 좋으련만 어머니의 건강 상태에 관심이 없었다. 어머니를 챙기는 것은 늘 진호씨였다. 하지만 어머니 역시 진호씨에게 따뜻하지 않았다. 오히려 늘 원망했고 아버지에 대한 욕을 풀어내는 대상이었다.


진호씨는 이런 가정에 짜증이 났고 그 탈출구로 공부를 했다. 어릴 적부터 머리가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으니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도 어렵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결혼도 했다. 회사일은 힘들지 않았지만 재미는 없었다. 적성에도 맞지 않았다. 진호씨는 사람들을 만나고, 친해지고, 협상을 하면서 일을 풀어나가는 것이 약했다. 혼자 하는 일이라면 자신있는데 회사는 함께 움직여야 하는 일이 많았다. 진호씨는 회사에서 자신이 성공하는데 한계가 있으리라 생각했고 그 결과 우울했다.


마침 그 무렵 아이가 태어났다. 진호씨에겐 새로운 희망이었다. 진호씨는 좋은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행복한 가정은 자기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했다. 사랑이 넘치고 서로를 아끼며 늘 따뜻한 기운이 오가는 가정. 진호씨가 비록 그런 가정을 경험한 적은 없지만 늘 소망했던 바다.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두었던 꿈이기에 꼭 이룰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진호씨는 많은 노력을 했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저녁 약속도 잡지 않았다. 집에 들어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아내를 위해 종종 이벤트도 하고 아이와 다양한 놀이를 즐겼다. 캠핑 열풍이 불 때는 매주 가족과 캠핑을 가기도 했다. 아내는 귀찮아했지만 가족이란 함께 움직이고 같이 고생해야 더 가까워지는 법이라며 밀어붙였다.


주말 함께 있자고 개인 약속 막는 아빠
‘화목한 가정’ 목표에 자녀는 수단이 돼
가족 옭아매지 말고 한 발 뒤에서 응원을



진호씨는 회사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할 때면 늘 육아나 캠핑 이야기를 꺼냈다. 그때마다 여직원들의 표정을 살폈는데 매번 아주 뿌듯했다. 존경하는 눈빛을 보내는 직원, 부러워하는 직원 등 다들 좋게 보는 눈치였다. 언젠가는 모범적인 가장이라며 회사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인사고과에 반영되는 상은 아니지만 자랑스러웠다. 남자 동료들은 집안 이야기 좀 그만하라고 하지만 그럴 순 없다. 진호씨는 회사에서 자신의 역할을 가족의 소중한 가치를 퍼뜨리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정했다. 그것이 자신에게도 좋고 남에게도 좋은 일이라며.


진호씨의 어려움은 아이들이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시작됐다. 아이들은 자신의 시간을 자꾸 주장했다. 캠핑은 이야기도 꺼내기 어려워지고 가족끼리 하는 외식도 아이들은 피하려 했다. 하지만 그것만은 물러설 수 없었다. 진호씨는 주말 가족 외식은 포기할 수 없는 가족 행사라고 못을 박았다. 외식을 마치고 오면 가족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언제부터인지 이 시간에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오직 진호씨뿐이었다. 다들 이야기하라고 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진호씨는 그럴 때마다 강조했다. 가족이란 얼마나 소중한 관계인지. 자신이 이 가정을 화목하게 이끌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왔고, 하고 있는지 이야기했다.


진호씨는 불안했다. 자신의 이야기가 허공에 퍼져 사라질 뿐 누군가의 귓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어제는 가족들을 모아놓고 불만을 이야기했다. 이 가정에는 가족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은 오직 자기뿐인 것 같다며, 그동안 자신이 해온 헌신을 아무도 몰라준다고 하소연했다. 자신처럼 가정적이고 다정하고 성실한 가장을 어디서 찾을 수 있냐고도 따졌다. 산소의 고마움을 모르듯 다들 아빠의 고마움을 모른다고 원망을 늘어놓았다. 그러자 묵묵히 듣던 아들이 한 마디 했다. “아빠 고마운데요. 저는 숨 막힐 거 같아요, 아빠는 맨날 가족, 가족만 말해요. 어쩌다 내가 하고 싶은 것 하려고 들면 아빠는 또 얘기하죠. 가족에서 벗어나 네 것만 찾으려 하지말라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진호씨는 배신감에 아들의 뺨을 한 대 쳤다. 때린 것은 후회가 됐지만 억울하고 화난 감정은 계속 올라왔다. 아내가 거기 거든다. “애를 왜 때려? 애가 그냥 자기 속 얘기 한 건데. 나도 그런 마음 많이 들어. 당신이 만들고 싶은 그 행복한 가정이란 모델에 우리는 인형처럼 들어가 있는 것 같아. 당신은 나한테 관심이 없어. 그냥 당신이 하는 행동이 중요하지. 당신이 행동을 하면 난 고마워하면 돼. 고마워하지 않고 내 마음을 이야기하잖아, 그럼 당신은 얼굴을 찡그리지. 나도, 그래도 이렇게 하는 게 어디냐, 내가 복에 겨워 이러지 하며 참아왔어. 그렇다고 다 좋았던 건 아냐.” 진호씨는 아내의 이야기를 다 들을 수 없었다. 탁자 위의 컵을 집어던졌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컵이 깨지고 가족들이 비명을 외쳤지만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진호씨는 그저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싶었던 것일까? 자신이 경험하지 못했던 행복한 가정을 아이들에게는 보여주고 싶었던걸까? 그런 선의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호씨의 행위는, 비록 희생과 노력이 따랐지만, 사랑이라 말하기엔 부족했다. 사랑은 함께 춤을 추는 행위인데 진호씨는 상대에게는 여지를 주지 않았다. 독립적인 두 존재의 만남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행복한 가정은 늘 뭐든 같이 하는 가족이 아니다. 함께 하는 순간도 즐길 수 있지만 혼자서 자신의 삶에 집중할 수도 있고, 조용히 한 발 뒤에서 응원해 줄 수도 있는 가족이다.


진호씨가 바라는 것은 자신이 잘하고 있다는 확인이었을까? 진호씨는 알았다. 노력해도 회사에서 충분히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결심했을지 모른다. 성공이 어렵다면 행복한 가정을 꾸리겠다고. 진호씨에게는 행복한 가정, 그것도 남에게 자랑할 수 있고 인정받을 수 있는 행복한 가정이 필요했다. 그 시도는 잠시 성공했다. 하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사람은 안다. 자신이 수단인지, 아니면 목적인지. 진호씨는 자신의 희생과 노력을 자꾸 이야기하지만 가족들은 이제 묻고 있다. 그 희생과 노력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냐고.

서천석은 1969년생. ‘아이와 부모의 마음을 잘 다독여주는 의사’로 유명하다. 서울대 의대와 대학원을 졸업한 후 ‘마음의 병의 뿌리는 어린 시절에 있다’ 는 걸 깨닫고 소아청소년정신과 의사가 됐다. 『그림책으로 읽는 아이들 마음』『우리 아이 괜찮아요』 등 육아 분야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서울신경 정신과 원장이자 행복한아이연구소 소장이다.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오영환 부소장 : oh.younghwan@joongang.co.kr (02-751-5515)
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