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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교육감 고집에, 경기 공립고 학생들 저녁 굶거나 컵밥

27일 경기도 구리여고 앞 분식집이 수업을 마친 학생들로 붐비고 있다. 지난달 경기도의 대부분 공립고교에서 저녁급식을 중단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학생 중 다수가 컵밥과 떡볶이로 저녁을 해결한다. [사진 김춘식 기자]

27일 경기도 구리여고 앞 분식집이 수업을 마친 학생들로 붐비고 있다. 지난달 경기도의 대부분 공립고교에서 저녁급식을 중단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학생 중 다수가 컵밥과 떡볶이로 저녁을 해결한다. [사진 김춘식 기자]

지난 24일 오후 5시, 경기도 구리시 토평동의 구리여고 교문 옆 분식점은 수업을 마치고 몰려든 학생들로 북새통이었다. 매장 내 5개 테이블이 가득 차자 일부 학생 은 입구나 밖에 선 채로 컵밥, 떡볶이 등을 먹었다.
 
2학년 김모(17)양도 밥에 떡볶이 국물을 얹은 2000원짜리 컵밥을 먹고 있었다. 방과후 수업이 끝나면 교실에 남아 자습을 하는 김양은 평일엔 매일 이곳에서 저녁을 해결한다. 그는 “엄마가 도시락을 싸주겠다고 하시지만 교실에서 냄새를 풍기면 ‘민폐’일 것 같다”며 “그냥 컵밥 먹는 게 싸고 편하다”고 말했다. 지난해까지 이 학교에서 야간자율학습(야자)을 하거나 수업 뒤 학원·독서실을 가던 학생들은 저녁 급식을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 2월부터 석식 제공을 중단했다.
 
경기도 남양주시 가운고 3학년 정모(18)군은 이달 초 학원을 2곳 더 늘렸다. 당초 부족한 과목은 인터넷 강의로 보충하고, 야자 시간에 실력을 높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학교의 저녁 급식이 중단돼 야자 참여 인원이 확연히 줄고 면학 분위기가 떨어지자 계획을 바꿨다. 정군은 “석식 중단으로 공부 리듬도 끊기고 경제적 부담만 늘었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경기도 내 고교의 저녁 급식 중단은 이들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공립고의 상황이 심각하다. 경기도의회 안승남(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기교육청에서 제출받은 ‘ 고 교 급식 운영 현황’에 따르면 올 3월 기준으로 도내 공립고 333곳 가운데 저녁 급식을 제공하는 학교는 22%(72곳)에 그쳤다. 지난해 3월 고교 470곳(사립고·특목고 포함) 중 저녁 급식 제공 학교가 86%(406곳)였던 것에 비하면 현저하게 줄어든 수치다.
 
이런 상황이 벌어진 건 야자 축소를 주창해 온 경기도교육청이 학교들의 저녁 급식에 제동을 건 탓이다. 지난해 6월 이재정 경기교육감은 취임 2주년을 맞아 “입시·성적·성과 위주의 경쟁적 교육이 ‘야자’라는 비인간적·비교육적인 제도를 만들었다”며 “학생들을 ‘야자’라는 틀에서 해방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야자 전면 폐지 선언이었다.
 
도의회 "스스로 선택한 자습은 허용” 조례
 
하지만 이 방침은 학부모·학생의 거센 반대에 부닥쳤고 지난해 말 도의회가 학생 스스로 선택한 자습은 허용하는 내용의 조례안을 제정하면서 사실상 무산됐다. 그런데 불똥이 저녁 급식으로 튀었다. 지난 1월 도교육청이 일선 학교에 야간자율학습을 위한 석식 제공을 중단하라는 취지의 지침을 통보한 것이다. “학교 수업이 없는 시간대의 저녁 급식은 근거가 없다”는 설명이었다. 이 역시 논란이 일자 도교육청은 한 달 뒤 ‘석식은 학교장 자율로 결정할 수 있다’는 공문을 다시 보냈다. 그러나 일선 공립고 교장들은 여전히 석식 제공에 소극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장은 “인사권을 쥔 교육감이 저녁 급식에 부정적인데, 어떤 공립고 교장이 나설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실제로 고양시의 한 공립고에선 최근 야자에 참가하는 3학년생들이 직접 저녁 급식 희망자를 파악했다. 전교생 1000여 명 중 220명이 희망한다는 결과를 학교 에 내고는 석식 재개를 요구했다. 하지만 교장은 “희망자 상당수는 학원·독서실에 간다. 이들을 위해 석식을 제공할 의무는 없다”고 거절했다. 3학년 이모(18)군은 "학교 앞에 분식집이 없어 저녁을 굶고 공부하다 밤늦게 집에 와 폭식을 하고 식곤증에 곯아떨어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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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들은 반발하고 있다. 한 학부모는 “학교와 교육청이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학생들을 돕기는커녕 학습권과 건강권마저 침해한다”고 비판했다. 공립고 학생들만 피해를 본다는 주장도 나온다. 경기도 내 특목고와 자사고, 사립고는 대부분 급식을 유지하고 있 다. 구리시 수택고의 학부모 최모(50)씨는 “내신과 수능으로 치르는 대입 경쟁은 바뀐 게 없는데, 경기도 내 고교가 석식을 중단한다고 해서 변하는 게 있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도교육청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조대현 도교육청 대변인은 “학생이 늦은 저녁까지 교실 책상 앞에서 공부하는 것은 미래 교육이 나아갈 방향이 아니다. 고교생들도 가족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방과 후 진로 탐색 시간을 갖는 게 좋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이상적인 정책이라 할지라도 현실과 동떨어져 있고, 특정 계층에게 피해를 준다면 교육감은 이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글=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사진=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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