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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관파천 시절 고종 "공포 못벗어나 얼굴 창백했다"

일본·러시아 등 열강의 압박이 거세지던 구한말 고종(1863~1907년 재위) 황제의 역할에 대해서는 여전히 모호한 부분이 적지 않다. 동국대 정외과 황태연 교수 같은 이는 고종이 무기력한 군주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라의 활로를 찾으려 했다고 본다. 연장선상에서 1896년 러시아공사관으로의 '아관파천'을 군주가 피란가는 '파천'이라는 용어를 쓸 게 아니라 국제법상 망명으로 봐야 한다며 '아관망명'으로 쓸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고종에 대한 그런 '역사적 상상력'과는 다른 증언이 나왔다. 1895년부터 1945년까지 러시아인들의 눈에 비친 한반도에 대한 기록들을 모아 한국학중앙연구원이 번역·출간한 『러시아 시선에 비친 근대 한국』에서다.

"지금까지도 고종은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공사관 뜰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나 초병이 부르는 호각 소리에도 얼굴이 창백해졌습니다."

'아관파천' 당시인 1896년 9월 서울에서 근무하던 러시아 공무원 포코틸로프가 목격한 고종의 모습이다. 포코틸로프는 러시아공사관에서 생활하던 고종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느꼈다. "해병 한 명이 실수로 사격을 했는데, 이때 고종의 방은 그야말로 공황상태였다"고 기록했다.

그래도 고종은 지적인 얼굴과 확고한 시선, 품위 있는 분위기 등으로 호감이 가는 인상이었다. 포코틸로프는 "이 사람은 주위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비범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후계자인 순종은 깎아내렸다. 행동에 진지함이 보이지 않는 바보 같은 사람이라고 평했다. "후계자(순종)와 아버지가 함께 가진 공통점은 바로 일본 사람에 대한 증오"라며 "후계자는 왕보다도 더 심한 증오심을 품고 있었다"고 적기도 했다.

책에는 러시아공사관과 덕수궁 석조전을 설계한 건축가 사바틴의 편지, 1900년 조선을 돌아본 러시아인의 여행기 등 흥미로운 기록이 많다. 1919년 러시아 총영사였던 류트샤가 목격한 3·1 운동에 대한 글도 있다.

책을 우리 말로 옮긴 이영준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러시아인들은 극동 아시아 정세에서 항상 제3자적, 객관적 입장을 견지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그런 시각에 책에 녹아 있다는 얘기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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